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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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5-02 | 조회수41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성 아타나시오 주교학자 기념] 요한 10,22-30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오늘 복음의 시간적 배경은 ‘성전 봉헌 축제’입니다. 12월에 거행되는 이 축제는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아인들을 몰아낸 뒤,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멋대로 세운 이교인들의 제단을 허물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새 제단을 세워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축제 기간 내내 촛불을 켜 놓고 압제의 어둠에 시달리던 그들이 ‘자유의 빛’을 되찾은 기쁨을 되새겼습니다. 그러던 것이 기원후 1세기경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유다인들이 이 성전 봉헌 축제를 더 장엄하게 지내며, 하느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어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랐고, 예수님께서도 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머무르고 계셨던 겁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그들이 예수님께 다그쳐 물어가며 확인하고자 것은 그분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가 맞는가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이 자기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그 ‘정치적 메시아’가 맞는지, 자기들이 그분의 힘과 능력을 이용하여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겠는지를 분명히 확인하고자 예수님을 떠본 것이지요. 만약 예수님의 답변이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추구하시는 ‘그리스도’로서의 모습이 자기들이 요구하는 모습과 다르다면, ‘우리가 확인해본 결과 예수라는 자는 메시아가 아니다’라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분을 박해하고 제거할 구실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그런 뻔한 속셈을 다 아셨던 예수님은 그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들은 예수님이 분명한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셔서 못 믿은게 아니라,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 안 믿은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행적을 보았다면 그분께서 그리스도이자 주님이시라는 것을 진작에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메시아를 선택하여 받아들이겠다는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담긴 의미를,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구원의 진리를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구원의 진리는 ‘신비’의 영역에 속한 것이기에 그 뜻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이리저리 재고 따지기 전에 ‘먼저’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즉시’ 행동과 실천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주님 사랑의 섭리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지요.
나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 목소리는 내가 그분께 마음을 닫으면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분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나를 멸망으로 이끄는 사탄의 목소리에 휘둘리기에 큰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 내 욕심과 고집을, 교만과 편견을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비워낸 그 자리에 주님과 그분 뜻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버지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온전한 사랑의 일치를 이루어 그분과 함께 참된 행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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