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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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4-22 | 조회수656 | 추천수3 | 반대(0) |
3년 전입니다. 코로나로 모든 성당의 문이 닫혔을 때입니다. 저는 가톨릭방송을 통해서 부활 제2주와 3주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때의 강론을 읽어보니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잠시 그때의 강론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언제든지 찾아가서 기도할 수 있었던 성당의 문은 닫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던 미사가 중지되었습니다. 성가를 부르고, 강론을 듣던 신자들이 그립습니다. 미사가 시작되었지만 늦게라도 성당 문을 열고 들어오던 신자들이 그립습니다. 항상 먼저 성당에 오셔서 묵주기도를 하시던 어르신들의 모습도 생각납니다. 주일 그토록 혼잡했던 성당 마당의 주차장은 텅 비어있습니다. 차량 안내를 맡아서 수고하셨던 형제님들도 그립습니다. 농구장에서 뛰어놀던 학생들도 그립습니다. 주일 미사 후에 음식을 준비하던 자매님들도 그립습니다. 사제서품을 받고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싶었던 새 사제들은 더욱 신자들이 그리울 겁니다. 신자들의 마음도 비슷할 겁니다. 고백성사를 볼 수 있었던 시간이 그리울 겁니다. 강론을 듣고, 성체를 영하던 순간이 그리울 겁니다. 미사 후에 제의를 입고 신자들과 담소를 나누던 사제가 그리울 겁니다. 한 달에 한번 봉성체를 하였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성체를 모시고 오던 사제가 그리울 겁니다. 본당 단체 모임 중에 함께 하였던 사제들이 그리울 겁니다.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며 문제를 해결하였던 시간들이 그리울 겁니다. 사제들이 준비하였던 피정, 특강이 그리울 겁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던 시간이 그리울 겁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강복과 파견을 하였던 시간이 그리울 겁니다. 다시 만나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환하게 웃는 시간이 오면 좋겠습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백신을 맞았습니다. 치료약도 생겼습니다. 아직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우리는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 말씀처럼 코로나 팬데믹은 지나갔습니다. 3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저는 다시 가톨릭방송 미사를 이렇게 봉헌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부르시어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고 하셨던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먹고 마시고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행복’을 말씀하셨고, 수많은 표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셨고, 남은 광주리가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 팬데믹으로 모든 신앙 활동이 멈추었던 것처럼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였던 예수님에게도 시련과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늦은 밤에 체포되었습니다. 가야파와 헤로데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던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라도 가겠다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갔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은 3번이나 무참하게 넘어지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을 썼고,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아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표징과 기적을 보여주었던 권위와 권능을 볼 수 없었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선포했던 하느님나라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절망과 고통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던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비참하게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입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무덤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는 이 기쁨을 제자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화를 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자리에 없던 토마사도에게도 나타나셔서 “토마야 네 손으로 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토마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난 것 같았던 하느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엠마로오 가던 제자들은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 말씀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모셨고, 예수님께서 빵을 떼나 나누어 주셨을 때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엠마오는 장소가 아닙니다. 엠마오는 우리의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에서 열정과 희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숨어있던 다락방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시작됨을 아는 것입니다. 빈 무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부활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에서 비록 넘어지셨지만 다시 일어나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임박해서도 하느님께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으며, 죽으셨지만 죽음의 어둠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시기를 지내면서 그 부활의 기쁨과 부활의 영광을 우리 마음 안에 벅찬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우리 이웃에게 드러내고 증거해야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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