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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35) 아름다운 노년(老年)을 위하여 (창세2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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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03 조회수6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창세기(35) 23. 5. 3. .

 

아름다운 노년(老年)을 위하여

 

(창세23,1-20)

1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이다. 2 사라는 가나안 땅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울었다. 3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4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5 그러자 히타이트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였다. 6 “나리, 들으십시오. 나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제후이십니다. 우리 무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고인을 안장하십시오. 나리께서 고인을 모시겠다는데, 그것이 자기 무덤이라고 해서 나리께 거절할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없습니다.” 7 아브라함은 일어나 그곳 주민들 곧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큰절을 하고, 8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기꺼이 허락해 주신다면, 내 말을 듣고 초하르의 아들 에프론에게 간청하여, 9 그가 자기의 밭머리에 있는 막펠라 동굴을 나에게 양도하게 해 주십시오. 값은 드릴 만큼 다 드릴 터이니, 여러분 앞에서 그것을 나에게 묘지로 양도하게 해 주십시오.” 10 그때 에프론은 히타이트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은 성문에 나와 있는 히타이트 사람들이 모두 듣는 데에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였다. 11 “나리, 아닙니다.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제가 그 밭을 나리께 그냥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있는 동굴도 드리겠습니다. 내 겨레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드릴 터이니, 거기에다 고인을 안장하십시오.”

12 아브라함은 그곳 주민들 앞에 큰절을 하고, 13 그곳 주민들이 듣는 데에서 에프론에게 말하였다. “제발 그대가 나의 말을 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밭 값을 드릴 터이니 받아 주십시오. 그래야 죽은 내 아내를 거기에 안장할 수 있겠습니다.” 14 그러자 에프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였다. 15 “나리,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은 사백 세켈짜리 땅이 저와 나리 사이에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거기에 고인을 안장하십시오.” 16 아브라함은 에프론의 말에 따라, 히타이트 사람들이 듣는 데에서 에프론이 밝힌 가격 은 사백 세켈을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 달아 내어 주었다.

17 그리하여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에 있는 에프론의 밭, 곧 밭과 그 안에 있는 동굴과 그 밭 사방 경계 안에 있는 모든 나무가, 18 성문에 나와 있는 히타이트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재산이 되었다. 19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마므레, 곧 헤브론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동굴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안장하였다. 20 이렇게 하여 그 밭과 그 안에 있는 동굴이 히타이트 사람들에게서 아브라함에게로 넘어와 그의 묘지가 되었다.

 

하루 중에서 자연이 제일 아름다울 때가 누구는 아침이라고 하고 또 누구는 정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연이 제일 아름다울 때는 저녁에 해가 지기 직전 황혼(黃昏)의 때입니다. 그때는 햇살이 너무 설익지도 않습니다. 또 햇살이 너무 뜨겁지 않습니다. 황혼의 햇살은 강렬하지도 밝지 않지만 이 세상을 너무나 아름답게 비춥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제일 아름다울 때가 노년(老年)입니다.

역사상 퇴임 이후에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이 미국의 카터 대통령입니다. 그분은 재임시절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퇴임이후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짓기도 하면서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왔는데 제목이 sharing good time ‘좋은 시간 나누기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노년이 굳 타임 좋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사람은 책 제목을 아름다운 노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책을 번역했던 사람은 노년은 숨이 차오르지만 더 멀리 바라보는 때라고 했습니다. 등산할 때 마지막 정상 가까이 가면 숨이 차오릅니다. 한 발짝 내 딛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숨이 차오르고 한 발짝도 내 딛는 것이 어려워도 정상 가까이 가서는 더 높이 바라봅니다. 또 넓게 바라봅니다. 이렇게 노년은 숨이 차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발짝 내 딛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노년은 더 높이 바라봅니다. 더 넓게 바라봅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가 노년입니다. 사람들은 노년을 늙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년은 늙을 때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잘 익었을 때입니다.

신앙(信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노년은 신앙이 가장 성숙할 때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백발은 영광의 면류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언16,31). 그런데 아름다운 노년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노인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되지만 어른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드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노년이란 그 동안 살아왔던 삶의 결론입니다. 아름다운 노년이란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노년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 모두는 다 인생의 황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달려간 우리 인생이 황혼의 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노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성장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은 정말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믿지 않는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 어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하려고 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노년의 아브라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창세23,6) 6 “나리, 들으십시오. 나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제후이십니다. 우리 무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고인을 안장하십시오. 나리께서 고인을 모시겠다는데, 그것이 자기 무덤이라고 해서 나리께 거절할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없습니다.”

 

당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나리 라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운데 하느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우리 땅에서 매장지를 구해서 장례를 치르시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족이 돌아가셨는데 갑자기 믿지 않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당신의 땅에서 매장지를 구해서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고 했을 때 쉽게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쉽게 허락해줍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우리가운데 하느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합니다.

