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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고해성사, 파스카 신비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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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5-22 조회수7,059 추천수0

[전례 영성 - 파스카 신비] 고해성사, 파스카 신비의 훈련

 

 

고해소가 해우소(?)

 

절에서는 화장실을 일컬어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해서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비교가 좀 불경스럽지만, 성당의 고해소를 보면 자꾸 해우소가 떠오른다. 평소에는 멀리하지만 근심이 쌓이면 찾고, 볼일 끝나면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 말이다. 고해소를 이렇게 생각하는 신자가 적지 않다. 사실 고해성사를 죄의 고백에만 초점을 두면 쉽게 해우소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하느님과 화해하는 기쁨과 이웃과 화해하는 기쁨에 초점을 맞추면 고해소는 어느덧 기쁨으로 눈물바다를 이루는, 일종의 ‘이산가족 상봉소’ 같은 곳이 된다.

 

 

고해성사는 참회 성사

 

고해성사라는 말에서 화해의 즐거움 대신에 고백의 괴로움을 먼저 떠올리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역사적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요인 가운데 ‘고백성사’(Sacramentum Confessionis)라는 말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성사는 죄를 고백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고백의 성사라고도 불리지만, 고해성사(Sacramentum Paenitentiae)라는 명칭이 더 적합”(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 「화해와 참회」, 27항)하다.

 

그런데 고해성사의 라틴어 원문 ‘Sacramentum Paenitentiae’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참회의 성사’라는 뜻인데, 현재 ‘고해(告解)성사’로 번역되어 쓰인다. ‘참회’라는 말의 엄격한 어감 때문에 신자들이 성사를 멀리할까 걱정이 되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무튼 고해성사는 내용상 참회의 성사다.

 

 

참회란 끊임없는 회개

 

라틴어 ‘Paenitentia’(참회)는 희랍어 ‘metanoia’(회개)를 번역한 말로, 마음의 근본적 변화를 뜻하는 회개에 덧붙여 외적인 생활까지도 바꾼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참회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생의 노력으로서 영성적으로 말하면 ‘금욕적 수련’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참회를 이렇게 설명한다.

 

“참회란 사람이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버텨나갈 목적으로 수행하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노력을 모두 뜻합니다. 그것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기 위한 노력이고, 자신 안의 육적인 것을 극복함으로써 영적인 것이 기선을 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며, 지상의 것들을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계신 천상의 것들에게로 오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그러므로 참회는 마음에서 행위로 건너가고, 거기서 다시 그리스도 신자의 전 삶에로 건너가는 회전(회개, 회두)입니다”(「화해와 참회」, 4항).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선물

 

구세사에서 화해의 신비는 무엇보다 삼위일체의 신비로 드러난다.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는 사람들을 죄와 어둠에서 불러내시어 당신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성부와 화해시키시고자 하셨다. 회개의 선포로 당신의 지상 임무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끝으로 “죄의 용서를 위하여 당신의 피로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를 세우셨으며, 부활하신 다음에는 친히 사도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그들이 죄를 용서하거나 그대로 둘 권한을 가지게 하시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당신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할 임무를 맡기셨다”(「고해성사 예식서」, 1항).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를 받은 이들은 그날부터 신자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으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2,42; 4,32.34 참조).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를 이루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서로 용서로써 화해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 곧 파스카의 신비 덕분이다.

 

다시 말해, 교회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성찬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 주신 몸과, 죄를 용서하시려고 흘리신 피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다시 하느님께 바치기”(「고해성사 예식서」, 2항) 때문이며, 여기에서 우리가 파스카의 선물, 곧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모두 한 몸을 이루게”(「로마 미사 경본」, 감사 기도 제2양식) 된다.

 

 

회개와 화해로 인도하시는 성령

 

죄의 용서란 마음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화해를 이루시는 하느님께로 나아갈 때 주어지는 은총이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루카 15,21). 세례 뒤에 죄를 지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해야 할 죄의 고백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고해성사에서 구체적인 죄의 고백은 분명히 본질적 요소이지만, 지은 죄를 모두 나열하고, 나아가 대죄와 소죄로 구분해서 빠트리는 죄 없이 모조리 고백하는 것이 고해성사의 핵심은 아니다. 성령의 빛을 받으면 죄인은 “제정신”이 들어,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려야지.”(루카 15,17-18 참조)하고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회개)를 결심한다.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참회와 화해의 성사가 된다.

 

 

성체성사에서 완성되는 화해

 

고해성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서 죄 사함의 은총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며, 파스카 신비의 기념제인 성체성사에 참여할 준비, 곧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자기의 죄 많음을 인정하는 신앙 행위이다. 고해성사는 회개에서 출발하여(복음을 들음), 죄를 용서받고(세례/고해), 하느님의 잔칫상에 참여하는(성찬례) 파스카 신비의 여정에 자리 잡아야 한다.

 

고해성사는 불통에서 소통으로, 단절에서 화해로 넘어가는 참회의 고갯마루 같은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고개를 수십, 수백, 수천 번 넘어가다 보면, 어느새 아버지 집에 도착해 잔칫상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참된 고해성사는 죄에 대한 천진난만한 낙관주의나 병적인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다.

 

또한 “죄가 언제나 형제들에게 해를 끼치듯 참회는 언제나 형제들과 화해하게 한다”(「고해성사 예식서」, 5항).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5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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