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7 부활 제2주간 월요일...독서,복음(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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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4-16 | 조회수47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제1독서 <기도를 마치자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 27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분, 30 저희가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는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주해 24절 “주재자”(데스포테스)는 생사대권을 쥔 절대지배자라는 뜻이다. 루카 2.29; 사도 3.13; 묵시 6.10에서는 하느님을 2베드 2.1; 유다 4절에서는 예수를 그렇게 부른다. 25절 25ㄴ-26절은 시편 2,1-2인용문 25ㄴ-26절 인용문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루카는 27절에서 헬라도/이방인들과 안티파스/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적용했다. 이방인들 . 이스라엘 백성들 25ㄴ절 이방인들. 백성들 26절 통치자들. 세상의 왕들 27절 본티오 빌라도 헤로데 안티파스 이방인들 이스라엘 백성들 27절 “이스라엘 백성들”중 백성의 복수는 뜻밖이다. 루카가 25ㄴ절의 “백성들”을 이스라엘 민족에 적용하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루카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성하는 열두 지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저들이 “당신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렸나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실 때 성령이 내리신 것을, 하느님이 그분께 기름을 부으신 것이라고 루카는 풀이했다. 사도행전에서는 네 차례에 걸쳐 예수를 하느님의 종이라고 한다. 28절 앞서 2.23에 예수께서는 한편으로 하느님의 뜻과 선지先知에 따라 돌아가셨고 또 한편으로 인간들의 잘못으로 처형되었다는 언급이 있었다. 29절 “온전한 확신으르” 또는 “확신으로” 신념을 자유롭게 발설하는 용기를 뜻한다. 31절 “모여 있던 곳이 흔들리고”는 하느님이 신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가시적 표지다. 하느님으로 말이맘아 하늘 또는 땅이 흔들린다는 소재는 마르 13.25=마태24.29=루카21.36;사도 4.31; 16.26; 히브 12.26-27에 나온다. 복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4 니코데모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7 ‘너희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내가 말하였다고 놀라지 마라. 주해 1절 니코데모는 바리사이로서 유다 최고의회에 속한 자로 소개한다. 또한 예수로부터 이스라엘의 명성 높은 “선생(율사)으로” 인정받는다. 요한복음에만 보도된 그는 예수 편에서 활동하면서 단계적으로 예수를 가까이 따르고자 한다. 2절 이목을 두려워하는 니코데모를 시사할 수도 있고 니코데모가 어둠에서 빛으로 온 것을 상징할 수도 있다. 또한 율법 공부가 주로 밤에 행해지던 당시 관례를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니코데모가 예수를 어느 랍비보다 뛰어난 “선생”으로 인정하고 고백한다. “우리”라는 표현 속에 자신과 같은 신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시사되어 있다. 그러나 과장된 예외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니코데모가 예수에 대한 고백의 동기를 밝힌다. 예수가 행한 표징이 니코데모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는데, 그 표징이 하느님이 예수와 함께하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니코데모는 예수의 표징을 보고서 감화를 받았을 뿐이다. 따라서 그의 고백은 믿음이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믿음의 눈으로 “표징”을 보고서 이루어진 그런 신앙고백은 아니다. 니코데모의 오해나 몰이해 가운데 계속되는 예수의 대화가 이를 반증한다. 3절 “위로부터”는 천상적.신적 세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위로부터 난다”라는 말은 “하느님으로부터 난다”라는 뜻과 같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행위가 강조된 표현으로서 하느님에 의해 인간이 “새로 태어나서”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나라”는 시간적 개념 아래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가 전에 있었던 곳으로 가서 함께 머무는 천상적인 곳으로 소개된다. “하느님의 나라를 본다”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공간적 표현과 함께 인간 구원을 뜻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공관복음에서 흔히 보이는 용어이지만, 요한복음에서 흔히 보이는 용어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이 대목에서만 언급된다. 이 용어는 요한복음에서 흔히 나오는 “생명”또는 “영원한 생명”에 상응한 개념이다. 4절 니코데모의 오해가 언급된다. “위로부터”보다 “태어난다”에 역점을 둔 니코데모의 생각인즉, 인간에게는 단 한 번의 탄생밖에 없다는 것이다. 5절 니코데모가 간과한 “위로부터”와 관련지어 “위로부터난다”는 말이 “물과 영으로부터 난다”는 말로 다시 설명된다. 이 표현은 초대교회 세례와 관련된 듯하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영”에 역점이 있다. 즉 천상적, 신적 영역으로부터 태어나는 초자연적 특성을 말하고자 한다. 따라서 “위로부터 난다”는 말은 하느님의 영을 통해 새로 태어남을 가리킨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언급된다. 6절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육”과 “영”의 존재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말로써 대조되어 설명한다. “영”으로부터 난 자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니, 태어날 때부터 “육”의 영역에 속한 모든 인간은 반드시 “영” 곧 “위로부터” 새로나야 한다는 것이다. 7절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따르도록 촉구한다. 8절 히브리어 루하와 그리스어 프네우마는 “땅”과 “바람”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영”으로부터 새로 태어난 자의 정체와 실존을 “바람”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영”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설명되어 있지 않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시어 인간의 육신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이 물세례를 줄 때 세례를 받으러 가니 세례자가 깜짝 놀랍니다. 오히려 내가 가야할터인데 저에게 오시다니요? 이러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가요? 물세례를 받고나서 견진성사를 받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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