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창세기(12) 아담의 족보(族譜)를 통한 말씀 (창세5,1-32) | |||
---|---|---|---|---|
이전글 | 스스로 행복한 사람 |2| | |||
다음글 |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2|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09 | 조회수79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창세기(12) 2023. 4. 9. 아담의 족보(族譜)를 통한 말씀 (창세5,1-32) 1 아담의 족보는 이러하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를 만드셨다. 2 그분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창조하시던 날,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하셨다. 3 아담은 백삼십 세 되었을 때, 자기와 비슷하게 제 모습으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4 셋을 낳은 다음, 아담은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5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930) 년을 살고 죽었다. 6 셋은 백오 세 되었을 때, 에노스를 낳았다. 7 에노스를 낳은 다음, 셋은 팔백칠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8 셋은 모두 구백십이(912) 년을 살고 죽었다. 9 에노스는 구십 세 되었을 때, 케난을 낳았다. 10 케난을 낳은 다음, 에노스는 팔백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11 에노스는 모두 구백오(905) 년을 살고 죽었다. 12 케난은 칠십 세 되었을 때, 마할랄엘을 낳았다. 13 마할랄엘을 낳은 다음, 케난은 팔백사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14 케난은 모두 구백십(910) 년을 살고 죽었다. 15 마할랄엘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예렛을 낳았다. 16 예렛을 낳은 다음, 마할랄엘은 팔백삼십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17 마할랄엘은 모두 팔백구십오(895) 년을 살고 죽었다. 18 예렛은 백육십이 세 되었을 때, 에녹을 낳았다. 19 에녹을 낳은 다음, 예렛은 팔백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20 예렛은 모두 구백육십이(962) 년을 살고 죽었다. 21 에녹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므투셀라를 낳았다. 22 므투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 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365) 년을 살았다. 24 에녹은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그를 데려가신 것이다. 25 므투셀라는 백팔십칠 세 되었을 때, 라멕을 낳았다. 26 라멕을 낳은 다음, 므투셀라는 칠백팔십이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27 므투셀라는 모두 구백육십구(969) 년을 살고 죽었다.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 되었을 때 아들을 낳고, 29 “이 아이가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수고하고 고생하는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이다.” 하면서, 그의 이름을 노아라 하였다. 30 노아를 낳은 다음, 라멕은 오백구십오 년을 살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31 라멕은 모두 칠백칠십칠(770) 년을 살고 죽었다. 32 노아의 나이 오백 세 되었을 때, 노아는 셈과 함과 야펫을 낳았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이것은 아담의 족보 책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족보라는 말은 “톨로토드”라는 말인데, 이 말은 계보, 역사, 이야기 등으로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족보를 통해서 아담의 자손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아담의 족보에서는 카인에 관한 이야기는 없고 셋에 관해서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보았던 것은 카인은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뱀의 후손, 즉 이 세상 사람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담의 족보는 아담의 자손 중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아담의 족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①1.아담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模型)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5,1) 1 아담의 족보는 이러하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던 날, 하느님과 비슷하게 그를 만드셨다. 여기서 하느님이 처음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느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창세5,3) 3 아담은 백삼십 세 되었을 때, 자기와 비슷하게 제 모습으로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다. 원래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름을 받은 사람이지만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형상이 아니라 아담의 형상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하느님의 형상이 아니라 아담의 형상이 된 이유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죄가 들어왔고 그 죄의 결과로 이 땅에 죽음(死亡)이 들어왔습니다. 로마서5장 12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잘 보면 계속해서 “죽었다. 죽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가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5,12) 12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는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국가대표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가 경기에서 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한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진 것과 같습니다. (로마5,13-14)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모형)입니다. 성경에서 왜 이와 같이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우리도 다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서 죽음(死亡)이 왔다는 말씀은 아담은 오실 분이신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5,17-19) 17 사실 그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예수)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罪人)이 되었는데, 이제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義人)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이 땅에 왔는데, 이제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영생이 오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아담 배가 있습니다. 아담 배는 이 땅에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타고 있는 배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형상을 가지고 아담 배에 타고 있습니다. 