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문화사에 따른 전례: 4세기에 마련된 전례주년의 두 신비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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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2-02 | 조회수5,949 | 추천수0 | |
[문화사에 따른 전례] 4세기에 마련된 전례주년의 두 신비 기념
오늘날 거룩한 교회가 한 해의 흐름 안에서 날들을 정하여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경건하게 기념하고 경축하는 전례주년은 어느 한순간, 어느 한 사람이 체계를 이룬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었다. 오늘날 전례주년이라 알려진 것은 4세기까지 그 흔적도 없었다. 초기 3세기 동안 교회에는 연례적으로 파스카를 기념한 흔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주일을 제외하면 시간 주기로 표시된 어떤 다른 전례 거행도 없었다.
연례적 파스카 기념이 정례화되고 이를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부활의 연장으로 성령 강림까지의 오순절, 성탄과 대림 시기가 형성되어 이런 시기에 맞게 형성된 미사 기도문들을 모아 놓은 성사집들이 형성되어 퍼진 8~9세기를 지나서야, 연중 전례 구조를 말할 수 있었다. 전례주년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인 부활과 성탄에 대한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는 4세기는 전체적인 전례주년 구조의 바탕을 만든 시기라 할 수 있다.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부활 날짜의 기준
2세기 초반에는 아직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파스카 축제를 지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빅토리오 1세 교황(재위 189-199년)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파스카를 지내는 날짜에 대한 두 가지 관행이 공존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유다인 파스카 날, 곧 니산달 14일에 단식하지 않으면서 그날을 그리스도교화한 반면에, 다른 교회들은 주간 첫날, 곧 니산달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파스카 날로 정하였다. 이런 차이는 파스카 양을 잡는 날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에서 유래 한다.
로마 교회는 니산달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을 파스카 날로 정했으나 음력인 니산달 14일이 태양력의 언제에 해당하는지는 이견이 있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모든 교회가 알렉산드리아 책력 계산법을 따르도록 하였으며, 이에 춘분 다음의 만월 뒤에 오는 주일(3월 22일~4월 25일)에 파스카를 지내게 되었다.
오순절과 사순 시기의 형성
3세기 초반부터 그리스도의 부활 개념은 50일 동안 연장되었으며, 4세기 말 무렵에는 부활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성령강림)을 성대하게 지냈다. 이는 성 대 레오 교황(재위 440-461년)의 강론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파스카 성삼일의 개괄적인 틀이 형성되는데, 이 흔적은 381년 부활절과 384년 부활절 사이에 예루살렘을 순례한 에게리아가 쓴 「에게리아의 순례기」(384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파스카 전례는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날에 단식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파스카 단식과는 별도로 40일 동안의 단식이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에 이집트에 나타났다. 이 단식은 예수님께서 세례 뒤 40일 동안 광야에서 단식기도하신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지내고자 참회하며 준비하는 형태를 띠게 된다. 그리고 예비 신자들의 신앙 성숙을 돕는 기간이기도 했다.
육화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에 대한 기록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사건은 기본적으로 육화를 전제로 한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인에게 동시적 사건이자 인간을 죽음으로 상징되는 과거에서 벗어나게 하고 현재와 미래를 열어 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전승을 계승한 교회 공동제는 예수님께서 육화하신 구체적인 역사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육화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과 공현 축일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4세기 초부터 그리스도교 달력에 기록된다. ‘성탄’ 역사의 첫 번째 기록은 푸리오 디오니시오 필로칼로의 「연대기」 필사본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순교자 달력’과 ‘주교 달력’에는 336년부터 기록되어 있다. 순교자 달력에는 12월 25일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심’(VIII Kal.lan.natus est Christus in Betlehem Judeae)이라고 적혀 있다.
성탄 날짜에 관한 가설들
예수 성탄 축일의 날짜가 12월 25일로 정해진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기에 여러 가설이 생겼는데 그 가운데 세 가지만 살펴본다.
먼저 12월 25일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275년에 동짓날로 정한 ‘불멸 태양신의 탄생’(Natalis solis invicti)에 대한 이교 축제와 같은 날이다. 이 점이 그리스도교에서 참된 ‘의로움의 태양’(말라 3,20; 루카 1,78 참조)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전례를 제시하여 이교 축제를 약화하고자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게 한다.
두 번째 가설은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결하면서 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의 교부 테르툴리아노(150-207년?)는 그리스도께서 3월 25일에 십자가에서 고난을 겪으셨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았다.
아프리카 또한 243년에 작성된 부활 대축일의 날짜 계산에 대한 다른 문헌에서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로 해석해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정하는 독특한 계산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해가 만들이진 것은 창조 나흗날, 곧 3월 28일이다. 따라서 이날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의 진정한 태양이 떠오른 날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러한 견해가 그리스도의 수난일과 수태일을 같은 날로 보게 하였고, 3월 25일에 천사가 주님의 탄생을 예고하고 주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의 태내에 잉태된 것을 찬양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3월 25일에서 9개월 뒤인 12월 25일을 성탄 대축일로 정하는 것이 서방 교회에서 3세기에 진행되어 자리를 잡았다는 추측이다.
세 번째 가설은 성탄의 본디 의미를 더 명확하게 하고 로마에서 특이하게 빠르게 확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성자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아리우스 이단과 논쟁하면서 성자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인간임을 고백한 니케아 공의회의 믿음을 강하게 드러내고자 성탄 축일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의견이다. 이후 4세기 중엽의 성 대 레오 교황의 성탄 강론에서 이러한 의미를 아주 잘 드러냈다.
이교 문화를 그리스도교화하며 발전한 전례주년
시대와 문화에 따라 조절과 적응을 하며 그리스도교는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수행해 왔다. 전례주년의 측면에서 이런 그리스도교화 노력은 유다교 문화에서 형성된 안식일 예배를 주님의 부활에 맞추어 ‘주일’(묵시 1,10) 전례로 바꾸고, 구약의 파스카 축제를 주님 부활 기념의 파스카 축일로 전환하였다.
또한 우주론적 시간에 맞추어 지냈던 절기들(동지와 춘분)을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들, 곧 부활과 육화 신비에 적용하여 날짜를 정하는 지혜로운 교회의 모습이 4세기에 뚜드러졌다.
* 윤종식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였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집전 시복 미사 때 전례 실무자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꼭 알아야 할 새 미사통상문 안내서」가 있다.
[경향잡지, 2020년 12월호, 윤종식 티모테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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