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1.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14)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로 선포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1)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목자”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유배를 겪으면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당신 백성을 모아들일 미래의 “착한 목자”로 소개하면서(에제 34,11-16;스바 3,19;미카 2,12 등), 미래에 나타나 백성의 목자가 될 다윗 가문의 한 인물로 언급합니다(예레 3,15;23,4-6;에제 34,23-24;37,24;미카 5,1-4).
오늘 <복음>에서 “착한 목자”는 하느님과 하나 됨에 그 바탕이 있습니다. 곧 그는 하느님이 보낸 목자인 동시에, 보낸 분의 마음에 드는 목자입니다. 그것은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일로 드러납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 10,14-16)
여기에는 “착한 목자”의 특성이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첫째> 특성은 양들과 서로 압니다. 목자는 항상 양들과 관계하여 있고, 양 없는 목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곧 목자는 항상 양과 함께 있어야 목자 입니다. 그렇게 함께 있기에 서로 압니다. 이는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알 듯, 밤낮 같이 지내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곧 양들을 “안다”(γινωσκω)는 것은 사랑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착한 목자”의 <둘째> 특성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있는 존재, 곧 목자가 양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양이 목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들을 위하여 있는 존재’, 이것이 바로 목자의 존재 근거요 신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목자는 양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놓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는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착한 목자”의 <셋째> 특성은 ‘양 우리 밖’에 있는 양들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 10,16)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기 위해, 스스로 자유로이 목숨을 내놓으심으로 목숨을 다시 얻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바로 이 사랑의 죽음과 부활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요한 10,17)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일, 바로 이 일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우리 주님에게서 받은 명령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5)
주님!
당신의 눈은 항상 저를 향하고 계십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 당신을 내놓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보십니다.
주인이면서도 군림하지 않으시고 시중들기 위하심입니다.
이 지고한 당신의 사랑 앞에, 황송함으로 무릎 꿇어 경배합니다.
오늘 제 마음이 형제를 향하여 있게 하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놓기 위해서 그러하게 하소서.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그러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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