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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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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5 조회수768 추천수6 반대(0)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모든 움직임은 그 시작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은 충전을 해야 작동합니다.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시작을 신이라고 합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태풍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든 일의 최종 원인을 신이라고 합니다. 모든 존재는 필연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있어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의 시작을 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성과 오성 그리고 감성으로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진, , 미는 더 높은 존재에 의해서 주어졌습니다. 이렇게 진, , 미의 시작을 신이라고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려야 가을에 곡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우주의 씨를 뿌린 시작이 있는데 그 시작을 신이라고 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은 철학자들에게는 교과서와 같았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인 신의 존재 증명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 깊이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성서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선한 마음을 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구름, , , , 바다 그리고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에게 하느님을 닮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측은지심의 마음, 수오지심의 마음, 사양지심의 마음, 시비지심의 마음입니다. 인간은 이 마음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나 더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이 자유의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높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지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로봇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느님을 향할 수 있도록 모세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예언자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시기에 이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 주셨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는 이 구원의 역사, 사랑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쁜소식을 선포하셨습니다. 기쁜소식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기쁜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표징과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눈먼 이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듣지 못하는 이는 듣게 해 주셨고, 중풍병자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셨고, 무덤에 묻힌 지 3일이 지난 라자로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이 기쁜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새로운 권위를 보여 주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지치고 힘든 이들은 모두 나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멍에와 짐은 편하고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기쁜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하고, 병든 이들에게 기쁜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어둠에 빛을 주셨고, 절망 중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셨고, 이방인들에게 빛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기쁜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했던 대사제와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빌라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군중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긴 유다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입니다. 기쁜소식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는 권력에 의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에 의해서, 믿었던 제자의 배반으로, 군중들의 무지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올랐습니다. 무참하게 하느님의 아들이 허무하게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지 삼일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는 이상한 소문이 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입니다. 그 소문의 시작은 빈무덤이었습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았으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무덤으로 달려갔으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만져봐야만 믿겠다는 토마사도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이렇게 성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증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신앙으로 증거하였습니다. 매일 성전에서 기도하였고, 가진 것을 기쁘게 나누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고,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 초대교회의 공동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이 기쁜소식이 온 세상에 전해졌습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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