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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41) 선택(選擇)하신 백성을 어떻게 돌보시나? (창세28,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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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09 조회수686 추천수2 반대(0) 신고

 

창세기(41) 23. 5. 9.

 

선택(選擇)하신 백성을 어떻게 돌보시나?

 

(창세28,1-22)

1 그러자 이사악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 2 일어나 파딴 아람에 있는 네 외할아버지 브투엘 댁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너의 외숙 라반의 딸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여라. 3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어,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시며,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해 주실 것이다. 4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너와 네 후손에게 내리시어,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5 이사악이 야곱을 떠나보내자, 그는 파딴 아람에 있는 아람 사람 브투엘의 아들 라반에게 갔다. 라반은 야곱과 에사우의 어머니 레베카의 오빠였다.

6 에사우는,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파딴 아람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면서, 그에게 축복하며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 하고 당부하는 것과, 7 야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파딴 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다. 8 그리고 에사우는 자기 아버지 이사악이 가나안 여자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도 보았다. 9 그래서 에사우는 아내들이 있는데도 이스마엘에게 가서, 다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14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하면서,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19 그러고는 그곳의 이름을 베텔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루즈였다.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창세기 27장에서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의 실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실수함에도 불구하시고 돌보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악이 영적인 눈이 어두워 에사우에게 축복을 하려고 하였으나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에 대해서는 돌보셨습니다.

 

(창세28,1) 1 이사악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

 

이사악은 자기의 마음대로 에사우를 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사악은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축복하며 당부합니다. “너는 하느님을 믿지 않지 않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파딴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창세28,2) 2 일어나 파딴 아람에 있는 네 외할아버지 브투엘 댁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너의 외숙 라반의 딸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여라.

 

이사악이 왜 야곱에게 하느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딸과 결혼하지 말고 하느님을 믿는 외삼촌 라반의 딸과 결혼하라고 합니까? 그 이유는 에사우가 하느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여인과 결혼해서 이사악과 레베카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창세26,35).

또 창세기2746절을 보면 레베카는 에사우의 아내들인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삶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사악에게 야곱만큼은 믿는 사람과 결혼시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악은 야곱에게 믿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축복합니다.

 

(창세28,3) 3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어, 네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게 하시며, 네가 민족들의 무리가 되게 해 주실 것이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느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느님께서 네게 복을 주셔서 생육(生育)하고 번성(蕃盛)하게 하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창세28,4) 4 그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너와 네 후손에게 내리시어, 네가 나그네 살이하는 이 땅, 곧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자기마음대로 에사우를 축복하려든 이사악을 간섭하셔서 야곱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에사우를 보기 바랍니다.

 

(창세28,6.-8) 6 에사우는, 이사악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파딴 아람으로 보내어 그곳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게 하면서, 그에게 축복하며 가나안 여자들 가운데에서 아내를 맞아들이지 마라.” 하고 당부하는 것과, 7 야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듣고 파딴 아람으로 떠나는 것을 보았다. 8 그리고 에사우는 자기 아버지 이사악이 가나안 여자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에사우는 자신이 믿지 않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했습니다. 그런데 에사우가 어떻게 합니까?

 

(창세28,9) 9 그래서 에사우는 아내들이 있는데도 이스마엘에게 가서, 다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며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에사우는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 것이 부모의 마음에 기쁨이 되지 못한 것을 보고도 이스마엘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본처들 외에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이스마엘은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이 아닙니다. 앞으로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대적하는 사람들입니다.

에사우는 하느님께서는 이런 에사우에 대해서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어버려두십니다.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과 택하지 않은 백성의 차이는 돌보심과 버려두심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에서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8 모든 자녀가 다 받는 훈육을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사생아지 자녀가 아닙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혀 하느님의 자녀들 같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사람을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돌보고 계십니다. 야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야곱은 인간적으로 보면 전혀 하느님의 자녀다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욕심도 많은 사람입니다. 또 속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선택하셔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를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우리도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될 때까지 우리의 삶을 돌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어떻게 돌보고 계십니까? 먼저 우리를 광야(廣野)로 인도하십니다.

 

(창세28,10-11) 10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

 

야곱은 이사악이 있던 브엘세바에서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떠납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땅의 남쪽 끝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란은 800킬로나 되는 먼 길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인도하셔서 그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바로 이곳이 원래의 지명은 루즈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곳이 하느님의 집인 베텔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야곱을 인도하신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廣野)였습니다. 또 해가 졌습니다. 해가 졌다는 것은 지금 야곱의 삶 가운데 인간적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는 잠을 자려고 하는데, 한 돌을 베게로 삼고 거기서 누워 잤습니다. 잠을 자다가 광야에서 짐승을 오면 그 돌로 짐승을 물리치기 위함입니다.

