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슬기로운 전례상징: 혼인성사의 상징 - 합의와 반지, 그리고 축복 | |||
---|---|---|---|---|
이전글 | [위령] 가톨릭 장례의 올바른 이해 (4) |1| | |||
다음글 | [전례] 기도하는 교회: 보편지향기도는 어떻게 바치나요?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10-09 | 조회수1,471 | 추천수0 | |
[슬기로운 ‘전례상징’] 혼인성사의 상징: 합의와 반지, 그리고 축복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47년엔 서울 인구도 145만 명 줄어든다고 합니다. ‘인구감소’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며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저출산을 가장 큰 원인으로 이야기하지요. 결혼을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 여겼던 부모 세대와 달리, 현재의 청년 세대에게 결혼과 출산은 선택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고 싶어도 정규직 직장을 얻기도 힘들고 자녀에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며, 집 장만은 꿈이 되어버린 사회 현실은 청년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교회는 혼인을 하느님 창조 사업의 지속,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안에서 생각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한 성사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혼인성사에서 이러한 교회 지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혼자들의 합의’와 ‘주례 사제의 혼인축복’에서 드러납니다.
거룩한 혼인 계약을 맺는 정혼자들!
두 사람은 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24)라는 구절을 통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떠남’과 ‘결합’은 혼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 움직임입니다. 부모로부터는 육적·심리적·경제적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정혼자 두 사람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움직임이지요.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것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고, 교회 공동체가 축하해주며 증인이 되어주는 것이 혼인성사이지요.
그러나 서로가 혼인 계약을 맺는 끈이 굴레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언제고 다시 그들을 갈라놓으려고 위협하는 것들에서 보호하는 끈이어야 합니다. 이 끈을 ‘사랑’이라 하지요. 이 사랑에 대해서 두 정혼자는 하느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혼인하려는 뜻을 주님께 엄숙히 확인받는 정혼자들!
혼인 예식의 정점은 아무래도 정혼자들이 참석한 모든 이 앞에서 주님께 엄숙히 자신들의 혼인하려는 뜻을 확인받는 ‘질문’과 ‘합의’입니다. 주례 사제는 정혼자들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혼인하려고 하는지, 또 서로 신의를 지키고 자녀를 받아들여 양육할 뜻이 있는지를 묻고 정혼자들은 각각 대답합니다. 그리고 정혼자들은 서로 오른손을 잡고 자신들의 뜻을 밝힙니다. “나 아무는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약속을 정말 ‘검은 머리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지킬 수 있을까? 안셀름 그륀은 저서 ‘혼인성사’에서 “혼인성사는 소유욕과 자기 합리화와 오해 때문에 늘 부서지기 쉽고 위협받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스도가 흠 없이 온전하게 함을 의미”하며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의 사랑이 신랑 신부의 사랑 속으로 흘러들어와 그 사랑을 변화시켜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곧 인간적 노력으로는 혼인 합의를 제대로 지켜나가기 힘들기에 우리를 구원하려고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영원한 사랑의 상징인 반지!
혼인 합의를 통하여 정혼자들은 이제 ‘신랑 신부’로 불립니다. 합의에서 말로 신의를 드러냈다면, 이제는 반지라는 표지를 교환하면서 신의를 표현하고, 결혼반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대의 왼손 약지에 끼워주면서 다음의 말을 합니다.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당신께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 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왜 결혼의 표지가 반지일까? 반지의 상징적 의미는 둥근 형태에서 비롯됩니다. “영원”을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일종의 반지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끈을 맺어서 매듭을 만들어 고리 모양으로 둔 것 같은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반지는 병이나 재앙에 대한 보호, 자유 신분이라는 표지, 사회적 특권 지위의 징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혼인할 때에 서로의 결합을 상징하는 의미의 반지 교환은 고대 로마의 풍습으로 그리스도교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신의의 표지인 반지는 신랑 신부가 영원히 결속되어 있고 사랑이 그들 안의 모든 불완전한 것을 온전히 완성시키며 그들 서로가 신의를 지킬 것이라는 징표가 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서로가 선물이며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 여겨질 때, 결혼반지를 보면서 서로가 말로 표현했던 신의와 그에 따른 사랑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를 성찰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께서 축복한 반지임을 기억하며 주님께 부부가 겪는 역경을 이겨나갈 힘과 지혜를 청하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큰 도움이 되지요.
하느님의 축복으로 완성되는 혼인성사!
신랑 신부의 합의와 결합이 혼인성사의 근본이지만 그 절정은 축복과 함께 이루어지는 영성체입니다. ‘혼인축복’은 일반적으로 주님의 기도 후에 행하지만, 캐나다와 독일은 혼인 예식 안에 배치했고, 이탈리아는 반지 교환 이후에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두었습니다.
축복 기도를 살펴보면, “하느님의 딸 아무에게는”이라고 하며 신부(新婦)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만, 신랑(新郞)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옛 북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로마의 규정과 풍습, 그리고 코린토 1서 11장 2~5절에 표현된 바오로 신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혼인축복’은 유다 전통에서 유래된 혼인축복인 토비야의 기도(토빗 8,5-8)을 연상시킵니다. 축복은 구원 역사에서 활동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기억하고, 성령을 청하며,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를 통하여 신랑 신부에 대한 은총을 간구합니다.
혼인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들의 혼인미사에서 읽힐 독서를 둘이서 함께 읽고 고민하여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부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하고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양육하는데 기초가 되는 성경 구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라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라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라는 것이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다’라는 것이다”라고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성숙한 사랑의 차원을 말해줍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자신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살펴보는 것과 함께 혼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혼인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리라는 ‘환상’은 결혼 생활을 ‘환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펼쳐진 과정을 보면, 사랑은 아프고 고통을 인내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만나는 기쁨과 행복의 순간들 덕분에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여정이 아닐까 하네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0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