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리스도인 (루카24,13-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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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12 | 조회수34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그리스도인 (루카24,13-35) 주간 첫날(예수님의 부활) 13 바로 그날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60)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는, 곧 자신들의 죽음과 부활이 있는 곳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율법의 예루살렘을 당신의 죽음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그 새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앎,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엠마오 길이란 그런 것이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 예수님은 늘 찾아오시는 분이다. 우리가 못 알아 볼 뿐이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곧 감추어진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눈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 희망이신 예수님을 모르니 침통하다. 걸어가면서 - 우리의 삶에서 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뜻한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 착각하고 있는 제자(우리)들이다. 예수님 혼자만 아신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 이스라엘의 모든이들, 사제, 제자들까지 예수님께서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믿었다.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을 자신들의 뜻을 위한 힘으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인 죄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대속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지려 오셨다.
(루가9,22) 22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 여전히 보이는 것만 보고 있는 것이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말씀하시는 것이다.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 성경의 모든 말씀은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 그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만 기록했다. 그러니 성경 말씀으로 자신들의 욕망, 뜻을 위한 힘으로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것이고 강도요 도둑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게 살기에 십자가의 예수님과 함께 두 강도가 달리는 것이고, 오늘 그 비유로 두 제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 강도임을 자각하는 이가 구원을 위한 자비를 청할 수 있다.
(루가23,39-43)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빵을 떼어~ 빵의 찢어짐, 빵이신 예수님의 찢어짐, 곧 대속의 죽음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을 뜻한다.
(루가22,18-20)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보이는 열매는 결코 아니라는, 그런 것을 행하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을 믿는(간직하는), 지키는 행함을 말씀하신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 보이는 예수님과 함께하면 안된다. 보이지 않는, 곧 그분의 피로 얻는 구원의 새 계약을 붙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도 당신을 더 이상 ‘붙들지 말라’ 하셨던 것이다.(요한20,17)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 말씀을 듣고 마음이 타올라야 한다.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이 아니라 불, 성령의 불이 타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루가12,49)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 불은 피조물의 더러운 것을 다 태워 정화시킨다. 그렇게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 구원이다. 그것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분이 곧 성령이시다.(로마8,1~ 히브10,15~ 참조)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 보이는 것 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자비, 사랑을 전하는 것이 이웃 사랑이다.
♱ 천주의 성령님! 저희를 의탁하오니 저희 안에 타 오르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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