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기획: 한국 교회와 성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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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29 | 조회수6,423 | 추천수0 |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기획] ‘한국 교회와 성모’ 성모님 보호와 전구로 2020년 한반도에 축복과 은총 가득하길
- 지난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 축제에 앞서 갖가지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화환으로 장식된 성모상. [CNS 자료 사진]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 곧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호칭을 붙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느님이시고 참인간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431년 에페소공의회 때 결정된 것으로, 이후 에페소공의회 1500주년을 맞은 1931년에 세계 교회의 보편 축일(당시는 10월 11일)이 됐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1월 1일로 복원됐다. 또한, 1970년부터는 모든 교회가 이날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냈고, 새해로 이날이 대축일이 된 지 50주년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에 앞서 1968년부터 이 축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고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해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하도록 했다. 이에 그간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자로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성모님을 기억하며 ‘한국 교회와 성모’를 돌아보며 새해의 문을 연다.
새해는 한반도에 평화가 건설되는 ‘원년’이 될까?
한국 천주교회는 2020년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대림 제1주일부터 오는 11월 28일까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기도운동은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6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주관으로 시작됐지만, 한국 교회 전체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의 연대를 이루자는 취지로 지난해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의 결정으로 전국의 모든 교구로 확대해 펼치고 있다. 새로운 한 해 한반도에 성모님의 보호와 전구 속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은총의 축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다.
이처럼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이 활발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평신도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설립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모 신심은 신자들의 신앙생활 중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1791년 ‘진산사건’의 주역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복자가 순교 직전 “예수, 마리아”를 여러 번 부르다가 순교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김광옥(안드레아) 복자 또한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큰 소리로 묵주 기도를 바쳤다. 이순이(루갈타) 복자, 김사집(프란치스코) 복자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며 살 것”을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다.
초기 한국 교회 성모 신심을 더 확연히 보여주는 건 동정녀의 존재다. 「사학징의」에 따르면, 윤점혜(아가타) 복자가 회장으로 있던 동정녀 공동체는 정순매(바르바라) 복자나 김경애, 조도애, 박성염, 이득임 등 6명이 동정녀로 살았다. 이는 정결을 강조한 복자 주문모 신부와 한문서학서 「칠극」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성모의 삶을 본받으려는 신자들 열의가 그만큼 강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한국 교회 성모 신심 운동은 전기를 맞는다. 1836년 매괴회가 설립됐고, 자신을 성모의 종으로 봉헌하며 특별한 보호를 청하는 ‘성의회’도 1834∼1837년 무렵에 설립됐다. 이처럼 조선 교회에 성모 신심이 확산하자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1838년 12월 1일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수호자로 정해달라고 요청했고, 교황은 1841년 8월 22일자로 이를 수락했다.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는 1846년 11월 병오박해 소식과 함께 김대건 신부 순교소식을 전해 들은 뒤 조선 교회를 성모께 의탁하며 다블뤼 신부(훗날 제5대 조선대목구장)와 함께 공주 수리치골교우촌에서 ‘성모성심회 조선분회’를 설립했다.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는 1861년 10월 조선 교회를 성모의 보호에 맡긴다는 뜻에서 조선대목구를 8개 사목구로 나눈 뒤 이중 7개를 성모와 관련한 이름으로 명명했다. 서울은 ‘성모 무염시태’(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충청도 홍주는 ‘성모 성탄’(천주의 성모 마리아), 공주는 ‘성모 영보’(주님 탄생 예고), 충청도 동북부는 ‘성모 자헌’, 충청도 서부는 ‘성모 왕고’(往顧,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경상도 서북부는 ‘성모 승천’, 경상도 서부는 ‘성모 취결례’(取潔禮, 주님 봉헌) 사목구로 각각 칭했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얻은 조선 교회는 1887년 성모성심회와 매괴회, 성의회 등을 공식 단체로 승인했다. 또한, 1890년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 주교는 성모님께 조선 교회를 봉헌했으며, 1911년 설립된 대구대목구는 교구 수호성인을 ‘루르드의 성모’로 모셨다.
일제강점기에도 성모 신심을 계속 이어져 성모성심회와 매괴회, 성의회는 본당 신심단체로 널리 확산됐으며, 신자들은 성모께 조선의 자주 독립을 숨어 기원했다.
성모의 전구로 일제 패망 이후 찾아온 해방과 건국은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다. 해방일과 건국일이 똑같은 8월 15일이어서 ‘성모 승천 대축일’과 겹치게 되자 광복과 건국이 성모의 도움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고 한국 교회의 성모신심은 더 활성화됐다.
전쟁 이후 한국 교회에는 외국에서 새로운 성모 신심 단체가 유입됐다. 레지오 마리애와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 등 성모 신심 단체들은 성모 신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선교 활동과 봉사를 전개했고, 성모 기사회와 마리아 사제 운동 등도 1960∼1970년대에 잇따라 도입돼 한국 교회의 성모 신심은 부쩍 활성화됐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74년 2월 반포한 회칙 「마리아 공경」(Marialis cultus)을 통해 “오늘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와 교회의 본질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의 기저에서, 또 교회 본질의 정점으로서 동일한 한 여인의 모습, 즉 동정녀 마리아, 그리스도의 모친, 교회의 어머니 상을 발견해 왔다”면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 발전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 신심이 교회의 참된 신심이기 때문”이라고 못 박는다. 또한, 이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정했던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해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보호와 전구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은총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한 해의 문을 또다시 연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일, 오세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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