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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위령 성월 기획: 위령 성월에 묵상해보는 천국과 지옥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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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07 조회수6,600 추천수0

[위령성월 기획] 위령 성월에 묵상해보는 천국과 지옥의 의미


“하느님과의 단절,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 이탈리아 피렌체 성 마르코 미술관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최후의 심판’(부분). 하느님 말씀대로 산 이들이 천국 정원에서 춤추고 있는 천사들의 안내를 받아 예수님께 나아가고 있다.

 

 

11월은 위령 성월이다. 위령 성월은 세상을 떠난 영혼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고자 마련된 특별한 시기이다. 삶과 죽음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항상 함께 다가오는 문제이다. 위령 성월을 맞아 삶과 죽음, 죽음 이후에 우리가 만날 천국과 지옥을 생각해본다.

 

 

천국과 지옥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옥 없다 주장”

 

지난 4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옥은 없다’고 주장했다는 언론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보도들에 의하면 교황은 이탈리아 언론인 에우제니오 스칼파리의 지옥에 대한 질문에 “참회하지 않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고 소멸한다.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영혼은 그저 소멸될 뿐”이라고 말했다.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현대신학에 의하면, 하느님께 벌 받는 장소로서의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관계 측면에서, 은총의 수용과 자발적 거부로 빚어지는 천국과 지옥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교회 가르침이다. 

 

지옥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참뜻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더 잘 드러난다. 교황은 2015년 3월 8일 한 소녀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하느님의 자리를 원하던 교만한 천사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용서하시려 하자 그는 ‘용서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 그게 바로 지옥입니다. … 지옥은 인간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진짜 있을까?

 

유한한 인간 존재에게 죽음과 영원한 삶은 깊은 고뇌와 희망의 대상이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졌어도, 아무리 크고 높은 지위와 권세를 누려도 영생불멸의 꿈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서양의 묘지 비문에 자주 등장하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HODIE MIHI, CRAS TIBI)라는 문구는 누구도 삶의 종말을 피할 수 없음을 일러준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와 사상은 죽음과 그 이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죽음 이후에 인간이 처하게 될 처지를 천국과 지옥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자신의 신앙과 행실의 공적,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천국으로 들어가든지 혹은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성경과 교회 가르침은 말한다. 가톨릭교회는 영혼의 정화를 위한 연옥 교리에 대해서도 가르친다.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믿음의 큰 동기는 사후 세계에 대한 희망이다. 그리고 영원하고 복된 생명에 대한 희망은 이 세상에서의 바른 삶으로 이끈다. 그래서 죽음과 심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신앙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바르고 건전한 신앙을 위해 꼭 필요하다.

 

신앙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지만,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과연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종종 이러한 의문은 천국과 지옥을 이 세상과는 분리된 하나의 공간으로 이해하는 잘못에서 비롯된다.

 

 

천국과 지옥의 표상들

 

성경은 당대의 언어와 문화에 바탕을 둔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지옥을 설명한다. 구약 이사야서에서는 하느님을 거역하는 이들의 운명을 묘사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고문을 ‘죽지 않는 구더기’, ‘꺼지지 않는 불’로 표현한다.(이사 66,24 참조)

 

예수는 자기 형제를 비난하는 이들이 ‘불붙는 지옥’(마태 5,22)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했다. 불과 감옥은 성경에서 종종 지옥과 벌을 일컫는 표현이다. ‘불붙는 지옥’(마태 5,22; 18,9), ‘영원한 불’(마태 25,41; 마르 9,43-48) 등이 대표적이고, ‘어둠 속에서 울며 이를 가는 곳’(마태 8,12 참조), ‘영들이 갇힌 감옥’(1베드 3,19) 등의 표현도 볼 수 있다.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 사악한 영혼들을 태우고, 마귀들이 삼지창을 들고 영혼들을 찌르고 고문하는 모습은 고대와 중세시대에 지옥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러한 표상들을 듣고 보면서 사람들은 종종 왜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이처럼 잔혹한 일을 하는지 의문을 품곤 했다. 사실 이미 교부시대부터 이러한 잔혹한 지옥의 표상은 하느님의 사랑과 모순되는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현대신학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준다. 

 

차동엽 신부는 “지옥은 불이 활활 타거나 사람을 질식시키는 그런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에 처하는 고통의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에서 펴낸 「죽음 · 심판 · 지옥 · 천국 – 가톨릭교회의 사말 교리」는 “가톨릭교회는 지옥을 공간적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 차원에서 이해한다”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지옥이 하느님이 만든 벌 받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말한다고 설명한다.(52쪽) 그래서 “‘지옥’은 하느님과 또 복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1033항)이다.

 

 

함께 누리는 공동체로서의 천국

 

지옥과는 반대로 천국에 대한 성경의 묘사는 ‘잔치’의 표상으로 나타난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신약에서 예수는 이를 성대한 혼인 잔치(마태 22,1-6 참조) 혹은 거처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요한 14,2 참조)으로 비유했다. 특히 예수는 천국, 하느님나라, 새 하늘과 새 땅 등의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업적을 이룬 개인이 특별히 간택되고 선발되어 누리는 특권의 장소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용서받아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백성이 이 하느님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신다. 여기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사명이 흘러나온다.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총의 선물인 하느님나라에 모든 백성들이 예외 없이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을 선포하고 선교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하느님이 인간 구원을 위해 마련한 길이다.

 

 

구원 받았지만 정화 필요한 영혼들

 

가톨릭교회는 천국과 지옥 외에 연옥에 대한 교리를 가르친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하늘의 기쁨으로 들어가기에 필요한 거룩함을 얻으려면 죽은 다음에 정화를 거쳐야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30항)

 

온전한 사랑이신 하느님과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온전하게 사랑해야 한다. 세례성사를 받아 새롭게 태어났어도 인간 본성의 나약함, ‘죄로 기우는 경향’(「가톨릭교회 교리서」 1426항) 때문에 죄와 잘못을 저지르는 인간은 끊임없이, 죽은 후에도 죄의 정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영원한 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정화를 가톨릭교회는 ‘연옥’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연옥에서의 정화 과정은 지옥의 단죄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받는 또 하나의 벌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이뤄지는 ‘축복받은 아픔’(베네딕토 16세 교황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47항)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11월 4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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