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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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4-09 | 조회수39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주해 22절 22-26절에서는 사도들이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해 증언한다. 예수의 삶 가운데 하느님이 예수를 거쳐 이스라엘에 행하신 기적들을 든다. 그러나 사도들의 이 증언에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 전체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23절 23.24-32절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둘러싸고 인간과 하느님이 보여 주신 행위들이 대비되는 정식定式이 등장한다. 이 대비정식은 루카의 편집요소로서 사도행전의 다른 선교설교에도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곧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따라 돌아겼다. 그러나 동시에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유다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악한 행위까지도 하느님으로부터 예정된 것인가? 이런 예정설은 루카를 루카를 비롯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신학적 관점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사변적 신학 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저자들은 단지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느님이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구원의 실현과정을 당신 뜻에 따라 이루신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이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음도 아울러 지적한다. 25절 25-28절은 시편(LXX) 15,8-11ㄴ을 인용한 것이다, 루카는 이 시편 구절을 예수 부활을 예고로 풀이한다. 그는 인용문의 단수 일인칭 “나”를 예수와 동일시한다. 29절 대략 10세기 말엽부터 순례자들이 시온 산 위에 있는 이른바 최후만찬 방 아래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참배하곤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다윗은 다윗 도시에 묻혔다. 다윗 도시 남쪽에 큰 인조동굴 둘이 있는데, 다윗을 비롯하여 왕족들이 묻힌 동굴들이라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이다. 30절 루카는 시편저자를 예언자로 확신한다. 루카는 현재 대목에서 시편저자 다윗이 자기 자손 가운에 태어난 메시아가 부활한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자손”의 직역은 “허리의 열매”다. 33절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높이 올려져” 대신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손으로 높이 올려져”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주석가 절대 다수는 우리 역문처럼 번역한다. 루카는 예수의 승천을 가리켜 그런 표현을 썼다. 루카는 예수 부활과 승천을 구분한 까닭이다. 그러나 루카말고 신약의 다른 이들은,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되셨다. 또는 높이 올려지셨다고 한다, 즉, 예수 부활은 성부 우편 좌정 또는 고양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로마 8.34: “죽으시고 더구나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에페 1.2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시고 하늘에서 당신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필립 2.9: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지극히 높이시어 어느 이름보다도 빼어난 이름을 그분에게 내리셨도다.” “높이 올려짐”과 “성령의 약속”의 연결은 루카가 전승에서 빌려온 것이다, 부활하여 아버지의 배려로 고양되신 예수께서는 지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 성령을 쏟아 부으신다.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약속을 받으신 그분이 이제 성령의 원천이 되신 셈이다. 복음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주해 8절 마르 16.8에 따르면 “그들은 나와서 무덤에서 도망쳐버렸다. 그들은 벌벌 떨고 당황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겁을 먹었던 것이다”. 마태오는 8절에서 마르코를 대폭 고쳐쎴다. 여자들은 겁도 먹었지만 기쁨에 들떠서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려갔다고 한다. 마태오는 제자들이 아직은 예루살렘에 있다고 보았다. 맨 먼저 여자들에게 나타나시다 예수께서는 부활 당일 맨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예수께서 부활 당일 맨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발현사화가 요한 20,14-18에 전해온다. 마르 16,9-10에도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간략한 발현사화가 수록되어 있으나, 이는 2세기의 어느 필경사가 요한 20,1,14-18을 요약한 것에 불과하므로 독자적인 사료가 못 된다. 9절 “기뻐하시오”는 그리스식 인사말. 부인들이 빈 무덤에서 천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겁도 나고 기쁨도 컸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되니 겁은 사라지고 기쁨이 가득하다. 10절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하셨고, 종말 심판관인 인자는 지극히 미천한 이들을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하신다. 28.10에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체포되는 순간 도망쳤던 제자들을 당신의 형제들이라고 하심으로써 그들을 다시 포섭하신다. 헛소문을 퍼뜨리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경멸할 때 쓰는 낱말 “유다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오는 점에 유의하라. 그리고 이방인들만이 입에 담는 “유다인들의 왕”은 2.2; 27.11.29.37에 나온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오빠 나도 성당에 한번씩 나가야 되겠는가벼." 삼십년정도 쉰 동생이 그런다. 나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소리다. 그러면서 "내가 하느님을 있는지 없는지 보았간?" 그래서 난 "마음이 깨끗해야 볼 수 있지." 그랬더니 "그럼 내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단 말야" 그래서 난 "그런 너는 오직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거짓없이 사냐?" 했더니 "그렇게 생긴 사람들은 광신도야." 그래서 ..넌 아직도 하느님을 모르고 오직 무당판이나 다니는 사람이구나." 하곤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겨우 한다는 것이 사회생활은 강해야 된다며 그런 책이나 읽고 모두가 원시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같다. 무슨 심리학도 공부하고. 어쩌구. 그런데 시련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난 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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