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17. 부활 제2주간 월요일.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니코데모는 최고의회 의원으로서 세상의 명예와 권력과 재물을 다 지닌 탄탄한 지위에도 불구하고 참된 행복을 찾지 못한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밤에” 그가 찾아온 것은 단지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는 신중함이나 두려움만이 아니라, 그의 영혼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사실 ‘밤’의 의미는 무지와 불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여 어둠 속을 걷고 있으니 세상의 기초들이 모두 흔들린다.”(시 82,5)
<로마서>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밤은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무기를 갖춥시다.”(로마 13,12)
오늘 복음에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요한복음>에서 “위”(아노텐: 위, 새로)란 단어는 다섯 번 나오는데, 여기에서는 ‘높은 데, 하늘 혹은 하느님으로부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하느님 아들의 모습을 갖게 됨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유대인인라고 해서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단순히 생활 개선이나 악습을 고치거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권능에 의한 전적인 새로운 변화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께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
이는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그 물로 깨끗해지고, 예수님의 숨이신 성령으로 죄 사함을 받아 태어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십자가의 죽음에서 새로 태어난 부활생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선사받은 생명이요, 변화된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생명”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요한 3,8)
그처럼, ‘영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오히려 변화의 영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 그렇게 변화되는 일, 그리하여 변화된 눈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일, 모든 것 안에서 당신의 현존과 활동, 곧 그분의 사랑을 보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영으로 새로워진 까닭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영에서 태어난 이”(요한 3,8)
주님,
제 영혼의 무지를 깨우소서. 빛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제 영혼의 밤을 몰아내소서. 제 어둠의 행실을 벗기소서.
당신 빛으로 당신을 뵈옵게 하소서.
세상이 이토록 경이로운 것은 세상이 새로워져서가 아니라, 제가 새로워진 까닭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