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창세기(21) 말씀을 따라 갔고 (창세11,27-12,4) | |||
---|---|---|---|---|
이전글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3.04.18) |1| | |||
다음글 | 남을 도와주어라! |1|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18 | 조회수37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창세기(21) 2023. 4. 18. 화 말씀을 따라 갔고 (창세11,27-12,4) 27 테라의 족보는 이러하다. 테라는 아브람과 나호르와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 28 그러나 하란은 본고장인 칼데아의 우르에서 자기 아버지 테라보다 먼저 죽었다. 29 아브람과 나호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라이이고 나호르의 아내 이름은 밀카였다. 밀카는 하란의 딸로서 이스카와 동기간이었다. 30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31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32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오늘 본문 27절에 보면 테라의 족보가 나옵니다. 여기서 족보(族譜)라는 말이 톨레토트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앞에서 계보 족보라는 이름으로 번역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이 말은 역사 또는 이야기라는 뜻도 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톨레토트라는 말이 시작이 될 때 항상 새로운 역사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테라의 족보는 바벨탑 이후에 하느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벨탑은 이 세상나라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나라사람들도 모두 하느님의 일반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생명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은혜를 주신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 바벨탑을 통해서 인간의 나라 세상의 나라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제 셈의 후손이고, 테라의 아들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느님나라를 이루시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느님나라를 이루시는 이야기가 창세기 12장부터 나오는데 테라의 족보는 그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가족들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11,27) 27 테라의 족보는 이러하다. 테라는 아브람과 나호르와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 테라가 아브람과 나호르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다고 합니다. 언 듯 보면 아브람이 첫째고 나호르이 둘째고 하란이 셋째라고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하란이고, 둘째가 아브람이고, 셋째가 나호르입니다. 유대인의 전승에 아브라함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는 본처를 통해서 자녀를 낳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첩을 통해서 자녀를 낳았는데, 그 자녀의 이름이 하란입니다. 그래서 하란이 테라의 첫째 아들입니다. 그 후에 테라가 본처를 통해서 자녀를 낳는데, 본처를 통해서 낳은 아들이 아브람이고, 나호르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아브람의 이름이 먼저 있는 것은 본처를 통해서 낳은 첫째 아들이 아브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인 하란과 아브람의 나이차이가 60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란은 아브람을 자신의 아들처럼 사랑하고 아꼈다고 합니다. 특별히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는 갈대아우르에서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첫째 아들인 하란은 신앙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란은 노아의 손자인 아르박삿을 통해서 노아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창세11,10) 10 셈의 족보는 이러하다. 셈은 나이가 백 세 되었을 때, 아르팍삿을 낳았다. 홍수가 있은 지 이 년 뒤의 일이다. 이때 하란은 항상 아브람을 데리고 아르박삿에게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르박삿을 통해서 노아 홍수전에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했으며, 노아의 가족들이 어떻게 방주에서 살아났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방주에 들어갔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방주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람이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병이 낫지 않자 하란은 자신의 집에 있는 우상들 때문에 아브람이 병이 걸린 줄 알고 그 모든 우상 드리빔을 태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란이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8절에서 (창세11,28) 28 그러나 하란은 본고장인 칼데아의 우르에서 자기 아버지 테라보다 먼저 죽었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까 죽은 형 하란의 아들 조카 롯은 아브람에게는 자신의 아들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조카 롯을 아들과 같이 끝까지 보살펴 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땅을 선택할 때도 아브람은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롯이 곤경에 처했을 때 가서 롯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소돔 땅이 심판을 받기 전에 롯을 구출합니다. (창세11,29) 29 아브람과 나호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라이이고 나호르의 아내 이름은 밀카였다. 밀카는 하란의 딸로서 이스카와 동기간이었다. 큰 형인 하란이 죽고 난 다음이 아브람과 나호르가 장가를 갑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아내 이름은 사라이이며 나호르의 아내 이름은 밀카인데, 하란의 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나호르의 아내가 형인 하란의 딸이라고 합니다. 나호르은 자신의 조카딸과 결혼합니다. 이것도 고대 근동 사회니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테라의 첫째 아들인 하란은 아들이 롯이고, 딸인 밀카 또한 이스카인 것을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이것을 그림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테라의 첫째 아들인 하란과 둘째 아들인 아브람은 하느님을 잘 섬겼는데, 셋째 아들인 나호르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하던 우상을 만드는 일을 하였고, 또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당시의 무역도시였던 하란으로 미리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창세24,10) 10 그 종은 주인의 낙타 떼에서 열 마리를 데리고, 또 주인의 온갖 선물을 가지고 나호르가 사는 성읍인 아람 나하라임(하란(메소포타미아))으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서 종을 하란(메소포타미아)으로 보내는데 거기서 나홀의 성(城)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호르는 하란에서 큰 성읍을 이루고 거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아브람의 아내가 사라이라고 합니다. 사래는 아브라함의 이복(異腹)누이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아내 사라이를 누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그는 정말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아내가 되었습니다.”(창세20,12) 고 하였습니다. 사라이라는 이름의 뜻이 공주라고 하는데, 사라이의 얼굴이 아주 예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성경에서 얼굴이 예쁜 여인이 사라이 라합 아비가일 에스델이 있는데 이 중에서 사라이가 제일 예쁘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내 아비가일도 예쁜데, 사라이에 비하면 원숭이와 같다고 합니다. 사라이가 127세를 살았는데, 100살 때 사라이는 20살과 같았다는 이야기가 유대인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라이가 65세 즈음에 애굽에 가서도 아브라함이 사라이를 누이라고 하고, 또 사라이가 90살 즈음에 그랄에 갔을 때도 누이라고 한 것이 그 만큼 사라이가 예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창세11,30) 30 사라이는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어서 자식이 없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임신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당시에는 고대 근동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큰 결핍이고 고통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하느님나라를 이루는 최초의 사람으로 부르신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항상 인간에게 큰 결핍과 고통과 어려움을 주심으로 하느님나라의 역사를 시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노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아도 500살까지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500년 동안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게 한 다음에 하느님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25,21)이사악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는 몸이었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였다. 