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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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1-03-23 | 조회수4,606 | 추천수0 | |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12월 8일)
우리 모든 인간은 원죄, 곧 하느님과의 단절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세례를 통해 원죄와 모든 죄를 사함 받는다. 그러나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셨으며, 평생토록 전혀 죄에 물들지 않으셨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즉 ‘무염시태’(無染始胎, Immaculate Conception)는 1854년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언되었는데, 한국 천주교회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줄 것을 청하였고,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성 요셉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셨다는 교리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이어져왔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은총 자체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죄의 흠이 있고 하느님과 단절된 원죄 상태에 있는 여인의 태 안에 잉태되어 오실 수가 없다는 추론이 자연스럽게 당연한 진리로 자리 잡았다.
이 교리에 대한 ‘기원’과 성모님의 ‘독특한 탁월함’에 대한 암시는 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창세기에서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라는 표현과 루카 복음에서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라는 표현이 성모님의 원죄 없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창세기의 예언에서 ‘후손’(zera)이라는 히브리어는 ‘아들’로도 옮길 수 있는데, ‘그 여자의 아들’이 예수님이심이 당연하기에 ‘그 여자’를 성모님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칭호에는 성모님께서 죄에 전혀 물들지 않았다는 고백이 전제되어 있다 할 것이다.
성 이레네오(+ 202)는 “동정 마리아는 순종하시어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셨다.”고 하였고, 더 나아가 “하와의 불순종으로 묶인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을 통하여 풀렸다.”(이레네오, ‘이단 반박’, 3, 22, 4)고 함으로써 밝힌 ‘하와 – 마리아’의 대조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도 성 바오로를 따라 “죽음이 아담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예수님을 통하여 온 것”(1코린 15,21)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성 이레네오를 따라 “죽음이 하와를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마리아를 통하여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죄 없으심이 당연하듯이, ‘새 하와’이신 성모님도 죄나 흠이 없었다는 초대 교회에서부터의 생각이 성 이레네오에게 와서 분명히 논증된 것이다.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상 구속공로를 미리 입어 원죄 없이 잉태
이와 관련하여 동방 교회의 전통은 마리아를 ‘판아기아’(Panaghia, 온전히 거룩하신 분)라고 찬미하며, 특히 시리아의 성 에프렘(+ 373)은 “예수님, 당신의 모친은 홀로 가장 아름다우신 분, 당신이 티 없으시니, 모친 또한 흠 없으시도다.”라는 성가를 지었다.
서방 교회의 전통에 있어서 성 아우구스티노(+ 430)는 성모님께서 살아생전 죄를 짓지 않았지만 원죄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원죄는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운명이므로, 성모님께서 이를 피해갔다고 ‘규정’하기에는 조심스러웠을 터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원죄가 성관계를 통해서 유전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로마의 히폴리토(+ 235)는 서슴지 않고 “예수님은 썩지 않을 나무로 만들어진 방주이셨다. 이는 그의 장막이 오염과 부패로부터 구제되어있음을 말해 준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의 장막’은 성모님을 뜻한다.
‘새 하와로서 흠 없으신 마리아’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감과 ‘원죄 교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중세시대 논쟁의 대상이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도미니코 수도회의 성 토마스 아퀴나스(+ 1274)는 성모님께서 원죄에 물들긴 하셨으나 모태에 있을 때 원죄가 사해지셨다고 주장했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복자 요한 둔스 스코투스(+ 1308)는 처음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는 ‘무염시태’를 주장했다. 이는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 간 오랜 논쟁 거리였다.
도미니코회의 입장에서는, 성모님을 원죄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공로를 입어 원죄를 포함한 모든 죄를 사함 받는다는 교리와 배치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직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성모님께서 원죄로부터 구원 받았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회는 ‘선행구속론’(先行救贖論)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성모님께서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십자가상 그리스도의 구속공로를 미리 입어 원죄로부터 완전히 보호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께는 시간의 제약이 없으시기 때문에, ‘아직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지 않았지만 시공을 초월하여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상 구속공로를 마리아에게 능히 선행적으로 적용하셨다는 것이다.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은총
중세에서 근대로 접어들면서, 성모 무염시태에 관한 신앙은 널리 지지를 받고 여러 교황들에 의해서도 용인되었다. 특히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을 인가했다.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음과 그 성덕의 탁월함에 관한 확고한 신앙은 19세기에 이르러 자유주의를 비롯한 여러 사상들이 가톨릭교회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천주교 신앙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한 열쇠로 지목되었다.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로부터 성모 무염시태를 교리로 선언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교회 헌장 12항에 의하면, 성령의 도유를 받은 신자들의 총체가 공통적 신앙감을 지니고 신앙이나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 그 총체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다. 이에 마침내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이를 ‘믿을 교리’로서 정리하여 선언하였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491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원받은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모님의 원죄없는 잉태는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배려이며 은총임이 분명하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에 예언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상에 내려 보내시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공로를 마리아에게 선행적으로 적용하시어 잉태될 때부터 원죄가 없게 하셨으니, 곧 당신과 단절되지 않고 무결한 마리아 안에서 예수님이 잉태되고 인성을 취하게 하신 것이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시기인 12월8일에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기리는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성모님처럼 깨끗한 상태에서 성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하려는 교회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3월호, 조영대 프란치스코 신부(광주대교구 대치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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