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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의 변화가 예수님 부활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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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22 조회수5,83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부활 제2주일(자비주일)


<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복음: 요한 20,19-31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2016년 개봉한 부활이란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작년에 볼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한 사람이 마치 수도자의 모습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바싹 마른 유다 광야를 걷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로마 군인 대장이었는데 왜 그가 그런 비천한 모습으로 아무 희망할 것도 없는 광야를 걷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빌라도 총독 바로 밑에서 호민관으로 차기 총독을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성공하여 로마로 돌아가 결혼도 하고 시골에 집을 짓고 죽음이 없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꿈을 들은 빌라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평화로군. 그런데 그것에 다다르는 방법이 이 길밖에는 없을까?”

이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주인공 클라비우스에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그분의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시신을 찾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조사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이 유다인들에 의해 퍼뜨려진 소문임을 알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제자들과 함께 계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음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제 모든 것을 걸어도 되는지...”

우리가 부활을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활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우리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하늘나라의 영광과 이 세상의 성공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우리를 강요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 것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부활은 체념하고 그분의 부활만을 축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고 내가 구원받지 못하면 그분의 부활이 어떻게 기쁜 일이 될 수 있겠습니까?

클라비우스는 광야를 걸으며 한 주막집에서 밥값으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옛 삶의 상징인 호민관 반지를 식당 주인에게 줍니다. 그분의 부활을 확신하느냐는 주막집 주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건 확실하지. 내가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거.”

그리고 그는 다시 광야로 나갑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광야를 걷습니다. 그러나 큰 담장 밑에서 빌라도 총독을 위해 일할 때의 걸음과는 사뭇 다릅니다. 훨씬 가볍고 확신에 찬 걸음입니다.

 

우리 부활의 기쁨은 그분의 부활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 부활 때문에 내가 예전과 같을 수 없음을 체험하는 것에서 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전에 추구하던 것을 계속 추구할 수는 없고 이전의 삶을 그대로 지속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이 걸으셨던 광야, 혹은 십자가의 길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만난 모든 이들은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모든 것을 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부활 외에 어떤 것도 중요한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만 가치 있게 여겨집니다. 우리는 부지불식중에 그분의 부활을 만나면 내가 이 세상에서 추구하던 모든 것들을 그렇게 잃게 될까봐 불안해하며 그분의 부활은 기뻐하면서도 나를 건들지는 말라고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사도 토마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동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 동료들 속에서 혼자만 교회를 떠나있던 죄인의 모습으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입니다. 사도들 무리에 섞여있는 시간은 어쩌면 그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만 제외하고 예수님을 만났던 나머지 사도들 무리에 섞여 일주일을 버팁니다. 아마 자신이 화장실 갔을 때 그분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화장실도 편하게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을 보기 위해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토마스를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토마스는 비록 교회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꼭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려고 한 것에 대한 꾸지람을 듣기는 하지만 그런 오기가 있었기에 더 확신을 지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려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분이 나타나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을까봐 겁내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만나든 만나지 않던 그분의 가르침은 어차피 광야의 삶으로 우리를 이끄신다는 것을 알기만하면 더 큰 부활의 확신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광야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생각해 오던 나의 모든 확신을 내려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부르스 윌리스 주연의 식스 센스는 기막힌 반전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영화입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귀신을 본다는 한 청년을 상담하였지만 그를 제대로 믿어주지 않은 까닭에 그에게 총격을 당합니다.

6개월 후 다시 일을 시작하는데 똑같은 증세의 어린 아이를 치료해주게 됩니다. 그도 항상 귀신을 보기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귀신들 대부분은 자신이 죽은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브루스 윌리스는 아내가 자신에게 대화 한 마디 걸지도 않는 것을 서운해 하면서도 먼저 이 아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로 합니다. 이 아이가 귀신을 본다는 것을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다가오는 귀신의 한을 풀어주도록 합니다.

그러자 그 귀신은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이젠 그 아이가 브루스 윌리스의 문제를 풀어주기로 합니다. 아내가 깨어있을 때 말고 잠을 자고 있을 때 말을 걸어보라고 합니다. 아내는 잠을 자면서 브루스 윌리스와 대화를 합니다. 그러다 남편의 결혼반지를 떨어뜨립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한 번도 빼지 않았던 그 반지. 브루스 윌리스는 6개월 전에 총을 맞았을 때 이미 죽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신에게 말할 때 겁을 먹었던 이유가 바로 자신이 귀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가까이 가면 아내가 입에서 김이 나올 정도로 추워하던 모습, 아무도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던 모습, 더 이상 지하실로 내려갈 수 없었던 것 등을 떠올리며 결국 큰 충격 속에 자신이 죽었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그 느낌 속에서 또 다른 영역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도 느끼게 되고 이 세상 종말이 다가올 때도 반드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지금까지 내가 믿던 모든 가치들이 일시에 허물어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하던 권위가 허물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허물어지는 일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허물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저 또한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오던 옛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해보면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바뀐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제 힘만으로는 이렇게 하나뿐인 삶을 사제로 살기로 결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내적인 변화가 이미 그분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도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병사들에게 돈을 주고 그분의 부활은 거짓이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자체로는 모든 사람을 다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명예의 삶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그분 섭리에 맡겨야 하는 광야의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예수 부활을 위한 어떤 사람들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을 자신이 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변하는 것이 가장 큰 부활의 증거입니다.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게 된 것, 이전에 추구하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집착하지 않게 된 것, 노력하지 않아도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알아서 다 해 주시는 것 등을 느끼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변화는 예수님의 부활보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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