이 아담 배에 사람들이 도를 닦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선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종교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 배는 이미 그 배에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담 배 안에서는 결국 사람들은 어떻게 살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배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배에 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예수님의 배안에서 조금 부족하더라도 이 배는 영생(永生)의 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반드시 영원한 하느님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②두 번째, 아담의 족보를 통해서 하느님과 동행(同行)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카인의 족보가 나옵니다. 거기 보면 아담으로부터 시작하면 아담이 1대고, 2대가 카인이고, 3대가 에녹이고, 4대가 이랏이고 5대가 므후야엘이고, 6대가 므투사엘이고, 7대가 라멕입니다. 카인이외에는 다른 자녀들에 대해서 설명이 없다가 7대손인 라멕에 와서는 길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라멕은 뱀의 후손 즉 하느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대표 격인 사람인 것을 말씀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지 않는 카인의 족보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카인의 족보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사람들을 죽이는 길로 걸어가는 것이 카인의 족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담의 족보와 4장에 나오는 카인의 족보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아담이 1대 손이면, 셋이 2대손이고, 에노스가 3대손이고, 케난이 4대손이고, 마할랄엘이 5대 손이고, 예렛이 6대 손이고, 에녹이 7대손입니다. 4장에 카인의 계보에서는 라멕이 아담의 7대손이었습니다. 그런데 5장에서 나타난 아담의 계보에서는 에녹이 7대손입니다. 그리고 4장에서 라멕에 관한 이야기가 길게 설명이 되어있는데, 7장에서 아담의 7대손으로 에녹에 관한 이야기가 길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5장의 아담의 족보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강조하는 에녹의 삶입니다. (창세5,21-23) 21 에녹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므투셀라를 낳았다. 22 므투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 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23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년을 살았다. 본문에 나오는 아담의 족보를 보면 계속해서 ‘죽었다. 죽었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의 삶에서 에녹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삶으로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다고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느님께서 데려갔습니다. (창세5,22) 21 에녹은 육십오 세 되었을 때, 므투셀라를 낳았다. 22 므투셀라를 낳은 다음, 에녹은 삼백 년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들딸들을 낳았다. 그러니까 에녹이 육십오 세가 될 때까지는 에녹도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에녹에 육십오 세에 므투셀라를 낳고 난 다음입니다. 보통 믿음의 가정에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결혼을 하고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녀를 낳고 난 다음에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동안 신앙의 가정에서 눈으로 보아왔던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도 이 신앙을 전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에녹이 65세까지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하다가 65세가 됨으로 하느님과 동행한 그 이유를 에녹이 이름을 지은 므투셀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므투셀라 라고 하면 969세를 살았던 것만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므투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이 아이가 죽으면 이 땅에 하느님의 심판이 온다”입니다. 우리가 보통 이름을 지을 때 좋은 이름을 짓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에서 하람이라고 짓기도 하고, 또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뜻에서 예람이라고 짓기도 합니다. 그런데 에녹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이 아이가 죽으면 이 땅에 하느님의 심판이 온다”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 진짜 므투셀라가 죽었을 때 이 땅에 하느님의 심판이 왔습니까? 그렇습니다. 므투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습니다. 그리고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습니다. 그러니까 라멕이 노아를 낳았을 때 므투셀라의 나이가 187+182=369살입니다. (창세7,11-12) 11 노아가 육백 살 되던 해 둘째 달 열이렛날, 바로 그날에 큰 심연의 모든 샘구멍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렸다. 12 그리하여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가 내렸다. 369+600=969세가 됩니다. 그러니 므투셀라의 이름의 뜻대로 므투셀라가 죽던 해에 이 땅에 심판이 왔습니다. (유다1,14-15) 14 저들을 두고 아담의 칠 대손 에녹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보라, 주님께서 수만 명이나 되는 당신의 거룩한 이들과 함께 오시어 15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고, 저마다 불경스럽게 저지른 모든 행실에 따라, 불경한 죄인들이 당신을 거슬러 지껄인 모든 무엄한 말에 따라 각자에게 벌을 내리신다.” 여기도 보면 에녹은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경건하지 않은 일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에 대하여 예언하는 자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녹은 므투셀라를 낳고, 이름을 지으면서 이 땅에 심판이 하느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는 300년 동안을 하느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에녹이 65세에 므투셀라는 낳으면서 이 땅에 하느님의 심판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이 대해서 에녹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었던 것도 있겠지만 이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녹의 조상들의 신앙교육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아담은 모두 구백삼십 년을 살고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볼 때 이 때 아담이 참으로 오래 살았구나. 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계보에 아담의 나이를 기록하고 있습니까? 아담이 930세는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56살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이 56살이 될 때까지 살았습니다. 이때 아담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면 무엇을 말했겠습니까? “나는 원래 하느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에덴동산에서 살았다. 그때 나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먹었다. 하느님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사탄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 나는 사탄의 시험이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었단다. 그래서 결국 에덴동산에 쫓겨났단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란다. 그런데 자손들아 우리만 죽는 것이 아니란다. 