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16: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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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08-11 | 조회수6,316 | 추천수0 | |
[주님 만찬으로의 초대] (16)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죄보다 더 큰 하느님 자비 기억해야
주님의 현존 앞에 모인 공동체가 거룩한 신비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는 첫 행위는 참회 행위다. 1세기의 교회 문헌인 「디다케」에서 증언하는 바와 같이 참회 행위는 성찬례 거행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였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디다케」, 14,1) 하느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서 우리 모두가 죄인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은 또한 미사가 지향하는 일치를 이루는 행위이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히브 4,12-16) 미사의 참회 행위 안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될 두 가지 현실은 죄로 인한 비참한 인간 조건과 하느님의 자비다.
참회
우리 신앙인은 시편에 나타난 기도하는 이의 마음으로 자신에게 묻고 대답할 줄 알아야 한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라네.”(시편 24,3-4) 손과 마음, 곧 행위와 내면이 깨끗한 이라야 거룩하신 분의 현존 앞에 설 수 있다. 그러나 누가 주님 앞에서 스스로 의인이라 자처할 수 있겠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깨끗한 이, 의로운 이는 죄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다.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시편 51,5) 우리가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고 그분의 현존에 다가설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교회는 이 화해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미사의 참회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의 목적 그 자체를 체험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콜로 1,22)
참회 예식의 구조는 권고, 침묵, 고백, 사죄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제는 참회로 이끄는 다음과 같은 말로 회중을 초대한다.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 그 다음 이어지는 짧은 침묵의 순간은 하느님 앞에 선 우리 각자가 죄인임을 인식하도록 준비시켜 준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라는 말로 시작되는 고백 기도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드리는 공동체적 고백이다. 인간의 자유와 지성과 활동의 모든 영역(생각, 말, 행위, 의무의 소홀)이 죄의 고백 속에 담겨 있다. 고백 다음에 사제는 주님의 용서를 청하는 사죄경을 바친다. 주일, 특히 부활 시기의 주일에는 통상적인 참회 예식 대신에 세례를 기억하는 성수 예식을 할 수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51항 참조)
자비송
참회 예식 다음에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자비송’(Kyrie)은 주님께 자비를 간청하는 가장 오래된 기도 가운데 하나이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부르짖음은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와 극심한 비탄 속에서도 더디지만 서서히 되살아나야 할 신앙의 기쁨을 바라보도록 해 준다. 복음서에 나타난 수많은 예수님의 치유 사화는 바로 이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태 20,30) 이 간절한 외침은 주님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분의 시선을 붙잡는 힘을 지녔다. 또한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외치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는 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알려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한탄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의인들의 집단이 아니라 용서받은 체험을 통해서 주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강조하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놀라운 체험이 또한 미사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 더욱 충만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예수님께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그분께서 언제나 그곳에,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 제가 잘못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수없이 주님의 사랑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서 주님과 계약을 새롭게 맺고자 합니다.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를 다시 구원하여 주소서. 구원하시는 주님의 품 안에 다시 한 번 저를 받아 주소서.’ 우리가 길을 잃을 때마다 주님께 돌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좋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데에 지쳐 버립니다.”(「복음의 기쁨」, 3항)
* 김기태 신부(인천가대 전례학 교수) -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8월 12일, 김기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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