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5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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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5-07 | 조회수748 | 추천수4 | 반대(0) |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권력이 오래 갈 것 같지만 10년 넘기가 어렵고, 꽃이 오래 필 것 같지만 10일을 넘기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근대화의 기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농촌에서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소탈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모습은 인자한 어머니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원인은 ‘장기집권’에 있었습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권력의 맛에 취하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지만 만일 정해진 임기만 채우고 물러났다면 그분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미련 없이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다면 더 많은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놀라운 표징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신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바르나바를 제우스라 부르고 바오로를 헤르메스라 불렀는데, 바오로가 주로 말하였기 때문이다. 도시 앞에 있는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황소 몇 마리와 화환을 문으로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제물을 바치려고 하였다.” 자칫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유혹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권력이 주는 쾌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렇게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며 제물을 바치려는 것을 겨우 말렸습니다. 최근에 방영되었던 ‘신이 된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권력이 주는 유혹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헌신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뜨거운 신앙으로 놀라운 표징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여들었고, 교회는 커져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십자가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사제와 바리사이파처럼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빌라도처럼 무고한 사람을 단죄하였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주린 욕망을 채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무런 힘이 없는 아이들이 희생당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단죄하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직을 이끌던 교주는 집단으로 자살하며 끝을 맺기도 했습니다. 경찰의 수사를 받고 10년간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출소했지만 다시금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였고 다시금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처럼 모든 영광을 예수님께 돌렸다면 결과는 지금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저도 한 단체의 지도신부를 10년 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단체가 교구의 인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교구의 시설을 임대할 수 있도록 도움도 주었습니다. 매달 후원회 미사를 하고, 피정도 함께 하였습니다. 여름이면 공동체가 수련회를 갔습니다. 매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순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신자들처럼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돌아보면 함께한 시간들이 감사했습니다. 제가 도움을 준 것도 있겠지만 저 역시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황님께서 방한하셨을 때는 공동체에서 저의 업무를 도와주었습니다. 자료를 만들었고, 기도문도 만들었습니다. 미국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지도신부의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생각하면 이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후임 신부님께서는 저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저보다 큰 능력으로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제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그리고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셨고,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허구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가는 것이 주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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