나중에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 곳은 광야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인도하시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어느 한 순간도 하느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게 하십니다. 그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함입니다.

 

(창세28,12)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여기서 꿈이란 구약시대 하느님께서 하느님을 계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꿈의 계시를 통해서 층계(사다리)를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층계(사다리)의 꼭 대기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여기서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계신 하늘입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하느님의 천사들이 야곱 위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

 

(창세28,13) 13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나는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하느님께서 그동안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었고 이사악의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하느님께서 이제 야곱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약속하신대로 네가 누워 있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이 가나안땅을 네가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창세28,15) 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지금 야곱은 에사우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도 없습니다. 그를 지켜주는 아버지의 그늘도 없습니다. 광야에 혼자 있습니다. 잘 곳이 없어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곱은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누구도 나와 함께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층계(사다리) 환상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느님은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여기서 야곱이 본 층계(層階)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천사가 야곱의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이유는 야곱의 형편을 하느님께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1810절에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천사들이 하느님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형편을 하느님께 알려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주 하느님께서 나의 형편을 왜 알아주지 않으시냐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사40,27)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하느님께서 왜 하늘에서 앉아계시지 않고 서서 계십니까? 이 땅에서 하느님의 택한 백성인 야곱이 광야에서 홀로 외롭게 누워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가 돌에 맞고 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하늘 위에서 서서 계셨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는 사도행전 756절에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밤 사경에 풍랑 이는 바다에서 죽게 되었을 때 예수님은 산 속에서 아무 고통 없이 기도하고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찾아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택한 백성들이 이 땅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저 하늘 위에서 하늘에서 서서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안심 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지금도 너와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우리를 지금도 돌보고 계시는데 왜 우리를 외롭고 쓸쓸한 광야로 인도하심은 귀로만 들었던 하느님을 직접 만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천사들이 층계(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은 야곱이 어떻게 생겼기에 하느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시는가를 엿보기 위함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야곱과 같이 외롭고 쓸쓸한 광야에 있지만 우리는 천사도 흠모하는 그 사랑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 삶이 외롭고 쓸쓸한 광야에서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돌보고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난 후 야곱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첫째, 내가 있는 이곳에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창세28,16)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고대 근동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자신들이 사는 지방에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방을 떠나면 자신들이 믿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면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난 후 참으로 야훼하느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고 합니다. 그리고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28,17) 17 두려움에 싸여 말하였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

 

이 두려움은 광야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도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느님을 만난 자의 특징은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敬畏)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고백합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라고 합니다. 이 곳이 하느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곳이 하느님의 집이고 하늘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곳은 아무도 없는 광야였습니다. 야곱을 위협하던 짐승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만나고 나니까 바로 이곳이 하느님이 계시는 하느님의 집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하늘로 열려있는 하늘의 문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있는 이곳이 광야와 같아서 너무 힘이 들어서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이곳이 짐승이 울부짖는 그 광야와 같은 그 곳이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집임을 믿고 고통스러운 그 곳이 바로 하늘로 열려 있는 하늘의 문임을 믿기 바랍니다. 그래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님 예수 계신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둘째, 하느님을 만난 야곱은 광야를 예배의 장소로 삼았습니다.

 

(창세28,18)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원래 이 베게는 잠을 자다가 짐승을 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돌로 짐승을 쫓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를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매일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있는 그 먼지 나는 그 직장이 거룩한 예배의 장소요 내가 걸어 다니는 모든 삶의 자리가 거룩한 예배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하느님께 예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야곱은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합니다.

그 동안 야곱은 하느님을 아버지의 하느님으로 믿었습니다.

 

(창세28,210-22) 20 그런 다음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면서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저에게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마련해 주시며, 21 제가 무사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신다면, 주님께서는 저의 하느님이 되시고, 22 제가 기념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은 하느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이와 같이 평안(平安)할 때 아무 고통이 없을 때 하느님은 그의 하느님입니다. 나의 하느님이 아니라 단순히 내 아버지가 믿는 하느님이고, 내 어머니가 믿는 하느님이고 내 할아버지가 믿는 하느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고통의 광야에서 비로소 나를 만나주십니다. 고통의 광야가 하늘의 열린 문이 되게 하십니다. 그 고통의 광야가 예배의 장소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비로소 그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다윗도 평안할 때 하느님은 3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나를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난의 광야에서 하느님은 2인칭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당신께서 저의 원수들 앞에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고 제 머리에 향유를 발라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합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23,4-6)고 합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양과 같아서 하느님께 멀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의 추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께 멀어지려고 해도 하느님을 우리를 추격(追擊)해서 우리를 따라오십니다.

그래서 내 평생에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반드시 나를 추격해서 따라옵니다. 그래서 내가 있는 그 모든 곳이 하느님이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집이고, 모든 삶의 처소에서 하느님께 예배하며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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