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3(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 독서,복음서 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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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1-06-22 | 조회수11,93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제1독서<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5.3ㄷ),주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으셨다.>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5.1-12.17-18 그 무렵 1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엑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잘린 반쪽들을 마주 모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두미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하신다. 복음<너희는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잇다.>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 16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거두어들이고,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서 주해(해제.역주 정양모 신부님) 보면 나무를 안다.(19절-20절)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는 비유는 어록에 있었다. 루카는 6,43-45에 그것을 옮겨썼는데 선한 일을 보면 선한 마음을 알 수 있고 악한 말을 보면 악한 마음을 알 수 있다고 이해했다. 마태오는 어록의 비유를 두 곳에 옮겨 실었는데,12,33-35에서는 비교적 충실히 어록을 따랐고 7,15-29에서는 처음과 끝부분을 가필하여 비유의 뜻을 아주 바꾸었다. 곧 당시 여러 교회에 떠돌아다니면서 신도들을 현혹하던 거짓 예언자들을 잘 식별하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이들은 예수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 100년경 시리아에서 쓰인 디다케 11장에서, 당시 떠돌이 전도사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접대와 식별에 관해서 이런 기준을 마련했다. “사도는 하루 동안만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러도 됩니다. 그렇지만 사흘이나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사도가 떠날 때는 다음 머물 곳을 찾을 때까지 필요한 빵밖에는 더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 영으로 말한다고 모두가 다 예언자인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생활태도를 지녀야만 예언자입니다. 거짓 예언자와 참 예언자는 그 생활태도로써 밝혀집니다.... 진리를 가르치는 예언자라도 가르치는 것들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 누구든지 영으로 말한다면서 ‘내게 돈이나 다른 어떤 것을 주오’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마시오. 그러나 다른 빈궁한 이들을 위해서 달라고 한다면 아무도 그를 심판하지 마시오.” 19절 마태오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3.10)를 여기 삽입했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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