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분별력의 지혜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
이전글 |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1| | |||
다음글 |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1|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4-21 | 조회수61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분별력의 지혜 -모든 덕의 어머니-
"지혜의 원천이신 주님께, 어서와 조배드리세"
오늘 성 안셀모 주교 학자 기념일 새벽 성무일도시 초대송 후렴이 산뜻한 느낌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지혜서 말씀도 고무적이었습니다. 성 안셀모처럼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성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같습니다.
"지혜는 모든 사람에게 한량없는 보물이며, 지혜를 얻은 사람들은 지혜의 가르침을 받은 덕택으로 천거를 받아 하느님의 벗이 된다."(지혜7,14)
하느님의 벗, 얼마나 멋진 호칭인지요! 이보다 더 큰 영예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 뜻밖의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 깊이 공감한 내용이 있습니다. 지도자는 물론이고 인간이 지녀야 할 세 자질,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중 특히 균형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균형감각은 객관적 안목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바로 분별력의 지혜를 뜻합니다. 아무리 열정이 책임감이 좋아도 분별력의 부족으로 눈먼 열정, 눈먼 책임감이 된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성 베네딕도가 강조한 것 역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지도자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는 말 역시 분별력의 지혜를 뜻합니다. 매사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직시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베네규칙중 한 대목입니다.
“아빠스는 자기의 명령에 있어서는 용의주도하고 깊이 생각할 것이다. 그 명령이 하느님께 관계되는 일이든 아니면 세속에 관계되는 일이든 분별있고 절도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내 양의 무리를 심하게 몰아 지치게 하면 모두 하루에 죽어 버릴 것이다’ 하신 성조 야곱의 분별력을 생각할 것이다.
이밖에도 모든 덕행들의 어머니인 분별력의 다른 증언들을 거울삼아, 모든 것을 절도있게 하여 강한 사람은 갈구하는 바를 행하게 하고, 약한 사람은 물러나지 않게 할 것이다.”(성규64,17-19)
베네딕도의 중용사상을 대표하는 구절입니다. 분별력은 과격하거나 지나치지 않음이요, 깊은 생각에서 나온 절도있는 태도입니다. 베네딕도는 이 중용사상의 핵심인 분별력의 지혜를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물론 일상의 삶에서 모든 이들에게 참 중요한 것이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집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서 주목되는 바 예수님의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노자의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라는 대목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공성이불거, 즉 공이 이루어져도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내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지체하지, 집착하지 않고 떠나는 것을 의미하니 이 또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오천명을 먹이신 후의 예수님의 분별력의 지혜가 빛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 분은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6,14-15)
눈먼 대중의 광신적 행태에 휘말리거나 휩쓸리지 않고, 대중의 덧없는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유혹이다 싶을 때는 지체없이 그 자리를 훌훌떠나 즉시 외딴곳을 찾았던 참으로 분별력의 대가였던 예수님이셨습니다. 떠나야 할 때 잘 떠나는 분별력의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멋진지요! 참으로 눈먼 군중의 무지를 일깨우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참으로 이렇게 제자리를 아는 것이 지혜이자 겸손이기도 합니다. 겸손과 일맥상통하는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온 백성의 존경을 받던 율법교사 가말리엘의 사도들에 대한 조치는 얼마나 지혜로운지요! 다음 한마디로 혼란한 상황을 말끔히 정리하는 가말리엘은 말 그대로 명불허전(名不虛傳), ‘분별력이 대가’답습니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사도5,38-39)
얼마나 멋진 통쾌한 분별력의 지혜인지요!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지혜일 수 있습니다. 무관심의 방치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두루두루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웬만하면 하느님께 맡기고 때가 될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라는 것이며 불필요한 간섭의 행위는 일체 배제하고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건드리지 않는 것 이 둘은 무책임의 방임이나 방치가 아니라 깊은 분별력 지혜의 소산이자 공동체의 평화 공존을 위해서도 필수적 요소들입니다.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중세기 영국 베네딕도회 수도회 출신으로 ‘스콜라학의 아버지’라 칭하는 성 안셀모 주교 학자 기념 미사를 봉헌합니다. 안셀모는 “주님을 보호하는 도구”, 또는 “주님께서 보호하시는 사람, 도구”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름뜻대로 영국 국왕의 간섭으로부터 하느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신 성인으로 다음 평가를 통해서도 뛰어난 분별력을 지니신 성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신앙은 극히 깊었고 예지는 뛰어나고 그의 행위는 거룩하고 마음은 경건했으며, 그의 웅변은 유창했고 생활은 타인의 모범으로서 충분했다. 그는 전력을 기울여 사업을 행하고 끊임없이 성서를 묵상하고 모든 덕에 출중했다.”
성 안셀모와 동시대를 살았던 성 도리도네오의 증언입니다. 단테가 그의 작품 신곡의 천국편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성 안셀모를 언급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습니다. 안셀모 성인의 생몰연대를 보니 만76세를 사셨으니 당대로 보면 장수하신 편인데 병세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삶을 사신 것을 보면 참 경이로우며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도 흡사 지혜로웠던 교회 학자 성인들을 지칭하는듯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창공의 빛처럼 빛나고, 백성들에게 의를 가르치는 이는 영원무궁토록 별과 같이 빛나리라."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참 좋은 선물들인 성인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좋은 분별력의 지혜를 선사하시어 참나의 성인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 내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를 사슴처럼 달리게 하시고, 산봉우리로 나를 걷게 하시나이다."(히바쿡3,19).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