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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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3-14 | 조회수57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30314.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 사순시기의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는 “의로움”입니다.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맺음”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계맺음의 한편에는 “회개”가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용서”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참으로 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절대적입니다. ‘만약 상대가 회개하거나 용서를 청하면’이라든지 혹은 ‘상대가 준비가 되면’이라든지와 같은 조건을 달지 않으시고,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용서를 적당히 하거나 알량한 선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구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까닭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주셔도 그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자기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용서는 무색해지고 말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넘겨준 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간음죄와 살인죄를 지은 다윗, 성범죄를 지은 막달레나, 스승을 배반한 베드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바오로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용서했으며, 그래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사실,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바로 그 용서의 심연으로부터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 말씀은 용서받는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용서를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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