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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 요셉의 지팡이라 불린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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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08 조회수7,428 추천수0

[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 요셉의 지팡이’라 불린 식물들

 

 

성 요셉은 생업이 목수였기에 목수용 직각자로, 정결하신 마리아의 배필이었기에 백합으로 흔히 표상된다. 그런가 하면 성가족이 헤로데 왕의 지명수배령을 피해 부랴부랴 피신 길에 올랐을 때 가장으로서 마리아와 예수님 모자를 이집트로 모셔간 성 요셉은 지팡이로 표상된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인지, 성모 동산의 식물들 중에는 ‘성 요셉의 지팡이’(St. Joseph’s Staff)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이 있다. 칼라(Calla Lily), 접시꽃(Hollyhock), 노랑수선화(Jonquil), 월하향(Tuberose)이 그것들이다.

 

 

칼라

 

칼라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영어 이름(Calla Lily)만 놓고 보면 백합과 식물의 일원인 듯이 보이지만, 이는 18세기 중반에 이 식물의 종(種)에 이름을 지어 붙이던 어느 식물학자의 실수의 결과일 뿐이다. 하얀 꽃과 무성한 녹색 잎이 어우러지는 이 식물은 남아프리카 원산으로, 꽃꽂이용으로나 화단용으로 널리 재배된다.

 

칼라는 상아빛이 도는 흰색의 우아한 꽃을 봄에 피우기에, 일찍부터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수많은 그림들과 예술 작품들에서는 성모 마리아 또는 성모 영보(수태 고지)를 표상하는 소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칼라는 신성함, 신앙, 정결, 소생(재생)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칼라의 꽃은 대체로 흰색이지만 노란색, 분홍색, 녹색, 보라색, 주황색, 심지어 검은색도 있다. 흰색 꽃은 순수·정결·무죄함을, 분홍색 꽃은 찬미·경탄을, 보라색 꽃은 지체 높은 신분·열정을, 노란색 꽃은 감사를, 검은색(검은색이라기보다는 짙은 보라색 또는 적갈색) 꽃은 우아함·신비를 나타낸다.

 

이렇듯 풍부한 상징성에 더해서, 칼라는 꽃 중에서는 드물게 전통적으로 인생의 새로운 시작인 결혼식에도(특히 신부의 부케에), 인생의 마지막인 장례식에도 두루 사용되어 왔다. 이는 칼라가 한편으로는 결혼의 행복, 진정한 헌신 등을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을 떠난 이에 대한 애도와 영혼의 정화도 상징하는 까닭이다. 나아가, 칼라는 결혼 6주년을 나타내는 꽃이기도 하다.

 

 

접시꽃

 

접시꽃은 쌍떡잎식물로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 전역에서도 잘 자란다. 봄이나 여름에 씨앗을 심으면 그해에는 잎만 무성하게 자라고, 이듬해에 줄기가 곧고 크게 자라면서 잎사귀 사이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접시꽃은 한 번 심으면 저절로 자라고 번식한다. 그러나 일단 싹을 틔워 자라는 포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

 

이 식물의 꽃은 멀리서 보면 우리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와 비슷해 보이는데, 품종에 따라 홑꽃으로 피는 것도 있고 겹꽃으로 피는 것도 있다. 꽃의 색깔은 진분홍, 흰색 그리고 그 중간색 등이다. 어떤 이는 열매의 둥글넓적한 모양이 접시를 닮아서 접시꽃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꽃의 모양도 접시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식물이 동양에서는 여성에게 좋은 효능을 지닌 약재로 알려져 이용된다. 그리고 서양에서는 다산과 생식 능력, 풍요를 상징한다. 우리 시대의 한 시인이 쓴 시로 해서 그 이름이 우리 사이에 친숙해진 꽃이지만, 예전부터 촉규화, 어승화라는 이름으로도 달리 불려 왔다. 그리고 일찍이 신라시대에 당나라에 유학해서 외로움과 소외감 속에 지내던 소년 최치원이 접시꽃을 소재로 소회를 노래한 시도 우리에게 전해 온다.

 

 

노랑수선화

 

노랑수선화는 외떡잎식물로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알뿌리식물이다. 남유럽 원산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십자군 전쟁 이후에 로마 군인들에 의해 유럽 대륙을 거쳐 영국에까지 퍼져서 분포하고,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에도 널리 분포한다.

 

이 식물은 내한성이 강해서 가을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알뿌리를 심으면 이듬해 3월 하순부터 4월에 걸쳐 길이 30cm 정도의 꽃줄기가 자라서 노란색 꽃을 피운다. 꽃의 모양과 색이 비슷해서 종종 수선화로 오인되기도 하는데, 수선(水仙)이라는 이름은 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신선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그만큼 꽃이 예쁜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랑수선화의 꽃은 수선화 종류의 꽃들 중에서 가장 좋은 향기를 품은 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에게 노여움을 산 나르키소스가 죽은 자리에서 피어난 수선화가 자기애와 자존심을 나타낸다면, 노랑수선화는 사랑에 대한 염원, 가버린 사랑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갈망을 나타낸다. 또한 서양에서 노랑수선화는 가정의 행복과 우애를 상징한다.

 

 

월하향

 

월하향은 달리는 만향옥이라고도 하며, 튜베로즈(Tuberose)라는 서양 이름이 더욱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이 식물은 외떡잎식물로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 알뿌리식물이다. 멕시코 원산으로, 봄에 심으면 8∼10월에 꽃을 피우는데, 꽃에서는 강한 향기가 난다.

 

월하향은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꽃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꽃 중 하나일 것이다. 일찍이 멕시코의 고대 아즈텍 인들이 이 식물을 재배했고, 16세기에 멕시코에 도착한 유럽인들이 이 식물을 유럽과 다른 식민 지역으로 퍼뜨렸다. 그리하여 월하향은 차츰 지구상의 향수 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이 식물의 학명은 폴리안테스 투베로사(Polianthes Tuberosa)인데, 이는 ‘여러 송이의 꽃이 핀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폴리안테스(polianthes)와 ‘부풀어 오른 뿌리 또는 덩어리 뿌리’라는 뜻의 라틴어 투베르(tuber)에서 유래한 투베로사(tuberosa)가 합쳐진 것으로, 이름 자체가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우는 알뿌리식물’이라는 특징을 말해 준다. 멕시코에서는 이 식물을 성 요셉의 지팡이(vara de San José)라고 불렀고, 마리아 막달레나가 값진 나르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발라 드렸다는 성경 이야기를 알게 된 뒤로는 나르도라고도 불렀다. 한편,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밤에 향기를 풍긴다’라는 뜻이 담긴 이름으로 불렀다.

 

이 식물들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성 요셉의 지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노라면, 그 생김새라든지 상징성과 특성 등을 미루어 보면 수긍할 수 있는 면도 없지 않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9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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