 

(창세23,12) 12 아브라함은 그곳 주민들 앞에 큰절을 하였다,

 

아브라함은 나이가 137살이고 존경받는 지도자이고 족장이지만 그 땅의 사람들 앞에서 몸을 굽힐 정도로 겸손합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경받는 지도자이고 겸손한 인격을 가진 이유는 아브라함은 137살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신앙과 인격이 성장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로 속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사건 이후로 끊임없이 신앙이 자라고 성숙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칠 정도로 신앙 성숙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겸손(謙遜)한 인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사람들 앞에서 누구보다도 겸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노년에 신앙과 인격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아브라함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경받는 김형석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인생을 100년 살아보니 인생에서 제일 좋은 노른자위와 같을 때가 60세부터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30살까지는 지식을 배울 때였고, 60살까지는 먹고 살기에 바쁠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생 60부터는 정말 아름다운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자신만을 위한 삶이었는데 60부터는 남을 위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60세전에는 지식을 채우는 삶이었는데 60부터는 지혜를 얻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60부터 75세까지 지식이 아니라 지혜에 있어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자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에는 85세까지 끊임없이 배우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면 사람은 90살까지 끊임없이 자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물학적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사회적 죽음도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 이제는 더 이상 정치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영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더 이상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더 이상 신앙에 새로운 변화가 없습니다. 신앙에 새로운 배움도 없습니다. 더 이상 어떤 하느님의 말씀도 새롭게 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은 백세가 되어도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입니다.

 

(이사46,4) 4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

 

아름다운 노년은 백발이 되어도 하느님 앞에서 어린 아이와 같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의 아름다운 노년은 매일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는 노파심이 없습니다. 100세가 되어도 하느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하느님의 품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의 아름다운 노년은 100세가 되어도 하느님의 말씀이 날마다 새롭습니다. 육체는 쇠약하여 후패하여도 그의 영혼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웁니다. 그래서 지혜가 자랍니다. 신앙이 자랍니다. 결국 하느님 앞에서 인격이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도 아브라함처럼 아름다운 노년이 되어 신앙과 인격에 있어서 완숙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둘째,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사명(使命)을 다해야합니다.

 

(창세23,1) 1 사라는 백이십칠 년을 살았다. 이것이 사라가 산 햇수이다.

 

성경에서 여성이 죽은 나이를 기록한 것은 사라밖에 없습니다. 사라는 65세에 가나안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90세에 이사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27세 때 죽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이가 137세입니다. 보통 남자가 먼저 죽는데 사라가 먼저 죽었습니다. 이 당시로 보면 굉장히 일찍 죽은 경우입니다.

인간의 모든 생사(生死)를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데 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보다 사라를 먼저 죽게 하신 이유는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인생이란 끊임없는 떠남이고 이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生涯)는 끊임없는 떠남과 이별이었습니다. 그는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조카 롯과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과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독자(獨子) 이사악도 그의 품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마지막 남은 아내 사라조차도 하느님께서는 떠나보내게 하셨습니다.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노래 가사에 우리 인생이란 매일 이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청춘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춘은 점점 더 멀어져갑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도 영원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혀져갑니다. 그래서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이별하는 것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창세23,2) 2 사라는 가나안 땅 키르얏 아르바 곧 헤브론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은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울었다.

 

사라가 죽자 아브라함은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합니다. 여기서 슬퍼하며 애통한다는 것은 그냥 속으로 우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슬픔의 격한 감정을 대성통곡하듯이 울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슬퍼할 때 슬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울 때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례식 때 울지 말아야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자로가 죽었을 때 마리아와 함께 같이 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라를 떠나보낸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창세23,3) 3 그런 다음 아브라함은 죽은 아내 앞에서 물러 나와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였다.

 

아브라함은 이제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은 이란 말로서 예수님께서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고 하실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은 슬퍼할 때 슬퍼하더라도 계속해서 슬픔의 자리에 앉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울 때는 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계속 우는 자에게는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브리함이 울더라도 그 자리에서 일어선 이유는 아브라함의 사명(使命) 때문입니다. 단순히 죽은 아내 사라를 장례를 치르는 사명입니까? 그래서 단순히 매장지를 얻기 위한 사명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한 곳이 헤브론입니다. 아브라함이 왜 이곳에서 땅을 사서 소유지로 삼은 이유는 이곳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의 모든 곳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느님께서 이 가나안땅을 자손들에게 주실 줄 믿고 이곳을 쌌습니다.

