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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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6-05 | 조회수5,335 | 추천수0 | |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
‘신앙고백’이라는 주제로 이 글을 쓰면서 ‘고백’이라는 노래가 떠올라 그 노래를 다시 들어 보았다. 세련되지 않은 용모에 약간 게을러 보이는 김C가 보컬로 있는 그룹 ‘뜨거운 감자’가 4년 전에 발표한 노래다. “달이 차고 내 마음도 차고 이대로 담아 두기엔 너무 안타까워 너를 향해 가는데. 달은 나에게 오라 손짓하고 귓속에 얘길 하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야….” 보름달이 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사랑도 차오름을 느껴 사랑을 고백하려 할 때의 설렘과 떨림, 그리고 행복함!
우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내주신 예수님께 베드로처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며 주일미사 때 고백한다. 그런데 앞에 소개한 ‘고백’이라는 노래처럼 설렘과 떨림, 행복함이 느껴지는 고백일까? 너무 자주하여 습관이 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예수님을 처음으로 ‘그리스도’라 부르고, 성부이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성당으로 이끈 힘을 ‘성령’이라고 고백한 세례 때는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면 느낌이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나이다”라고 말할 때는 그분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미사 중에 신경을 바치는 것은 찬성을 표시하거나 충성을 선서하는 맹세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의 관계를 선포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는가? 하느님께서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시어 우리에게 먼저 당신의 신뢰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화답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전례에서 독서와 복음과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지칠 줄 모르는 사랑과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그분의 구원 행위를 상기했다.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겁내지 마라”(이사 41,10)는 말씀에 힘을 얻는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10)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기억하면서 주일미사에 참석한 사람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도록 신앙을 큰소리로 표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 공동체와 신앙을 신뢰하고 확신하게 된다.
현재 로마 가톨릭은 미사에서 두 가지 신앙고백(Professio fidei)을 사용한다.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예루살렘에서 사용하던 세례 신앙 고백문이 발달한 것으로 본다. 이 신경의 배경이 되는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그리스도와 성령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선포한 공의회이다. 그러나 기본 내용은 예루살렘의 치릴로가 집필한 <예비신자 교리서>(350년경)를 바탕으로 하며, 이러한 삼위일체 신학을 드러낸 신앙고백을 교회의 공식 신경으로 확정한 것은 ‘칼케돈 공의회’(451년)이다. 동방 교회에서는 미사를 비롯한 여러 예식이나 기도에 사용하였으며, 로마에서도 오랫동안 세례 신앙 고백문으로 사용하다가 1014년에 이르러 미사에 도입하였다. 로마 미사의 공식 신앙 고백문은 바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다.
반면에 ‘사도신경’은 서방의 세례 신앙 고백문으로 히폴리토의 <사도 전승>이 암시하듯 이미 3세기경에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다. 로마 미사에는 11세기초인 그레고리오 7세 때 도입되었고, 13세기 이래 서방 교회의 공식 신앙 고백문으로 간주되어 왔다. 왜 세례 때 행하던 신앙고백을 주일이나 대축일 미사에서 행해야 할까? 독서와 복음과 강론, 그리고 성찬 기도에서 충분히 신앙에 대한 내용을 듣고 기도하는데 말이다.
신경이 미사에 존속하는 이유는, 우선 신경이 말씀 전례 중에 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공동체의 종합적 응답이자 성대한 ‘아멘’이면서, 성찬 전례로 신앙의 신비를 거행하기 전에 교회가 승인한 양식문으로 신앙의 규범을 마음에 새기게 하기 위해서다(<미사 독서목록 지침> 29항 참조). 또 갓 세례를 받은 교우들에게 날마다 신앙의 거울인 신앙 고백문을 외워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라고 가르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모범을 따르기 위한 것도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례 기념일은 부활 축일이다. 그리고 주일은 주간 부활 축일이기에 주간 세례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교우들에게 신앙 고백은 세례 때 고백한 신앙을 회상하고 새롭게 하는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신경은 주일과 대축일에 사제와 백성이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또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미사 때에도 바칠 수 있다(<미사 경본 총지침> 67항 참조). 할 수 있으면 성가대와 교우들이 교대로 노래하는 것이 공동체성을 더 성대하게 드러낼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보편 교회의 공식 신경인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잘 바치지 않는다. 현재 미사 통상문에는 “특히 사순 시기와 부활 시기에는 사도신경을 바칠 수 있다”라고 쓰인 지시문이 있다. 아무래도 삼위일체의 신학보다 십자가 신비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사도신경이 사순과 부활 시기에 잘 들어맞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례 신앙 고백문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한 실행 권고문이 아닐까 한다.
하느님의 무한하며 조건 없는 사랑과 신뢰에 처음으로 믿음을 고백하던 세례 때의 감동을 상기하며 주일마다 설레고 떨리는 목소리로 신경을 크게 외우거나 노래한다면, 갓 세례 받은 사람처럼 늘 새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마르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린 소년과 그의 아버지를 만나신다. 그 이야기에서 소년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마르 9,24). 그 말에 담긴 믿음으로 신경을 고백하면 날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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