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헌장이 가르치는 능동적 참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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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2-04 | 조회수6,613 | 추천수0 | |
[성모님 마음으로 전례를] 전례헌장이 가르치는 능동적 참여
I. 전례란 무엇인가? 2. 전례헌장이 가르치는 능동적 참여(Participatio actuosa)
1) 잘 알고(scienter) 참여(11항)
현재 진행되는 전례를 이해하고 전례에 참여한다. 전례 개념, 성사들, 준성사, 시간전례, 전례주년, 신심행위에 대한 역사와 의미, 그리고 표징들을 이해할 때 능동적 참여가 더욱 쉬워진다.
2) 의식적(conscie) 참여(14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이해하고 거룩한 행위에 ‘의식적으로’ 경건하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인다. 따라서 전례에서 전개되는 예식과 기도에 관심을 기울여서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정성을 다하여 참여해야 한다.
3) 경건한(pia) 참여(48항)
전례에 건성으로가 아니라 공경심을 지니고 깊이 삼가고 조심스럽게 참여해야 한다. 전례에서 주례자와 공동체가 드리는 기도에 마음을 다하여 경건하게 동참하여, 전례봉사하는 신자들은 봉사 전과 후에도 기도를 통해서 경건함을 더한다.
4) 내적(internam)·외적(externam)으로 참여(19항)
전례에 참여하는 모두가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 외적으로 목소리와 노래, 자세와 태도, 침묵과 행렬 등으로 참여함으로써 공동체성이 잘 드러나게 해야 한다.
5) 온전하고 완전한(plena) 참여(14항)
습관적으로 미사에 늦게 오거나 다른 일에 바쁘다고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을 지양하고, 미사 전에 여유 있게 와서 차분히 준비하며 영성체도 하며 미사가 끝날 때까지 공동체와 함께 참여해야 한다.
6) 효과적인 (fructuose) 참여
전례 예식과 본문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참여해야 하며, 독서 본문에 대해 이해하고 강론으로 도움을 받으며, 성체에 대한 깊은 사랑과 합당한 준비로 영성체에 참여해야 한다.
3. 전례의 본질적 특성
1) 전례는 교회 공동체의 행위로서, 그 공적 특성대로 가급적 공동체를 이루어 거행해야 한다. 혹 사제 혼자서 전례를 거행해야 할 경우라도 그 역시 교회 공동체의 행위로서 봉헌하는 것이다.
2) 전례는 봉사이다.
‘전례’의 라틴어 liturgia(리뚜르지아)의 어원을 보면 희랍어 λαος(라오스:백성)와 ερϒον(에르곤:일)의 두 단어의 합성어인 λειτυρϒια(레이뚜르기아:백성을 위한 봉사)에서 유래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전례는 ‘봉사’(service)이다. 전례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찬미와 흠숭을 잘 바쳐 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을 충만히 받아 성화되도록 도와주는 봉사이다.
따라서 전례 봉사자들은 – 누구보다도 주례 사제는 – 자신의 성향이나 신심을 주장하기보다 전례 지침에 따라 통일되게 성실히 전례를 거행함으로써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회중들이 혼돈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열정적으로 임하게 해주어야 한다. 미사 전례의 봉사자들 중에 누구보다도 사제는 아름답고 은혜로운 미사 전례를 거행하여 신자들이 더욱 감명 깊고 기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더 연구하고 섬세하게 잘 준비하며, 겸손하고 성덕 깊은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3) 전례는 ‘축제’이다.
미사 전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상 희생제사를 통하여 영광스런 부활에로 나아가는 파스카의 성스러운 축제이다. 미사 전례로 기념되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희생제사와 부활로 우리가 얻게 된 죄 사함의 은총, 구원의 은총, 성화의 은총을 생각할 때 미사 전례를 ‘축제’(festa)로 거행해야 마땅하다. 진정 기쁘게, 활기차게 화답하고 성가를 불러야 한다. 우리가 미사 전례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미사 전례 안에서 주님의 은총을 뜨겁게 체험하게 되며 감사와 찬미, 흠숭과 찬양의 환호성을 터뜨리게 될 것이며, 기쁨과 행복 속에 성화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미사 전례 분위기는 대개가 염불 외듯 너무 가라앉아 활력 없이 거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비해 개신교 예배는 미사 성제가 아님에도 그렇게 힘차고 역동성 있게 거행되고 있다. 우리 미사 전례의 이 처진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4) 전례는 ‘삶의 전례’를 촉구한다.
미사 전례는 십자가를 통해 부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거행이며, 그로써 삶 속에서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십자가의 길을 인내와 용기를 가지고 충실히 걸어가도록 재촉한다. 말하자면 ‘예식 전례’(Rex orandi)은 ‘신앙 내용’(Rex credendi)을 예식으로 거행하고 ‘삶의 전례’(Rex vivendi)를 촉구한다.
전례는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례헌장 서론에서 그 정신이 드러난다. 전례는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나날이 증진시킨다. 전례는 신앙을, 그리스도인의 삶을 특정 짓는 행위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례라는 말마디를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벗어나는 시간으로 여겨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전례는 삶과 별개가 아니다. 전례는 삶으로 구현되어야할 살아있는 신비이지 화석탐사나 연극이 아니다. 삶을 재촉하지 못하는 전례는 분명 잘못된 전례이다. 전례는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그 중요한 의미를 실현한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바른 전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회개와 복음 선포의 삶이 전제되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전례 개혁과 전례의 육성책을 강구하면서 교회 자체와 인류의 쇄신을 지향했듯이 전례는 항상 세상 자체를 성화시켜 하느님께 인도하고 그분을 합당하게 공경하는 것과 관계되는 모든 요소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전례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삶과 관련을 맺으며 세상을 하느님께 인도할 때 비로소 전례의 목적인 하느님에 대한 공경과 인간의 성화가 삶 속에서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전례는 공의회의 천명대로 “교회의 모든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으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이고 “가장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에서 교회의 다른 어떠한 행위도 이 이름과 같은 높이를 차지할 수 없다.”(7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2월호,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광주대교구 대치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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