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곤경에 처한 성가정을 도운 식물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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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1-07 | 조회수6,426 | 추천수0 | |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곤경에 처한 성가족을 도운 식물들
성탄절은 성자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축제다. 그래서 세상 곳곳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기뻐하고 행복해 하며 지낸다. 그런 만큼 세상에는 성탄절을 경축하는 전통들이며 문화들이 다양하고 풍성하다. 또한 성탄과 관련해서 전해오는 상징들이며 풍습들 그리고 이야기들도 많다. 그중에서 널리 알려져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을 꼽자면 아마도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트리, 루돌프 사슴 이야기가 선뜻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쁘고 즐거운 축제의 뒤를 이어서 전해지면서 우리가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게 만드는 가슴 먹먹하고 슬픈 이야기가 있다.
2천여 년 전, 오래도록 기다려 오던 구세주가 마침내 탄생하였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이 소식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세상의 권력자이던 그 사람에 의해,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아기로 태어나시자마자 견제를 받으셨다. 유다의 왕 헤로데는 잠재적 경쟁자(?)의 출현 소식에 불편해진 나머지 성자 하느님 체포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명 수배되신 아기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피난길을 서둘러 떠나셔야 했다.
그런데 이 피난길이란 것이 말이 쉬워 그렇지, 갓난아기를 데리고 황망히 낯선 나라 땅으로 가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마리아와 요셉은 천사의 전갈을 받고는 허겁지겁 갓난아기 예수님을 모시고 나선 터였다. 이집트로 가는 길에 황량하게 펼쳐진 사막에서는 만나고 부딪치는 모든 것이 초조하고 불안한 세 식구의 발걸음을 가로막는 위험이요 장애물이었다. 언제 어디서 달려들지 모르는 들짐승들이며 강도들은 물론이었고, 뒤에서 추격해 오는 헤로데의 군인들은 더더욱 두려웠다. 성가족은 그저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의지할 따름이었다.
그 신산한 여정에서 성가족 세 식구는 어찌할 도리 없이 절체절명의 고비에 놓이곤 했다. 그러했음에도 우리가 뒷날 장성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계속 만나 뵐 수 있게 된 것은 그 세 식구가 위험과 고통의 순간을 모면하고 무사하도록 보살펴 준 도움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작지만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도움의 손길이 내밀어 준 식물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성모님께 도움의 손길을 건넨 ‘세이지 덤불’
먼저 세이지(Sage)가 있다. 세이지는 2018년 9월호에서 ‘성모님의 숄’이라 이름으로 소개한 식물인데, 약초로서 그리고 허브로서 특유의 효능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세이지는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미담으로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왔다.
헤로데 왕은 자기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언젠가 유다인의 왕이 태어날 것이라는 오랜 예언을 알게 되었고, 마침내 그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마저 들었다. 불안해진 헤로데는 그 아기가 태어난 때를 계산해서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어린아이들 중 두 살이 안 된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면 장차 자기에게 큰 위협이 될 인물, 곧 성자 하느님을 죽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아기는 단 한 사람이었다.
- 세이지(좌) 주니퍼부시(우).
그렇지만 천사가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아기의 아버지 요셉에게 귀띔해 주었고, 요셉은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렵사리 그들은 이집트 땅으로 들어섰다.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그 낯선 곳에 손을 내밀어 성가족을 도와줄 사람이라곤 없었다. 어찌어찌하여 일단 헤로데의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힘겨운 피난길에 성가족은 차츰 지쳐 갔다. 요셉이 지친 마리아를 잠시 쉬게 하고는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숨을 돌리던 마리아는 갑자기 말들이 달리는 소리를 들었다. 헤로데가 보낸 군인들이었다. 만약 저들에게 붙잡히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말들의 발자국 소리보다 앞서서 다가왔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도움을 받을 길이라곤 없었다. 마리아는 급한 대로 곁에 있던 장미나무에게 숨겨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장미나무는 그랬다가는 자신이 성난 군인들에게 짓밟힐까 봐 겁이 나서 이 부탁을 거절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순간에 장미 줄기에 가시가 돋아났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향나무에게 똑같은 부탁을 하였으나 역시 소용이 없었다. 정향나무는 말리면 좋은 향신료가 될 꽃을 피우느라 바빴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향나무의 꽃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기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눈에 띄는 것은 세이지(Sage) 덤불뿐이었다. 세이지는 친절하게도 마리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재빠르게 잎과 꽃을 피워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 모자가 몸을 숨길 자리를 만들어 냈다. 군인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지나쳐 갔다. 마리아는 감사하며 답례로 세이지에게 축원의 말씀을 건네셨다. “세이지야, 참으로 고맙구나. 내가 너를 축복하리니, 이제부터는 사람들이 너의 착한 행실을 기억하며 기릴 것이다.”
- 클레마티스(위) 로즈마리(아래).
군인들에게 붙잡힐 성가족을 숨겨준 ‘주니퍼 부시’
그런데 이 훈훈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이지만이 아니다. 세이지 말고도 몇몇 종류의 식물들이 같은 선행으로 성가족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 중의 하나가 주니퍼 부시(Juniper Bush)다. 흔히 노간주나무, 향나무와 같은 향나무 속의 침엽수들을 통칭하여 주니퍼라고 부르는데, 주니퍼 부시는 시리아와 아라비아, 아프리카의 건조한 사막 지역에서 자라는 침엽 관목을 가리킨다.
이탈리아의 시실리에는 주니퍼 부시의 미담이 전해 온다. 피신 중이던 성가족이 군인들에게 붙잡힐 위기에 놓였을 때, 주니퍼 부시 덤불의 가지들이 넓게 펼쳐져서 성가족이 숨을 수 있게 되었고, 군인들은 설마 저런 바늘잎 덤불 속에 사람이 들어가서 숨었으랴 싶어서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나무의 다른 이름이 ‘성모님의 은신처’(또는 ‘성모님의 쉼터’, Our Lady’s Shelter)다.
또한 덩굴식물인 클레마티스(Clematis)와 로즈마리도 피난 중인 성가족을 숨겨 준 식물이라고 전해 온다. 그래서 클레마티스는 ‘성모님의 그늘’(또는 ‘성모님의 쉼터’, Virgin’s Bower)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성모님의 작은 꽃다발’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2018년 9월호 참조) 로즈마리에는 이 미담 외에 성모님이 옷가지들을 빨아서 로즈마리 덤불 위에 널어서 말리신 뒤부터 향기를 생겨나서 풍기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성가족이 이집트로 피난을 가던 길에 들러서 하룻밤 묵어 간 동굴에서 있었던 예리코의 장미 이야기는 2018년 10월호에서 소개한 바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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