제목 |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성호경과 십자성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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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6,176 | 추천수0 | |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성호경과 십자성호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누구일까? 너무 빤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느님이 아닌 다른 대상에 중심을 두는 때가 많아 가끔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삶의 중심이며 원인인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십자성호를 그으며 고백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 짧은 고백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할 수 있는 사랑의 가장 큰 사건, 곧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재현하는 미사 때 바치는 첫 신앙 고백이다.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신앙 고백문인 성호경은 중세 때부터 기도를 시작할 때 첫머리에 사용하는 관용구였는데,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는 미사를 시작할 때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14세기에 교회는 사제가 제대 앞 층계에서 봉사자들과 함께 바치는 층하경(“주의 제단에 나아가리다”와 시편 43편과 고백 기도로 구성)을 시작 기도로 미사에 도입했다. 그 층하경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에 따른 미사 개정 작업 초기에 없어지고, 십자성호가 일반적으로 기도와 예식의 시작 기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개정안 작업 때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생각하여 그대로 존속하는 대신 그 위치를 제대 인사 다음으로 옮겼다.
성호경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 28,19)라는 구절에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서 성호경과 십자성호를 두 가지 면, 곧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고백이라는 차원과 세례를 상기시키는 기도문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신앙 고백 차원에서 볼 때, 성호경은 구원의 원천이 삼위일체 하느님임을 드러낸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이렇듯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은 성찬례에서 그 성사적 현존을 찾아야 한다. 십자표를 하면서 외우는 성호경은 우리 구원의 원천이자 목적이신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인 것이다.
동시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십자성호는 세례를 상기시키는 동작이다. 곧 초기 교회에서 십자성호와 성호경은 ‘세례’를 위한 동작이자 호명이었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의 물에 의해 새로 태어나고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자녀로 입적되었다. 세례받은 우리는 구원하시는 주님의 파스카 신비에 잠긴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3-4).
성호경과 동반하는 동작인 십자성호가 교회 예식에 들어온 시기는 2세기경이다. 당시의 입교 예식을 보면 주례자가 예비신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였다. 4-5세기경부터는 사제가 오른손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12세기부터는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를 긋는 형식이 전례에 도입되었다. 현재와 같이 크게 긋는 십자성호는 이미 5세기경에 나타나지만 널리 보급된 시기는 13세기부터이다. 초기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형식이었지만(동방식 또는 그리스식), 13세기부터 서방 전례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형식으로 바뀌어 퍼졌다(서방식 또는 라틴식).
성호경과 십자성호는 미사의 시작 부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룬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다. 이러한 십자가 제사를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인은 성호경과 십자성호로 제사를 바치는 데 필요한 마음의 자세를 갖춘다. 신앙의 핵심 전례를 거행하면서 세례 때 고백한 신앙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한다. 그리고 신앙의 신비를 하느님의 이름과 그분의 도움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그래서 미사를 마칠 때에도 비슷한 마음의 자세로 사제가 성삼위의 이름으로 내리는 축복을 받으면서 십자성호를 긋는다.
예전에 본당의 주임신부로 있을 때 남성 구역모임에 가서 이런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식사 전후 기도를 합니까? 그 기도를 할 때 성호는 긋습니까?” 참석한 분들이 돌아가면서 대답을 했다. 그중에 한 분이 “긋기는 하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려 “어떻게 긋는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작은 소리로 “남들이 보지 못하게 배꼽에 긋습니다”라고 답했다. 참석자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왜요?” 하고 되묻자, “제가 신자로 잘 살지 못하는데 성호까지 그으면 신자라는 것이 드러나 다른 신자들에게 욕을 먹일 것 같아 그렇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십자성호를 그으십시오. 혹시 누가 뭐라고 하면 ‘신자이기에 그나마 이 정도로 잘 살고 있다’고 답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권고했다.
모든 기도의 시작과 마침에 성호경과 십자성호를 할 때는 로마노 과르디니가 《거룩한 표징》에서 당부한 것처럼 했으면 좋겠다. “올바로 십자성호를 긋도록 하자. 천천히, 크게, 이마에서 가슴으로, 이 어깨에서 저 어깨로, 이렇게 하다 보면 온몸이 십자가의 표시와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된다. 이마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어깨에서 어깨로 그어 나가는 성호에 모든 생각과 정성을 쏟으면 십자성호가 몸과 마음을 감싸 주면서 나를 거두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하면 자신도 거룩하게 되고 보는 사람도 경건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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