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 탐구 생활23: 두 개의 식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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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0-09-19 | 조회수6,003 | 추천수0 | |
전례 탐구 생활 (23) 두 개의 식탁
우리가 사는 집은 여러 공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중에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가 둘인데, 하나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TV를 보는 거실(마루)이고, 또 하나는 음식을 준비하고 밥을 나누어 먹는 부엌(주방)입니다. 옛날에는 부엌에서 상을 차려 마루나 방에서 밥을 먹었지만, 요즘에는 부엌에 식탁까지 갖추어 놓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두 공간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탁자나 상이 있습니다. 그 둘레에 앉아 밥을 먹거나 TV를 보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가족 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귀를 기울이고, 동생이 형에게 말을 걸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안부를 묻고, 할머니가 어린 손주의 코를 닦아줍니다. 이런 일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그들이 가족임을 알게 해주는 구체적인 흔적들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도 손님이 찾아오면 탁자에 마주 앉아 서로의 이야기와 마음을 나눕니다. 설령 아무 말도 오가지 않더라도 함께 있는 것 자체로 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우리 사이에 놓인 탁자는 우리 육신의 허기를 채워주는 자리일 뿐 아니라 영혼의 교감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별하는 연인마저 안녕이라는 그 한마디를 차마 “말로는 못하고 탁자 위에 물로 썼다”고 노래했을 정도입니다(이문세/고은희, ‘이별 이야기’[1987년]).
교회가 하나의 집이자 가정이라면 그 안에 함께 사는 형제들에게도 두 개의 식탁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바로 ‘말씀의 식탁’(독서대)과 ‘성찬의 식탁’(제대)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에 대한 신심이 워낙 강해서 자칫 말씀 전례를 성찬 전례의 준비 단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미사에 대한 잘못된 신심이었지만, 전례의 역사 안에서 오랜 시기 동안 성직자가 라틴어로 혼자 중얼거리듯 말씀을 읽었기에 그러한 생각이 널리 퍼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성경을 봉독하는데 누가 그것을 자신과 관계 있는 일로 느끼겠습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바로잡고자 두 식탁 – 하느님 말씀의 식탁과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 – 이라는 표현을 써서 두 부분이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교우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고 받아 모시기를 갈망해 마지않는 예수님의 몸과 피가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이라면, 성경은 성체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과 진정한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유일무이한 안내자입니다.
둘 중 하나의 식탁에만 깨어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과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안에 현존하는 강생하신 하느님 말씀 둘 다 필요합니다. 영혼이 얼마나 이 두 식탁으로부터 양육되기를 갈망하는지 「준주성범」이 전하는 말을 듣고 우리 안에서도 그러한 갈망이 커지기를 기도합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특별히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것 없이는 제가 살 수 없으니, 하느님의 말씀은 제 영혼의 빛이요, 당신 성사는 생명의 떡입니다. 이것은 성교회의 보물 창고에 마련된 두 개의 상(床)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상은 제대인데, 그 위에는 거룩한 면병 곧 그리스도의 성체를 모셨습니다. 다른 상은 법의 상인데, 그 안에는 거룩한 교리가 있어 옳은 신앙을 가르치고 휘장 뒤에 있는 지성소에까지 안전하게 인도합니다.(『준주성범』, 4권, 11장, 4)
[2020년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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