그래서 장차 이곳에 아브라함도 묻히고 이사악도 묻히고 레베카도 묻히고 야곱도 묻힙니다. 그리고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한 곳도 바로 이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이 헤브론은 다윗이 처음 유다나라의 왕이 된 곳입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사명(使命)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몇 천억을 준다 해도 생명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오로도 내가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내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면서도 일어난 것은 하느님께서 사라를 먼저 데려가시고 아브라함은 데려가지 않으신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라의 매장지를 구하면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 이유도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가정을 살리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자녀들과 우리 손주들을 살리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죽더라도 다음 세대들을 살리시는 소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느님께서 노년에게 주신 사명은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노년에 자녀들을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너는 담장을 넘는 아름다운 가지가 될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에게는 왕이 나올 것이라고 축복했습니다.

 

(창세49,33)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하느님께서는 노년에게 자녀들을 축복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이 있는 자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이 축복의 사명이 끝이 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데리고 가십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을 축복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서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우리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이 잘 되는 은혜와 복을 받도록 합시다.

 

셋째,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서 물질보다 사람을 얻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에 사라의 매장지를 사기 위해서 은 400세겔을 지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23,16) 16 “아브라함은 에프론의 말에 따라, 히타이트 사람들이 듣는 데에서 에프론이 밝힌 가격 은 사백 세켈을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 달아 내어 주었다.”

 

처음에는 에프론이라는 사람이 사라의 매장지를 공짜로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내가 값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프론이라는 사람은 은 사백 세겔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은 사백 세겔을 그에게 줍니다.

당시 은 5세겔이 일 년의 품삯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은 사백 세겔은 한 사람이 80년 동안 일해서 얻을 수 있는 돈입니다. 1000년이 지난 후에 다윗은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을 은 오십 세겔을 주고 샀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산 막펠라 동굴이 그만한 가치가 되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식으로 말하면 바가지를 쓴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비싼 값을 주고 매장지를 산 이유는 돈보다 사람을 더 얻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아브라함은 물질보다 사람을 얻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롯과의 다툼에서도 아브라함은 더 좋은 땅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북쪽 4왕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하고 난 다음에도 전리품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온 아브라함의 삶은 돈보다 사람을 얻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노년에도 엄청난 값을 요구하는 에프론에게 아무 말이 없이 돈을 지불하였습니다.

무엇이 아름다운 노년입니까? 물질보다 사람을 얻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불의하게 쌓은 재물이 아닙니다. 불의한 재물이란 영원하지 않은 재물입니다. 예수님은 재물은 절대 영원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청지기는 없어질 재물을 쌓아두는 자가 아니라 없어질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입니다. 없어질 재물로 사람을 얻는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가 가진 재물을 가지고 저 영원한 세상에 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수천억의 재물을 가진 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루가복음 169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영원하지 않은, 없어질)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종말의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고 하셨습니다.

종말에는 이 땅의 모든 재물은 모두 없어집니다. 죽으면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이 다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 땅이 종말이 되고, 우리가 죽어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없어질 재물을 통해서 사귄 친구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전교한 친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랑으로 얻은 친구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오로는 필리피서4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쓰게 될 면류관은 우리가 사랑한 사람입니다.

유인경씨는 우리 인생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칼럼에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70-90대의 노인들이 모인 요양병원에서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고 합니다. 박사건 무학이건 재산이 많건 적건 사회적인 지위가 높건 낮던 똑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에서 상류층은 누워있는 그 곳에 안부전화가 얼마나 많이 걸려오느냐 라고 합니다.

몇 달 아파서 요양병원에서 지내보니 왕년의 직함이나 과거사는 다 부질없다고 합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모두가 100세까지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합니다. ‘노후에 내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눠줄 이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노후의 행복이다.’ 라고 했습니다. 결국 노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관계즉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물질보다 사람을 얻을 때 우리의 노년이 더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없어질 재물로 친구를 사귈 때 저 천국에서도 그 친구들이 나를 받아주고 맞아줄 것입니다.

 

넷째, 아름다운 노년을 위하여 삶의 목적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서 62년을 살아도 ~

(창세23,4) 4 “나는 이방인이며 거류민으로 여러분 곁에 살고 있습니다. 죽은 내 아내를 내어다 안장할 수 있게, 여러분 곁에 있는 묘지를 양도해 주십시오.”

 

또 히브리서1113-16절에서는 “13 이들은(아브라함)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이란 매일 짐을 가볍게 하는 삶입니다. 또 나그네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이란 매일 떠날 준비를 하는 삶입니다. 무엇보다 나그네는 희노애락(喜怒哀樂)에 메이지 않습니다.

 

(1코린7,29-31.35) 29 형제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30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31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5 나는 여러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에게 굴레를 씌우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서 품위 있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럽의 어느 교회에 세 가지 글이 쓰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기쁨도 곧 지나가리라, 둘째, 슬픔도 곧 지나가리라, 셋째, 그러니 영원한 것을 사모(思慕)하라입니다.

오늘 말씀은 단순히 노년만을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노년은 내가 평생 가꾸어 놓은 삶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 위해 오늘도 자신을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아브라함처럼 노년에 자신도 행복하고, 그 자손들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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