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령] 한국의 위령기도5-6: 위령기도의 음악적 특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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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8-12-03 | 조회수7,236 | 추천수0 | |
[한국의 위령기도] (5) 위령기도의 음악적 특성 1 전통 가락에 기도문 얹어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 만들어
-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도는 20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문화를 흡수한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2014년도 10월에 열린 수원교구 성남지구 연도대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위령기도의 음악적 구성
위령기도(연도)는 불규칙적이고 긴 기도문으로 구성되었으며, 여러 사람들이 제창방식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위령기도의 노래는 기도문의 의미 전달이 확실하도록 단순하면서도 반복된 가락으로 되어있다. 위령기도 중 시편 129편을 예로 들면,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 주소서”는 1가락,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 들으소서”는 2가락이 된다. 기도문이 길면 1가락처럼 부르고 기도문이 짧으면 2가락에 얹어 부르게 된다. 3가락은 ‘제소리를’, ‘감당할 자’와 같은 중간가락으로 성인호칭기도문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러한 세 가지의 기본가락이 시편, 성인호칭기도, 찬미가 등에서 약간의 변화만 준채 무한 반복되는 단순한 노래가 연도인 것이다.
가락은 길이와 높이로 구분되는데, 길이는 1음절형이 대부분 긴 음표(長 ♩, 2박), 2음절형은 짧고 긴 음표(단장 ♪♩, 3박)를 기본으로 한다. 2음절형은 4음절형, 6음절형에서 반복되는데, 이는 한국 사람에게 친숙한 자장가의 리듬을 닮고 있다. 자장가의 리듬은 안정감을 주게 되는데 현세의 고단한 여정을 끝내고 주님의 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취하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선택된 듯싶다.
전통음악에 반영된 선조들의 죽음관, 그리고 위령기도
신앙 선조들의 죽음관에는 이별에서 느끼는 슬픔과 파스카의 기쁨이 공존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과 기도하는 당사자의 회개가 부활에 대한 기대 및 공동체의 배려와 융합되어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을 표현하지만, 전통음악의 정악과 같이 격렬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을 주게 된다.
전통음악에는 민속악과 정악이 있다. 민속악은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모두 표출하는 반면 정악은 일부 감정을 내면에서 정화시킨 후 내보내게 된다. 「삼국사기」 진흥왕편에 전하는 기록에서 정악과 민속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가야의 음악가인 우륵은 가야가 멸망하자 가야금을 들고 신라로 귀화하게 된다. 신라 임금은 그에게 세 명의 제자를 보내어 가르치게 했고, 우륵은 본인이 만들었던 12곡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게 된다. 12곡을 다 배운 제자들은 ‘이것은 번다하고 또 음란해서 우아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 하고, 5곡으로 요약하게 된다. 우륵은 몹시 화를 냈지만 제자들이 연주하는 다섯 곡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즐겁지만 넘치지 않고(樂而不流), 애절하지만 비통하지 않으니(哀而不悲), 가히 바르다고 할 수 있다. 임금님께도 들려드려라’ 하였다. 그 음악을 들은 임금 역시 감탄하며 대악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우륵이 만든 12곡은 가야의 흥청거리던 민속악으로 볼 수 있고, 제자들이 다듬은 5곡은 신라의 절제된 정악으로 풀이된다. 정악은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지는 바르고 우아한 음악으로 정착 된다.
몇몇 사람들은 연도가 민속악인 상여소리와 비슷하다고 하지만, 애절한 느낌만 비슷할 뿐 정악의 시조나 독서성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는 연도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종교관에서 그 원인이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제사 금지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선현들은 로마교회법을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유교의 중심인 효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의식으로서 장례와 제사를 행하게 되었다.
연도의 독특한 선율구조 : 전통음악과의 조화
외교인의 예식을 따르지 말라는 예규의 규정에 따라 전통 상례에서 행하는 상여소리나 곡의 격렬함보다는 양반들 사이에 유행하던 독서성과 시조(정악)의 은근함을 따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악보가 아닌 기도문을 그레고리오성가의 생소한 가락에 얹어 부르기 보다는 평소 익숙한 자장가나 독서성, 시조가락에 응용하여 연도만의 고유한 가락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또한 죽음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하느님 집인 본향으로 간다는 믿음 때문에 비통하거나 원통할 정도의 처절함으로 표현되진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도는 20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의 전통음악과 문화를 흡수한 연도만의 독특한 선율구조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음계는 계면조이고, 메나리토리와 유사하지만, 상여소리나 판소리의 시김새와는 전혀 다른 정악의 특징이 나타난다. 이는 그레고리오 성가나 장례노래 속의 후렴 및 한문의 독서성을 정악의 바른 마음과 생각, 바른 길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18년 12월 2일, 강영애(데레사 · 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의 위령기도] (6) 위령기도의 음악적 특성 2 내면의 감정 노래로 풀어내는 민족성 고스란히 담겨
- 「천주성교예규」에는 상사 때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모습이 조상의례에 부당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내 생각을 드높여 주께로 향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렴하여 큰 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노래방 열기와 위령기도
1990년대 초반에 도입된 노래방 문화의 열기는 대단했다. 노래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닌 건국 이래부터 우리민족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우리민족은 기쁨이나 슬픔 등 내면의 감정을 노래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아 과거 농경문화에서도 노동요나 부녀요를 많이 불렀다.
