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만찬 성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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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4-06 | 조회수60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주님 만찬 성목요일] 요한 13,1-15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오늘 복음을 보다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이 더 힘들까요? 아니면 발씻김을 당하는 제자들이 더 힘들까요? 보통 우리는 발을 씻으시는 예수님이 더 힘드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열 두명이나 되는 많은 이들의 발을 씻기시느라 무릎을 꿇은 불편한 자세로 오래동안 계셔야 했을 것이고, 하루 종일 땀흘리고 모레가 묻어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만지는 것이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 불쾌하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행위에만 집중하여 발씻김을 당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발 씻김 예식'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발'은 답답한 신발 속에서 하루 종일 갇혀 지냅니다. 땀이 나서 축축하고 공기도 통하지 않는 답답한 환경에 오래 방치되어 있다보면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무좀이나 습진 같은 질병도 생겨 더 더러워지게 되지요. 그런 발이기에 누군가에게 내보이기가 꺼려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람은 보통 다른 이들에게 좋은 모습, 깔끔하고 멋진 모습만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가 자기 발을 씻으시려는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 못 씻으신다'고 완강하게 버틴 것도 그런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애써 가꾼 '좋은 모습'만 가려서 보여주는 관계는 참된 인간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관계는 편안하지 않기에 자주, 오래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안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또 보게되면, 그만큼 오해가 쌓이고 실망하게 될 것이고 그 실망이 깊어지면 미움이 되어 그 사람을 내 마음 속에서, 그도 나를 자기 마음 속에서 밀어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내 발을 씻겨주시도록 내어드려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허물,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분께 솔직히 보여드려야만 합니다. 내 발이 더럽다고 화를 내시거나, 나를 혼내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나의 발을 정성껏 씻어주시고 소중하게 닦아주시는 그분의 모습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따뜻하고 편안하며 또 좋은지를 비로소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 발을 씻겨주신 행동의 참된 의미가, 나 역시 누군가의 발을 씻어줌으로써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받기만 바라는 반쪽짜리 사랑은 우리를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없지요. 나의 더러움과 허물을 받아들여주시고 깨끗이 씻어주시어, 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다면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고마운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하라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와 사랑 속에서 참된 위로와 큰 기쁨을 누리며 살라고 우리에게 '행복의 길'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날이 첨예해지는 대립과 갈등으로 서로의 마음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오늘, 가족끼리 서로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감정적 거리 좁히기'를 실천해보면 어떨까요? 상대방의 발에 묻은 더러움을 씻어내며, 그를 향한 서운함과 미움들까지 깨끗하게 씻어보면 어떨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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