주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그의 아내 레베카가 임신하게 되었다. 이사악의 아내 레베카도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악이 기도함으로 하느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심으로 임신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왜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그가 속한 하느님나라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더욱이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한 자녀도 가질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자녀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창세12,2)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자녀를 가지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녀가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는 어떤 희망을 주십니까? (창세11,31) 31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테라가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롯과 아브람의 아내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스테파노가 “여러분, 들어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자리를 잡기 전 메소포타미아(갈대아우르)에 있을 때, 영광의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이르셨습니다.”(7,2-3) 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고향과 친척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칼데아인들의 땅을 떠나 하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하느님께서는 그를 하란에서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땅(가나안)으로 옮겨 오게 하셨습니다.”(사도7,4)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아브라함은 아버지 테라에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테라가 아들의 말을 듣고 고향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땅으로 가고자 했던 아버지 테라는 하란에서 머물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란은 그의 아들 나호르가 먼저 가 있던 곳입니다. 또 하란은 그의 죽은 아들과 이름이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하란은 당시에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으로 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창세11,32.12,1) 32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여기서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는 하느님께서 태초(太初)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창세1장)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와 같은 말씀입니다. 태초에 세상은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홍수이후 바벨탑을 통하여 보여준 세상은 흑암이었고, 혼돈이었고, 공허였습니다. (예레4,23) 23 “내가 보니 땅은 혼돈과 불모요 하늘에는 빛이 사라졌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도 인간에는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무질서하고 혼돈입니다. 무엇보다 공허합니다. 결핍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통해서 여전히 희망을 가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다 고 합니다. 또 모든 부분이 무질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질서한 것이 좋다고 합니다. 또 지금 사람들은 무언가 채워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공허하고 허무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우리의 결핍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의 희망 없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식을 없게 하셨습니다. 그로 결핍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게만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란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또 내가 내게 지시할 가나안땅으로 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느님나라를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먼저 우리에게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말씀은 우리가 실재로 우리의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안정감을 주는 것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또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느님처럼 믿고 신뢰하는 것들에서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안정감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만 믿고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창세12,2-4)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주겠다는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가나안땅에 땅 한 평도 없습니다. 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하느님은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자녀가 한명도 없고, 아내 사라이는 자녀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이름을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였습니다. 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는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금 자녀가 없어서 박복의 대명사가 되어 있습니다. 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해주겠다는 약속어음을 주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남에게 복을 주기는커녕 자신도 그 어떤 복도 받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 같으면 ‘하느님 지금 내게 이 중에 단 하나라도 눈으로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말씀만 따라갑니다. 갈대아 우르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무조건 아버지를 설득해서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동생 나호르가 안정된 기반을 잡고 있는 하란에서도 하느님께서 떠나라고 하시니까 무조건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나중에 두 번씩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만 하고 속입니다. 아브라함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조건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외아들(獨子)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도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따라서 무조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실 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하느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브라함은 그에게 말씀하신 그 복들이 어떤 것들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또 구체적으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 믿은 것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느님이었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하느님이었습니다. 노아를 홍수에서 건지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왜 인간이 불행하게 되었는가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하느님께서 내 삶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곳도 없었지만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을 따라갔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입니다.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더 이상 새로운 것에 희망을 가질 나이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나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나이가 젊어도 하느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인생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도 하느님의 말씀만 붙잡고 있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도, 우리 가정도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아브라함의 모든 복을 다 받아 누립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