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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슬기로운 전례상징: 세례의 상징 - 물과 성령, 세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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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06 조회수2,831 추천수0

[슬기로운 ‘전례상징’] 세례의 상징: 물과 성령, 세례수


“생명과 정화, 죽음과 부활의 표징”

 

 

물은 생명을 위한 안식처입니다. 태중의 아이는 양수 안에서 헤엄치지요. 또한 생명 유지에도 물은 음식보다 더 중요합니다. 물 없이는 삼 일을 버틸 수 있고, 음식 없이는 한 달 정도 견딜 수 있다고 하지요. 세상의 문명 기원에 항상 물이 흐르는 강이 있는 것은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물이기 때문이지요. 물은 생명의 시작과 유지에 필수 요소이면서, 또한 멸망과 파괴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를 강타한 쓰나미는 그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창세 7,6-24)는 물이 “땅 위에 백오십일 동안 계속 불어났다”(창세 7,24)고 전해줍니다.

 

이렇듯 물은 생명과 멸망의 이중성을 지니면서 일상생활에서는 모든 것을 씻어주는 정화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물의 자연적인 생명, 파괴, 정화의 역할이 세례성사에 들어와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업과 연결되어 신학적, 영성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업적에 함께 한 물!

 

세례에 앞서서 필요한 세례수를 축복하는 ‘세례수 축복 기도’는 물과 관련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사건, 여섯 가지를 기억합니다. “주 하느님, 성사의 표징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힘으로 구원의 신비를 이루시니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물이 세례성사의 표징이 되게 하셨나이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인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창세 1,2)를 떠올리게 하는 “태초에 성령께서 물 위에 머물게 하시어 그때 이미 물이 거룩하게 하는 힘을 지니게 하셨나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세례에서의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물과 성령이 창조에도 함께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이어지는 “홍수를 통하여 죄를 씻고”를 통해 노아의 홍수로 인하여 인류의 죄를 정화했음을 기억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마른 발로 홍해를 건너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하시어 세례받은 새 백성의 예표로 삼으셨나이다”라고 기도하며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자유롭게 하였듯이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심을 암시합니다.

 

“성자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으로 축성되시고”라는 표현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예수의 인성이 요르단강 물에 닿아, 그분으로 인하여 강물에 성화의 능력을 전하게 됨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흘리셨으며”는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는 요한복음 말씀을 상기시키며 이로 인하여 피에서 성체성사의 표지를, 물에서 세례성사의 표지를 보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가서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하고 제자들에게 명하셨나이다”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승천하기 전에 명령하신 사명을 전해줍니다.

 

이런 성서적 배경을 통하여 세례수는 새 생명의 효과적인 표징, 죄와 죄에 대한 죽음의 표징, 마귀의 종살이에서 해방되는 표징, 성화의 표징, 성령의 은총의 표징,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드리는 봉헌의 의미를 포함합니다.

 

 

물이 거룩한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성령!

 

성령은 태초의 물 위에 머물고, 홍수 후에 올리브 나뭇가지를 가져온 비둘기로, 출애굽 중에 구름으로, 예수님의 세례 때 비둘기로, 예수님의 뚫린 옆구리에서 흐르는 물로 상징화되었습니다. 세례수 축복 기도는 성령이 물에 내려와서 거룩한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청합니다. “교회의 정성을 굽어보시고 교회 안에 세례의 샘이 솟아나게 하소서. 성령의 힘으로 외아드님의 은총을 이 물에 부어 주시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이 세례성사로 온갖 묵은 허물을 씻어 버리고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소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던 “모세가 손을 들어 지팡이로 그 바위를 두 번 치자, 많은 물이 터져 나왔다”(민수 20,11)는 이야기와 예언적 관점에서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 곧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에제 47,1)를 연상시킵니다. “물이 솟는 샘”(요한 4,14)이신 그리스도에게서 흐르는 물은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그의 은총을 가져다줍니다. 세례수는 성령을 통하여 양육되는 교회의 표징이 되며, 이 교회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묻히고 부활하게 하는 세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묻힌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하소서”라는 세례수 축복 기도는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5)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세례의 은총을 표현했습니다.

 

물속에 푹 잠기는 침례(浸禮)는 물의 파괴성과 생명력을 동시에 깨닫게 하며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도록 하는 예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안셀름 그륀은 ‘세례성사-생명의 축제’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현실적인 삶에 적용하였습니다. “새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대해 죽는다. 성공과 업적, 인정받기와 대접받기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이것은 참된 자유를 의미한다. 교회의 세례는 거기서 정체 전환이 일어남을 가리킨다. 아이는 자기의 참 본질과 접촉하면서 이 세상의 종속에서 자유롭게 된다.”

 

다른 사람과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기의 참 본질인 하느님을 만나서 그분에 의해 자신을 규정한다는 전환은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늘 화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매년 파스카 성야가 되면 세례 갱신을 하는 이유가 세례를 통해 이미 자기의 참 본질인 하느님을 만나서 세상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집트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늘 세상의 종속을 그리워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불편함에 투정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가 ‘교리교육에 관한 강해’에서 세례에서의 물의 의미를 잘 설명해줍니다. “주교는 성령의 은총을 물 위로 내려주시어 성사적인 탄생 장소가 되도록 하느님께 간청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니코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하신 말씀과 통한다. 성령이 어머니 태중에 만든 씨앗을 육체로 탄생하도록 받아준 것처럼 물은 세례로 태어나는 사람의 모태(母胎)이다. 따라서 세례자는 성령의 은총으로 두 번째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6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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