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이전글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1|  
다음글 생활묵상: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법언 |1|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3 조회수500 추천수1 반대(0) 신고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루카 24,35-48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사람들은 너무나 기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 맞는지를 실감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너무나 놀라운 나머지 ‘이게 꿈이냐 생시냐?’라고 물으면서,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걸 확인하기 위해 자기 볼을 세게 꼬집어 보고 아픔이 느껴지는지를 체크해 보기도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컴컴한 방에 모여 귀신이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갑자기 놀래키면 정말 귀신이 나타난줄 알고 깜짝 놀라는 아이들처럼, 동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하는걸 한창 듣고 있던 와중에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시니 너무 놀라 뒤로 나자빠질만도 하지요.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놀란 것은 단지 예수님이 갑자기 나타나셨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두 가지 ‘의혹’이 있었던 것입니다. 첫째 의혹은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의혹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홀연히 자기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 속에 두려움을 품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친 우리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기 위해 유령이 되어 나타나신게 아닐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의혹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한 의혹입니다. 자기들은 예수님께서 큰 곤란을 당하실 때 제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그분을 버리고 도망쳤는데, 그분께서 극심한 고통과 모욕을 당하실 때 박해와 죽음이 두려워 그분 곁에 있어드리지 못했는데, 그런 자신들이 예수님께 용서받을 수 있을까, 주님께서 자신들을 원망하시지는 않을까, 당신을 배신한 자신들을 단죄하고 벌 주시지는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감히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쭈뼛거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을 원망하거나 단죄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승의 죽음이라는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제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방황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셨지요. 그래서 제자들을 만나시자 마자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신 겁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자신의 부활에 대해, 주님의 큰 사랑과 자비에 대해,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에 대해 굳은 믿음을 지니게 되기를, 그리고 그 믿음의 힘으로 그 어떤 고통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평정심’의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자상한 배려와 큰 사랑 덕분에 부족했던 과거의 자신과 화해합니다. 두려움과 공포 앞에서 한 없이 작아졌던 자신의 비참함, 스승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하고 배신했다는 죄책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동료들의 증언을 의심하고 무시했던 완고함을 주님께서 용서와 사랑으로 다 품어안아 주신 덕분에 그런 부정적인 부분들마저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된 겁니다. 그러자 마음 속에서 주님께 대한 감사함과 사랑이 우러나왔고 그렇게 주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잔뜩 주눅들어 주님께 ‘죄송하다’는 표현조차 제대로 못했던 그들이, 자신과 그리고 주님과 화해한 후 그분께 ‘수고(受苦)하셨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인사드리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수고’라는 말은 타인을 위한 고생과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수고’하셨으니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주님을 위해, 그리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랬듯 다른 이들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통해 그분과 화해하도록, 그렇게 주님과 같은 곳, 즉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고 함께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은총을 입은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