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금요일] 요한 18,1-19,42

“다 이루어졌다.”

‘십자가’는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형틀’입니다. 그렇기에 그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는 ‘실패’이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는 ‘절망’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자 ‘주님’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그 십자가가 희망과 기쁨의 상징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던 당신 말씀대로 당신께서 하느님의 계획과 뜻을 알려주시고 친구가 되신 우리를 위해 당신 목숨을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죽임을 당하신게 아니라, 죄에 짓눌려 죽어가는 우리 모습을 차마 외면하실 수 없어서 사랑에서 우러난 의지로 기꺼이 십자가를 끌어안으신 겁니다. 우리가 ‘의인’이었다면, 그냥 놔두어도 구원받는데에 지장이 없는 이들이었다면 굳이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으셔도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기에, 주님의 자비를 입지 않으면 혼자 힘으로는 죄를 씻을 수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는 부족한 이들이기에, 그런 우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난의 길을 걸으셔야 했습니다. 그런 속 깊은 사정을 알 리 없는 물색없는 자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당신을 조롱하며 침을 뱉어도 주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저들의 죄를 제발 용서해달라고,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채 거짓 선동과 감정에 휘둘려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고 있을 뿐이라고, 저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도 내가 대신 달게 받을테니 제발 저들을 살려주시라고...

“다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던 당신 약속대로 예수님은 우리를 끝까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우리에게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당신 목숨까지 다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봅니다. 죄 없는 어린 양이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살렸듯, 죄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당신 목숨을 희생하여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를 살리신 것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은 억누르고 군림하고 빼앗으러 오지만, 세상의 주님이신 예수님은 비천한 종일 뿐인 우리를 사랑으로 섬기시려고, 우리의 ‘몸값’으로 당신 목숨을 바쳐 우리를 죄의 속박에서 풀어주시고 제대로 살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세상에 오신 그 목적을 완전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도 그저 비통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실 승리와 영광을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지요. 사실 우리 마음이 쓰리고 아픈 그 때가 우리 마음 안에 심으신 십자 나무에서 행복이라는 꽃을 피우시는 주님 사랑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고통이 끝난 다음에 보상으로 오는게 아니라, 십자가 고통 한 가운데에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굳게 믿는다면 십자가 안에 깊이 스며든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