초기 기도서인 예규에서는 위령기도를 노래로 하라고 규정하지만 악보가 없는 기도문을 노래로 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박해를 피해 숨어사는 신자들은 일 년 혹은 수년 만에 한 번씩 신부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교황이 선종하면 1년, 주교는 아홉 달, 신부는 여섯 달, 교우는 일주일, 죽은 부모는 평생을 생각하며 영혼을 위한 기도를 날마다 행하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매일 위령기도를 행하게 됐다.
기도문에는 아침에 하는 조과와 저녁에 하는 만과가 있는데, 만과 때에 신자들이 모여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합송하게 된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기도문은 자연스럽게 암송이 됐고, 그 합송가락은 공동이 아는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전통가락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신자들은 매일 저녁마다 모여 위령기도를 바치거나 장례가 나면 밤을 지새우면서 합송하는데, 그 과정에서 사제 없이 평신도들 스스로 계승해 가면서 지역마다 독특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노래가 보편화 된 것은 그 당시 향유방식이던 가창방식과 기도서의 규정, 그리고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성이 아우러져 빚어낸 결과로 볼 수 있다.
노래로 표현된 부활에 대한 간절함
위령기도의 초기 기도서인 「천주성교예규」에는 상사 때 소리를 높여 노래하는 모습이 조상의례에 부당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답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아니하니 이 비록 노래 없이 그 적경을 외워도 족하나 경을 노래하여 외옴이 그 연고에 있으니 하나는 노래하는 소리 더욱 내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하게 하고 더욱 내 마음을 수렴케 하고 더욱 우리 마음의 큰 원을 드러냄이요 둘은 거룩한 노래의 소리 만일 범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나니 대개 마귀 항상 근심하여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뎌내지 못함이요 셋은 장사 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 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필자 임의로 고어를 현대어로 교정함)
큰소리로 노래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 생각을 드높여 주께로 향하게 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렴하여 큰 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정성된 마음을 담은 거룩한 노래 소리는 호시탐탐 도사리고 있는 마귀를 쫓아낼 뿐 아니라, 슬픔과 근심의 가장 적절한 표현임이 셋째 이유다.
악기 반주 없이 시김새로
이와 같은 위령기도는 정성스레 소리 높여 노래 부를수록 상승되므로, 악기 반주 없이 시김새를 넣어 부르게 되는 것이다. 위령기도에서 나타나는 시김새에는 한국적인 맛을 표현하는 것으로 음을 흔들어 주는 요성(搖聲), 밀어 올리는 추성(推聲), 흘러내리는 퇴성(退聲)이 있다. 이러한 시김새는 앞서 살펴본 정악과 같이 격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자연스러운 표현은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부활에 대한 간절함에 비중을 둔 것으로써 민속악에서의 격렬함을 배제한 것이다.
밀어 올리는 추성은 낮은음에서 높은 음으로 올라갈 때 나타나고,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내려갈 때는 미끄러지듯 흘려주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행 악보의 시작부분인 “제 영혼”, “깊은 구렁”에서 밀어 올리는 시김새로 나타나고, 아무런 표기가 없는 “제 소리를”, “감당 할 자”에서는 흘러내리는 시김새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김새는 지역별, 가창자별로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2003년 서양식 악보로 된 상장예식이 등장하면서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다.
위령기도의 가창 방식
노래를 부르는 방법에는 선후창방식과 교환창방식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1969년 8월 로마에서 공포한 새 장례 예식서에 따라 자기 나라의 풍습에 맞게 예를 행하며, 선후창 방식으로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성전에서 행하는 장례미사 및 일반 미사는 선후창으로 행하지만, 위령기도는 교환창으로 행하고 있다.
선후창은 한사람이 메기고 여러 사람이 받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서, 목소리가 좋거나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선창자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과중한 노동의 형태나 현장 사정에 따라 나타나는데, 선창자는 즉흥적이면서도 개방적인 가사나 선율로 변화를 주지만, 후창자들은 가락이나 가사가 고정된 후렴만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가창방법은 선창자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령기도는 초기 교회에서 행해지던 대창송(antiphonale) 방식을 받아들여, 부녀요에서 사용되던 교환창 방식으로 정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환창은 일이 비교적 수월하고 여유가 있을 때 부르던 가창방식으로서, 두 그룹은 노래의 가사를 모두 알아야하며, 연도와 같이 후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교환창 방식은 한국 실정에 맞는 공동 참여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위령기도는 혼자 묵상하듯이 조용히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정성스레 노래로 하며, 여러 사람이 두 팀으로 나누어 상호 교환창으로 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가톨릭신문, 2018년 12월 9일, 강영애(데레사 · 한국가톨릭 상장례음악연구소 연구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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