결국 이 땅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이 아담의 족보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올 하느님의 심판을 생각함으로 ‘늘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여자의 후손이고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면 에녹처럼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1)매일을 종말의 날로 여길 때 우리가 진정으로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에녹은 조상들로부터 이 세상이 끝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의 이름을 부를 때 마다 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사실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매일을 종말의 날로 여길 때 우리도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을 종말의 날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개인의 종말인 죽음을 항상 생각하는 것입니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인간이란 코에 호흡만 끊어지면 먼지와 같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종말을 생각함으로 하느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2)또 우리는 믿음으로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히브11,5-6) 5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믿음으로 하느님과 동행함으로)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에녹은 믿음으로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느님이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에게 상(償)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에녹과 같이 하느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하느님께서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가 나의 속에 계심을 믿고, 내 곁에 계신 예수님과 나는 항상 손을 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갑니다. 3)또 오늘 본문에 보면 “(에녹은) 므투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느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고 합니다. 에녹에 삼백년을 하느님과 동행했다고 하니까 에녹이 자녀를 돌아보지 않고 매일 기도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에녹은 하느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자녀들을 낳는다는 말이 단순히 그 아이를 출산했다는 것만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아이를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그 아이를 위해서 밖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에녹은 하느님과 동행했습니다. (아모3,3절) “두 사람이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같이 갈 수 있겠느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에녹은 자녀를 교육할 때도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또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할 때도 하느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여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하느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이 예배의 자리만 아닙니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모든 삶 가운데서 날마다 하느님을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서 우리의 모든 삶 가운데서 하느님과 뜻을 같이하여 하느님과 동행하며 살아갑시다. ③3.아담의 족보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해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카인의 족보를 보면 카인의 자손들은 자녀들에게 가축을 기르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또 음악을 가르쳐 줍니다. 또 기술을 가르쳐 줍니다. 또 큰 성(城)도 남겨줍니다. 그런데 카인의 족보에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족보에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을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왜 930살을, 라멕이 56살 때까지 살았습니까? 그렇게 아담이 오래 살면서 라멕에게 무엇을 말했겠습니까? “자손들이 나를 보라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는 줄 아느냐 그것은 너희들의 신앙교육을 위해서다. 자손들아 나를 보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나만 아니라 너희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손들아 너희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며 살아라”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이 노아에게로 내려갔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노아는 하늘에서 떨어진 자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조롱해도 방주를 짓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9장에 보면 노아도 실수를 하는 별 수 없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아버지 라멕을 통해서 “노아야 나는 65살까지 아담할아버지를 직접 보았다. 아담 할아버지는 내게 순종을 당부하셨다. 그러나 내 아들 노아야 너는 하느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순종하는 자가 되라. 그러면 비록 이 땅에 심판이 있지만 너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또 셋은 하느님께서 아벨 대신에 준 자손입니다. 그런데 셋은 자녀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습니다. 에노스는 ‘치료가 불가능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재난 가운데서 고난과 고생가운데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아 인간은 재난 가운데 고난과 고생가운데 살 수 밖에 없는 자란다. 그래서 너희들은 오직 야훼 하느님만 부르짖으면 살아가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또 마할랄엘의 뜻은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카인의 후손인 라멕은 자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폭력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마할랄엘의 아버지 케난은 “아들아 너는 하느님을 찬양해라 하느님을 노래하라”는 뜻에 그 아들의 이름을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지었습니다. (요한8,38)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유대인들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지식적으로 배웠지만 결국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정의 신앙교육은 단순히 지식적인 말로만의 교육이 아닙니다.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교육입니다. 아이들에게 ”나는 하느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죽이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을 생각해도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담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삶으로 진정한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서 우리 자녀들 가운데 하느님과 동행하는 에녹과 같은 자녀들이 나오기를 바라며 또한 이 심판받을 세상을 위로하고 안식을 줄 수 있는 노아와 같은 자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