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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 부활 제3주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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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22 조회수565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4.22-33
오순절에,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3

23-24.32에서는 사도들이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해 증언한다. 예수의 삶 가운데 하느님이 예수를 거쳐 이스라엘에 행하신 기적들을 든다. 그러나 사도들의 이 증언에는 예수의 말씀과 행적 전체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10,37-39 참조)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곧 하느님의 구원경륜에 따라 돌아가셨다. 그러나 동시에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유다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다. 그렇다면 이방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악한 행위까지도 하느님으로부터 예정된 것인가? 이런 예정설은 루카를 비롯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사고방식이나 신학적 관점이 아니라 훨씬 후대의 사변적 신학에서 나온 것이다. 성서 저자들은 단지 인간의 구원 문제에 있어서 하느님이 처움부터 주도권을

 

쥐고 구원의 실현과정을 당신 뜻에 따라 이루신다는 사실을 강조할 따름이다. 이 계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음도 아울러 지적한다.

 

25

25-28절은 시편 (LXX) 15,8-11ㄴ을 인용한 것이다. 루카는 이 시편 구절을 예수 부활을 예고로 풀이한다. 그는 인용문의 단수 일인칭 를 예수와 동일시한다.

 

29

대략 10세기 말엽부터 순례자들이 시온 산 위에 있는 이른바 최후만찬 방 아래 다윗의 무덤이 있다고 하여 참배하곤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다윗은 다웃 도시에 묻혔다. 다윗 도시 남쪽에 큰 인조동굴이 있는데, 다윗을 비록하여 왕족들이 묻힌 동굴들이라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이다.

 

30

루카는 시편저자를 예언자로 확신한다. 루카는 현재 대목에서 시편저자 다윗이 자기 자손 가운데 태어난 메시아가 부활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자손의 직역은 허리의 열매.

 

33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높이 올려져대신 그분은 하느님의 오른손으로 높이 올려져”(프랑스 공동번역)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주석가 절대 다수는 우리 역문처럼 번역한다. 루카는 예수의 승천을 가리켜 그런 표현을 썼다. 루카는 예수 부활과 승천을 구분한 까닭이다. 그러나 루카말고 신약의 다른 이들은,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게 되셨다. 또는 높이 올려지셨다고 한다, , 예수 부활은 성부 우편 좌정 또는 고양과 같은 사건이라는 것이다.

 

높이 올려짐성령의 약속의 연결은 루카가 전승에서 빌려온 것이다. 부활하여 아버지의 배려로 고양되신 예수께서는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을 위해 성령을 쏟아 부으신다.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약속을 받으신 그분이 이제 성령의 원천이 되신 셈이다.

 

 

 

 

 

 

 

 

 

 

2독서

<여러분은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해방되었습니다.>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17-21
사랑하는 여러분, 17 여러분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행실대로 심판하시는 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살이를 하는 동안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십시오.
18 여러분도 알다시피,
여러분은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헛된 생활 방식에서 해방되었는데,
은이나 금처럼 없어질 물건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1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그리된 것입니다.
20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뽑히셨지만,
마지막 때에 여러분을 위하여 나타나셨습니다.
21 여러분은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시고 영광을 주시어,
여러분의 믿음과 희망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17

신도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내야 할 이유는 그들도 심판하실 분의 인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18

18-19절의 속량은 본디 일정한 몸값을 치르고 노예나 포로를 풀려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이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기 위해 치르신 값은 그리스도의 귀한 피였다. 하느님이 그 값을 누구에게 치르셨는지 따질 필요는 없다. 19절의 흠없고 피없는 어린양은 원래 야훼께 바치는 희생제물이다. 이제 필자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이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제물로 본다. 필자는 출애 12.46(“뼈를 꺾어도 안된다”)을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새 빠스카의 어린양으로 보았을 가능성도 있다(1고린 5.7; 요한 19.36 참조).

 

20

하느님의 엄청난 계획(“창세 이전부터”)에 의해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이루어진 것은 모두 여러분을 위해서라고 말함으로써 나그네”(신도)들의 품위를 높이는 동시에 긍정적인 응답을 요구한다.

 

21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고난이 하느님께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3.18 참조). 그분의 고난은 부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복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13

두 사람은 열두 제자단에 속하지 않으나 예수께 동조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엠마오 마을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날은 현재의 문맥상 빈 무덤을 발견하고 확인한 일요일,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에 만찬례를 지냈기 때문에 엠마오 발현 날짜를 일요일로 잡았을 것이다.

한 스타디온은 약 185미터, 파피루스 75. 바티칸, 알엘산드리아. 베자 사본에서는 육십 스타디온이라 하는데, 환산하면 약 11킬로미터, 그러나 시나이 사본에서는 백육십 스타디온이라 하는데, 환산하면 약 29.5킬로미터, “엠마오가 어딘지는 정확히 밝힐 수 없다. 여러 후보지가 있다. 그냥 나열만 하면 예루살렘에서 6.5키로미터 떨어진 암마우스 일명 쿨론예. 12킬로미터 떨어진 엘 꾸베이베, 13킬로미터 떨어진 아부 고셔, 32,5킬로미터 떨어진 암와스 일명 니코폴리스.

 

18

요한 19.25에 의하면 글로파의(아내?) 마리아가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를 지켜보았는데, 글로파와 여기 18절의 글레오파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21

루카복음에는 속량명사가 1,68에 한 번, “속량하다동사가 24.21에 한 번 나온다.

 

24

12절에서는 베드로 홀로 무덤에 가서 그것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한 20,3-10에서는 베드로와 애제자가 함께 가서 확인했다고 한다.

 

27

유다인들은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켜 율법과 예언자들”,“모세와 모든 예언자들”,또는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들과 시편들이라고 일컬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구약성서를 이해했다. 그리스도야말로 구약성서의 목표요 핵심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신약성서 필자들은 한결같이 예언과 성취의 도식을 사용했다.

 

30

이스라엘에서는 식사 때 가장이 30절과 같은 행동을 한다. 예수께서도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최후만찬때 그렇게 하셨다.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이 만찬례를 거행할 때도 역시 그렇게 했다. 30-31절은 분명히 교회의 만찬례를 암시한다.

 

34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우선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이 신조(1고린 15,3-7)에도 들어 있다. 베드로는 제자 가운데 맨 먼저 부활하신 예수를 뵌 다음 열한 제자와 동료들을 집결시키고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했다(23.32).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염소(goat)하면 맨먼저 유령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염소를 번제물이나 제단에 바칠 때 등등의

것 때문에 염소에게는 영이 있다라고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어로 염소는 goat(고우트)이고 유령이나 영을 말하는 염소는 ghost(고우스트)입니다. 어찌 발음이 비슷하지 않나요? 또한 소금이라고도 부르는 염소의 기호는 cl입니다.

 

미사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염소라는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새로이 만들어진 양식에 따라 미사때에 또한 사제와 함께가 아니라 사제의 영과 함께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의 말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그리고 염소(cl)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기도 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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