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9 사순 제4주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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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3-18 | 조회수34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 10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 다윗이 이스라엘 임금으로 기름부음을 받다.
제2독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주해 8절 전통적 세례 교리교육의 표상들이 사용된다. 4,22-25에서는 “옷”에 대해, 이어 5.1에서는 하느님을 “본받음”에 대해 말했거니와, 여기 8절에서는 쿰란 문헌과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의 특징인 “어둠과 빛의 대조”에 대해 말한다. 14절 이 글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불리던 어떤 찬미가에서 따온 것 같은데, 이사야서(이사 26,19: 51.17: 52.1: 66.1)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일부 소수의 사본에는 “그대 위에 그리스도 빛나시리라” 대신 “그대는 그리스도를 만지리라”. 13 그들은 전에 눈이 멀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갔다. 34 그러자 그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주해 6절 예수의 행동이 당시 민간요법에 따라 묘사된다. 예수로 인해 치유가 참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역점이 있다. 7절 시리아 나환자 나아만 치유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민간요법에 따른 예수의 행동이 어떤 마력을 가졌거나 그 자체로 인해 치유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에 역점이 있다(4.50 참조). 실로암은 히브리어 실로하흐의 그리스식 발음이다. 본래 뜻은 “물을 내어보냄” 또는 “수로, 운하”인데, 저자는 “파견된 자”라고 의역하여 그리스도와 관련 짓는다. 이 못은 예루살렘 도시 남동쪽에 위치한 기혼 샘물의 저수장으로서 오늘날도 그 흔적이 있다. 저자는 이 못을 그리스도와 연관시켜 “태생소경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자로 말미암아 이 연못에서 치유되었다”고 밝힌다. 태생소경은 예수의 말대로 행함으로써 나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권위있는 말씀”과 그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태생소경의 자세에 역점이 있다. 8절 태생소경이 거지로 소개되면서 치유기적의 첫 증인들도 소개된다. 9절 소경이 치유된 사실을 보고서도 그 기적적 치유 자체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눈을 뜨게 된 소경 자신이 기적적 치유 자체에 대해 확신을 가지도록 증언한다. 13절 안식일법을 위반한 죄인이 “이런 표징들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바리사이들의 또 다른 모습을 시사한다. “이런 표징들”이란 복수 형태는 그들이 예수가 행한 또 다른 표징들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리사이들의 이런 태도는 예수의 표징들이 그들을 당황하게 하여 곤경에 몰아넣었음을 보여준다. 예수의 계시적 행위들이 예수의 적수들에게 언제나 도전적이고 비판적이었음도 시사된다. 16절 예수의 치유행위를 안식일법 위반으로만 단정하고서 예수를 죄인으로 단정한다. 인정법에 얽매여 있는 바리사이들의 한 단면을 시사한다. 17절 당황한 바리사이들은 율법도 모르는 “거지”에게 묻기조차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지경에 빠진다. 치유된 자는 서슴없이 예수를 “예언자”라고 말한다. 예수를 “하느님으로부터 온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는 바리사이들의 생각을 뒤엎는 대답이다. 34절 시편 51,5: 욥기 14,4 첨조, 치유된 자의 입을 틀어박으려는 폭언이다. 바리사이들은 그가 소경으로 태어난 불행을 부모의 죄로 돌리고, 그를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로 몰아세운다. 회당, 곧 유다인 종교공동체에서 추방했다는 뜻이다. 35절 예수가 치유받고 회당에서 추방당한 자를 우연히가 아니라 일부러 찾아나서서 만났다는 뜻이다. 예수가 회당에서 추방당한 자를 찾아나선 목적이 언급된다. 즉, 그를 믿음으로 이끌고자 한 것이다. “나를 빋습니까?”하고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약간 숨긴 체 “사람의 아들”로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 이것은 믿음의 준비자세를 시험해 보기 위한 방법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은 지상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계시자로서 예수 자신을 가리킨다. 36절 선생님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칭이다. 그리스도론적 존칭이 아니다. 치유된 자의 믿을 준비자세가 표현된다. 37절 예수가 치유된 자로 하여금 충만한 믿음을 가지도록 자기 자신을 분명히 계시한다.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예수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이 시사된다. 38절 “사람의 아들”로 자신을 드러낸 예수를 받아들이고 믿는냐는 뜻이다. 이제 눈뜬 자는 믿음의 눈까지 뜨게 된다. 예수에 대한 믿음의 깊이와 효능을 드러낸 동작이다. 하느님께만 드릴 경배자세를 예수 앞에서 취함으로써 예수를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계시자, 곧 구세주로 믿는 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뒷통수를 맞아 어쩌다 눈알이 밖으로 빠질때가 있습니다. 이럴때에는 물로 씻어서 얼른 눈을 집어 넣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영혼의 눈을 뜨기 위해서는 눈을 빼서 거꾸로 집어 넣으면 보인다고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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