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 영성: 성무일도, 시간에 맞춰 거행하는 파스카 신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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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09-24 | 조회수6,504 | 추천수0 | |
[전례 영성 – 성무일도] 성무일도, 시간에 맞춰 거행하는 파스카 신비
기도하는 교회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교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참여하는 ‘기도 공동체’였다. 성령 강림으로 세워지기 전부터도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이후 탄생한 첫 신자 공동체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 또한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이 말씀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형제적 사랑을 나누며 (친교를 이루며), 성찬례를 거행하고(빵을 떼어 나누고), 성무일도를 바쳤다(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정도가 되겠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은 교회 공동체의 이와 같은 활동이 파스카 신비의 거행이라고 말한다(6항 참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신자들의 모임, 곧 파스카 신비를 삶과 기도를 통해, 특히 성찬례로 거행하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교회라는 뜻이다.
끊임없는 기도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던 초대 교회 신자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끊임없는 기도는 “교회의 본질 자체에 속하는 하나의 요소”(성무일도에 관한 총지침, 9항)이다.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주님과 사도들의 모범과 명을 따라, 초대 교회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했다. 나아가 예수님의 파스카 사건과 연관된 하루의 특정 시간에, 예컨대 아침, 저녁, 제3시(오전 9시), 제6시(낮 12시), 제9시(오후 3시), 한밤중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경이라는 성무일도는 이처럼 끊임없이 기도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원의에서 출발하였다. 시대를 거치며 성무일도는 점점 발전하여 지역 교회의 기도, 곧 전례가 되었다. 바오로 6세 교황이 성무일도에 관한 교황령 「찬미의 노래」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모든 경신례의 절정인 미사 성제의 부요함을 인간 생활의 모든 시간으로 흘려보내고 퍼져 나가게 하는 필수적인 보조 수단”이 되었다.
수도원 성무일도
성무일도의 역사는 크게 ‘주교좌 성무일도’와 ‘수도원 성무일도’로 구별된다. 신자들이 성당에 모여 사제의 주도 아래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함께 바쳤던 것이 주교좌 성무일도이고, 기도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으로 하루에 되도록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했던 것이 수도원 성무일도이다.
수도자였던 베네딕토 성인은 성무일도를 ‘하느님의 일’(Opus Dei)이라고 불렀다. 수도 생활의 최우선 가치를 성무일도 거행에 두면서 “아무것도 하느님의 일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마라.”(「성 베네딕토 규칙서」 43,3)고 권고했다.
실제로 수도자들은 하느님의 일을 밤낮으로 열심히 했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외에도 밤 기도,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끝기도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하루에도 일곱 번 당신을 찬양하나이다.”(시편 119,164)라는 성경 말씀대로였다. 이 두 종류의 성무일도는 서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다가 수도원 성무일도 중심으로 통합되었다.
거룩한 의무
성무일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독서와 찬미가, 청원 기도 등 여러 요소의 첨가를 통해 풍요로워지고 더욱 중요해졌다. 그렇지만 성무일도(聖務日禱, Officium Divinum)라는 말에서도 드러나지만, 이 ‘거룩한’(Divinum) 기도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의무’(Officium)였다. 교회가 규정한 방식대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기도의 분량을 바쳐야 했기 때문에 성무일도를 ‘법정 시간경’(法定 時間經, hora canonica)이라고도 불렀다.
그래서인지 좋아서 하든 의무로 하든 성무일도를 바칠 때 기도의 양을 채우려는 강박이 존재하기도 했다. 중세기 클뤼니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성당에서 성무일도를 바치며 보낼 정도였다.
우스갯소리지만, 옛날에 한 본당 신부는 성무일도를 아침 기도부터 저녁 기도, 끝기도까지 아침에 한꺼번에 싹 다 해 버리고 낮 동안 편안하게(?) 사목 활동에 집중했다고도 하니, 지난날 성무일도가 얼마나 ‘거룩한 부담’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대는 … 하느님 백성과 함께 온 세상을 위하여 시간 전례를 충실히 바치겠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제 서품 예식 때의 이 서약으로 성직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를 지닌다. 수도자들은 이런 약속을 굳이 안 해도 되는데, 왜냐하면 수도 생활의 소명 자체에 이미 “끊임없이 기도”(루카 18,1)하는, 곧 성무일도를 바치는 의무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평신도는 이에 대한 의무가 없지만, 주일이나 축일에 교회에 모여 가능하면 저녁 기도를 함께 바치기를 간곡히 권유받는다(비오 12세 교황,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 150항 참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1971년 발간된 새 성무일도서 「시간 전례」(Liturgia Horarum)는 성무일도 개정의 첫 번째 기준으로, 성무일도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전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였다.
두 번째로, 하루 전체의 성화라는 성무일도의 본디 목적을 달성하고자 시간경들의 양도 줄이고 순서도 재조정하였다. 현대 인간 생활의 여건에 맞도록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에 최대의 중요성이 부여되었다.
시간 전례
성무일도는 무엇보다 전례다. 시간을 성화하려고 시간에 맞춰 날마다 거행하는 ‘시간 전례’다. 성무일도를 ‘시간 전례’라고 부르는 더 큰 이유는, “주님을 끊임없이 찬미하며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는 사제 직무가 “성찬례의 거행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특히 성무일도를 바침으로써”(전례 헌장, 83항) 수행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성무일도를 제 시간에 맞게 바칠 때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그때마다 새롭게 거행된다. 그리고 “전례 거행 때마다 유일한 신비를 실현하시는 성령께서 임하신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104항).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의 자연스런 시간에 따라 시간 전례를 거행하는 이들은 “신비로운 사도적 풍요성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성장케 한다”(성무일도에 관한 총지침, 18항). 왜냐하면 “이렇게 생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와 참교회의 본질’을 표출하고 다른 이들에게 드러내”(18항) 보이기 때문이다.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9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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