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2주일] 주님과 우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요한20,19-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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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16 | 조회수35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부활 제2주일] 주님과 우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요한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잠가 놓은 문, 곧 주님께서 선택하신 이들의 문(집, 마음)을 뚫고 들어오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당신의 대속으로 다 씻겨 졌으니 평화를 누리라 하신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 대속으로 못 박히셨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다. 십자가로 거저 얻는 의로움, 곧 구원의 새 계약의 피와 물이 흘러내린 그리스도의 옆구리다. 그러니 평화를 누리라 하신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 곧 끝나버릴 그것도 위장된 세상의 평화가 아닌 영원한 하늘의 평화를 전하라 하시는 것이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 성령을 받아야 우리(나)가 주님의 대속, 그 구원의 새 계약으로 거저 용서 받았음을 믿을 수 있고, 다른 이들도 용서 받도록, 용서가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힘, 지혜로 십자가의 복음을 진리로 전하라는 말씀이시다. 그것이 큰 계명의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함 이다.
(창세2,7)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첫 창조는 숨으로, 흙이 생명이 될 수 있는 생명체가 된 것이다. 그 생명체인 사람을 그 또한 죄로 죽어야 했던 그 옛사람을 그리스도께서 다시 숨, 성령으로 재 창조, 새 창조로 새 사람, 곧 하늘의 생명이 되게 하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대속, 그 새 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ㄱ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 토마스는 얼마나 부러웠을까?
25ㄴ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도 두려워서 문을 잠가놓고 떨고 있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주님을 뵙고도 여전히 떨고 있었으며 주님은 왜 그런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까? 하는 의문이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뵙고 싶었던 것이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았을 때 했던 토마스의 말 그대로 예수님께서 똑 같이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늘 토마스 곁에 함께 하셨던 것이다. 곧 당신께서 선택한 이들을 구원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요한13,1)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예수님의 사랑으로 시작하셔서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 구원의 완료, 종결이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 그분의 대속으로 거저 의롭게,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죄로 대신 못이 박힌 손,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 그 죽기까지 끝까지 하신 사랑하심이다. 그러니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하신다.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 믿음을 고백한 것이다. 곧 믿음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믿음은 보고, 안보고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주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믿음은 우리의 결핍을 찾아내서 채우는 방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거저 한번에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주님과의 만남이 중요한 것이다. 만남은 그분 말씀을 기억(기도)하는 것이다.
(히브12,2) 2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진리로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토마스는 보고서 믿겠다고 부활의 주님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 보는 행위에 앞서 *만남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자 *믿음이 토마스에게 들어와 버린 것이다. 믿음이 들어와 토마스가 믿는 자가 된 것이다. 하늘의 믿음으로 믿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29ㄱ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 ‘나를 보고 믿겠다고? 그것은 아니지’ 하시는, 되물음이신 것이다.
29ㄴ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바라크-福)하다.” = 보이지 않고 믿는 것이 福(바라크)이다. 하신다. 곧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복음, 그 구원의 말씀 선포를 듣고 믿는 사람이 福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보호자 성령의 이끄심으로 온전히 깨달아 올바로 믿는 이가 복이다.’ 하시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올바른 믿음이다.
(1코린2,9-10) 9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0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성령의 인도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감추어진 뜻을 깨닫는 것이 복인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 그 진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고, 성령께서 그 십자가를 진리로 우리에게 적용하시어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다.(로마8,1~ 히브10,15~ 참조)
그래서 요한은 이 책의 목적이 예수님으로 얻는 영원한 생명임을 밝힌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아멘>
☨천주의 성령님! 저희를 충만하게 하시어 복 받은 자임을 기억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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