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5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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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5-06 | 조회수760 | 추천수7 | 반대(0)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국가든 사람 사는 곳에는 늘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던 초대교회는 사도들의 열정적인 선교로 공동체가 성장하였습니다. 공동체가 성장하면서 교회에도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읽었던 것처럼 ‘나눔’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과부, 어린이들이 나눔에서 소외되었습니다. 그러자 공동체에 불평과 불만이 생겼습니다. 사도들은 함께 기도하면서 신망이 깊고, 바른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음식 나눔을 맡겼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지면서 유대인들이 지녔던 율법 준수에 대한 문제도 생겼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모르기도 했고, 자신들의 전통과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모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율법 규정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교회는 유대인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회의를 교회는 ‘공의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문제 해결 방법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십자가를 남에게 떠넘기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비난하셨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저녁 미사가 있는데 오전에 요양원 미사를 부탁 받았습니다. 가겠다고는 했지만 마음으로 달갑지 않았습니다. 제게 즐거움을 주는 부탁이라면 기꺼이 했을 겁니다. 그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져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기쁜 마음으로 요양원 미사를 하는 것이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가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욕심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지만 하느님과는 더욱 멀어지는 길입니다. 욕심 때문에 창고를 가득 채웠던 부자는 하느님께 갈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별 지구가 병들어 가는 것은 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구유’는 겸손의 상징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도 겸손의 상징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몸소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청하신 것도 겸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을 강조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잔치에 초대 받으면 윗자리에 앉지 말고 맨 아래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하느님께서는 받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첫 번째 ‘죄’는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했던 아담의 교만함에서 왔습니다. 교만했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큰 바람이 불면 쓰러지는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쓰러지곤 합니다. 작은 나무들은 큰 바람에도 쓰러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유혹이라는 바람이 불 때 가장 먼저 쓰러지는 것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순종’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했던 마리아의 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남모르게 파혼하려고 했으나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던 요셉의 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영신수련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부귀보다 가난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건강보다 아픔을 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래 사는 것보다 일찍 죽은 것을 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이 뜻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과 하느님을 같이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느님의 의로움과 하느님의 뜻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셨던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주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겸손과 순종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끌어주는 진리요, 생명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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