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 승천 대축일에 떠오르는 꽃들, 옥잠화와 클레마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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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8-03 | 조회수7,416 | 추천수0 | |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 승천 대축일에 떠오르는 꽃들, 옥잠화와 클레마티스
참으로 많은 꽃들이며 풀들이 한때 성모 마리아와 그분의 품성들, 그분의 삶과 관련된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그러한 이름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많이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큰 축일로 지내는 성모 승천과 관련해서는 떠오르는 꽃과 풀이 그리 많지 않다.
다 아는 대로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죄에 물들지 않으셨고, 하느님 구원 경륜의 협력자로서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겪으셨다. 그러했기에 우리에게는 신앙인의 모델이 되셨고, 돌아가신 뒤에는 영광스럽게도 육신이 이 세상에서 매장되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으셨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이를 기억하고 기리는 날이다. 이 축일에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꽃들 중에는 백합과에 속하는 옥잠화와 클레마티스가 있다.
- 옥잠화.
‘성모 승천 나리꽃’ 옥잠화
성 유베날이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성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사도 성 토마스는 멀리 인도에서 선교 활동 중이었다. 부음을 전해들은 토마스는 뒤늦게 성모님의 무덤을 찾아왔고, 다른 사도들은 토마스가 성모님의 시신이라도 뵐 수 있도록 무덤을 열었다. 그런데 무덤에는 성모님의 시신이 없었다. 다만 장미꽃과 나리꽃만 그득했다. 교회는 이를 하느님께서 당신의 어머니이자 협력자이신 마리아의 시신을 이 세상에 남겨 두는 대신 하느님 나라로 모셔 간 것으로 이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특별히 그분의 동정성과 정결의 나타내는 꽃으로 나리꽃(백합)을 꼽았다. 그래선지 성모님이 하늘로 들어 올림을 받으신 것을 가리키는 꽃으로도 역시 나리꽃의 한 종류를 생각했다. 백합과(科) 옥잠화속(屬) 또는 원추리속(屬)에 속하는 식물들의 흰색 꽃, 가톨릭 원예학자들은 이 식물들의 이름을 성모 승천 나리꽃(Assumption Lily)이라 지어 불렀다. 마침 이 꽃이 피는 시기도 8월의 중간, 성모 승천 대축일 무렵이었다.
이 종류의 꽃들 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옥잠화다. 성모 승천 나리꽃이라는 이름 외에 8월의 나리꽃(August Lily)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학명: Hosta Plantaginia)은 동양(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져 재배되기 시작했고, 성모님과 관련된 이름까지 얻었다. 흰색이고 향기로운데다 꽃이 피는 시기마저 8월 한복판이니 육신까지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님을 나타내는 꽃으로서 맞춤하다고 하겠다.
이 꽃이 옥잠화라고 불리게 된 동양의 사연은 또 이러하다. 옛날 중국에 피리를 잘 부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저녁, 이 사람이 정자에서 피리를 부는데 갑자기 한 선녀가 다가왔다. 달나라에서 아름다운 피리 소리를 듣고서 왔다는 선녀는 피리를 다시 한 번 불어 주기를 간청했다. 한 차례 피리 연주가 끝났고, 선녀는 달나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와중에 머리의 꽂았던 비녀를 빼어 그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는 비녀를 놓쳤고, 비녀는 땅에 떨어져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비녀가 떨어진 곳에서는 하얀 꽃이 피었다. 그 꽃봉오리가 선녀가 준 비녀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 꽃을 옥잠화(옥비녀꽃)라고 불렀다.
- 클레마티스.
‘성모님의 내실’ 클레마티스
역시 여름에 별 모양의 흰색 꽃이 피는 식물로 성모님과 관련되는 이름을 가진 것이 있다. “성모님이 여기 이 세상에서 우리 곁을 떠나셨을 때 클레마티스 꽃잎이 흩날리기 시작했다.”라는, 덩굴 식물 클레마티스(Clematis Vitalba)에 대한 기록이 있다. 클레마티스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덩굴 식물인데, 덩굴이 자라면 덮개 또는 덤불을 이룰 정도로 무성하게 우거진다. 이 클레마티스가 교회에서는 ‘성모님의 내실 또는 침실’(Virgin’s Bower; Our Lady’s Bower)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bower는 ‘나무그늘’을 뜻하는 단어인데, 덩굴이 자라서 우거지면 그늘, 곧 성모님이 쓰실 아늑한 내실 또는 침실이 될 만하다는 뜻에서다.
클레마티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꽃집에 가면 화분에서 둥글게 짠 철사 틀에 기대어 자라는 덩굴 식물을 볼 수 있다. 어리고 가냘픈 덩굴인데 거기에서 흰색, 분홍색, 자주색, 보라색 꽃이 제법 화려하게 피어난다. 이름을 물어 보면 클레마티스라고 알려 준다.
이렇듯 흔히 클레마티스라고 하는 식물은 미나리아재비과 으아리속의 덩굴 식물들을 모두 아울러서 가리키는 속명(屬名)이다. 그리고 이것과 유사한 우리 식물에는 으아리와 사위질빵이 있다. 이 둘을 굳이 구별하자면 으아리는 풀(초본)이고 사위질빵은 나무(목본)다.
이름 자체가 재미있는 식물 사위질빵은 줄기가 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무라서 딱딱한 줄기가 있는데도 잘 끊어진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이야기가 뒤따른다.
사위를 끔찍이도 아끼는 장모가 있었다. 어느 해 가을, 이 사위까지 동원되어 가을걷이를 하게 되었는데, 장모는 자기 사위가 다른 일꾼보다 짐을 덜 지게 하려고 이 식물의 줄기로 지게 멜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위질빵은 사위가 짊어지는 지게의 멜빵이라는 뜻이고, 이는 사위의 지게 멜빵이 약하니 무거운 짐을 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사위 사랑을 에둘러 드러낸 장모의 속내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부터 이런 이름이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의 식물들의 이름을 정리하면서 식물들도 본래 불리던 이름 대신에 이른바 창씨개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위질빵의 본래 이름은 수레나물이었다고 한다. 봄에 연한 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또는 말려 두었다가 묵나물로 먹었다고 한다.
사위질빵은 산과 들에 흔한 덩굴식물이지만 칡이나 등나무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듯하다. 그래도 여름이면 노란빛이 도는 흰색 꽃을 무리지어 예쁘게 피운다. 꽃이라고 하지만, 꽃잎은 퇴화해서 안 보이고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다. 꽃받침 네 개가 십자 모양으로 피는데, 유난히 긴 수술들로 해서 꽃이 화려해 보인다.
꽃이 지고 나면 꽃받침과 수술은 떨어져 나가고 1~2㎝ 정도의 흰색 또는 갈색 털이 달린 암술대에는 씨앗이 여물 때까지 붙어 있다가 바람에 날려 간다. 씨앗에는 털이 달려 있어서 바람에 날릴 때 마치 수레바퀴가 도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날아간다. 아마도 그래서 수레나물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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