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축일] 전례력 돋보기: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과 광복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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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8-14 | 조회수2,429 | 추천수0 | |
[전례력 돋보기]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과 광복절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검은 구름을 헤치고 4.6톤의 거대한 원자폭탄이 일본 나가사키 상공에 투하되었다. 이 두 번째 원자폭탄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무조건 항복했다.
나가사키는 일본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자리 잡은 곳이다. 1500년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파된 이래 신자들은 박해의 칼날 아래에서도 숨어서 신앙을 지켜왔으며, 19세기 종교의 자유와 함께 당시 동양에서 가장 큰 성전을 봉헌하기도 했다. 하필 하느님을 믿고 살아온 자신들의 신앙 공동체 위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을 그곳 신앙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가사키에는 방사선과 의사로 모범적인 신앙인 나가이 다카시 박사가 있었다. 그 역시 원폭으로 폐허가 된 집에 아내를 찾으러 갔다가 아궁이 앞에서 아내가 늘 지니고 있던 묵주가 녹은 흔적을 발견해 그 잿더미를 양동이에 담아 와야만 했다. 그런 그가 처참하게 부서진 성당에서 열린 합동 위령미사에서 담담히 말했다. “우리 성당은 갑작스런 화염에 휩싸여 찬란한 불꽃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정확히 바로 그 시각에 황궁에서는 천황이 전쟁을 끝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8월 15일 드디어 전쟁에 종지부를 찍는 천황의 칙서가 발표되었고, 이로써 전세계는 평화의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8월 15일은 또한 성모 승천 대축일입니다. 우라카미 성당이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전과 마리아 대축일, 이 두 가지 사건이 같은 날 발생한 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오묘한 하느님의 섭리인지… (중략) …미군 조종사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라카미가 선택된 것은, 그리고 우리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진 것은 모두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나가사키의 궤멸과 종전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가사키는 제2차 세계 대전과 연루된 모든 민족의 죄악을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단 위에 번제물로 바쳐진, 하느님의 선택된 희생제물, 곧 흠 없는 어린양이 아니었을까요?”(『나가사키의 노래』 p. 228~229 참조)
나가이 박사의 말처럼 하느님은 신자들의 흠 없는 제물을 어여삐 여기셨고, 전쟁을 일으킨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평화를 가져오게 하셨다. 대한민국의 독립이며, 마리아의 노래처럼 권력과 지배욕에 눈이 먼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루카 1,52 참조) 선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살던 이들, 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치고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는 일을 하찮게 여긴 수많은 의인들을 하느님은 당신 자녀로 귀하게 여기시고(마태 5,9-10 참조) 당신 곁으로 불러 올리셨으며,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셨다. 공교롭게 겹치는 날짜인 8월 15일은 그렇게 한평생 평화를 이루며 살아간 성모님과 성모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마련하신 하늘 낙원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심을 전례 거행을 통해 확인하는 날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교회가 공식적인 교의로 발표하기 이전부터 전례 안에서 거행되어 왔다. 6세기에 겟세마니 동산에 성모님의 무덤 성당(성모 영면 성당)이 봉헌되고 순례자들이 찾아오면서 성모 승천 대축일 거행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7세기에는 로마에 전해져 성모님의 가장 중심 축일로 자리잡았다. 이후 오랜 논쟁 끝에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이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 올림 받았음을 교의로 선포했다.(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knus Deus, 1950년 11월 1일)
하느님은 예수님을 낳으신 동정 마리아의 몸이 무덤에서 썩지 않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하지만 성모님의 전 생애가 그렇듯 성모 승천 교의와 축제가 성모님에게만 초점이 맞추어 질 수는 없다. 이날 전례는 성모님이 아들 예수님의 강생에 협력한 공로로 하늘에 불림 받으시고, 우리의 어머니로서 그 길을 여셨으니, 우리도 성모님의 삶을 따라 살다가 마침내 하늘로 불림을 받아 하늘 나라 천상 행복에 이르는 희망을 되새기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고난을 겪은 이들, 정의롭고 올바른 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은 이들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져 악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른 이들의 영혼은 지금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서 복락을 누리고 있음을 우리는 믿는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그분들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일상 안에서 우리의 다짐을 새롭게 해 보면 어떨까?
[월간빛, 2023년 8월호, 소형섭 아우구스티노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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