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5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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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5-10 | 조회수349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요한 15,1-8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포도나무를 가꾸는 농부는 ‘가지치기’를 자주 해줍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는 2, 3월 봄이 되면 쓸 데 없이 크게 웃자라 있는 가지들을 과감하게 쳐냅니다. 이것이 1차 가지치기입니다. 그리고 작물들의 생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8월 여름이 되면 다시 한번 포도나무의 가지들을 손질하면서 초록색으로 건강하게 돋아난 꽃눈은 남겨놓고, 누런 빛을 내며 부실하게 돋아난 꽃눈은 다 따버립니다. 이것이 2차 가지치기입니다. 이처럼 꼼꼼하고 단호하게 가지치기를 해주어야 포도나무에 좋은 열매들이 많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가지치기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가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어 구원에 이르려면 포도나무의 큰 줄기이신 주님께 온전히 붙어있는 건강한 가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 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한 구절에 마음이 계속 머물렀습니다.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가지치기’는 한 번이면 끝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세례성사를 받는 1차 가지치기만 무사히 통과하면, 그분께 단단하게 잘 달라붙은 ‘선택된 가지’가 되어 세상 종말의 때에 닥쳐올 심판까지 ‘무사통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그런 우리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가지치기는 한 번으로 끝나는게 아니었습니다. 세례라는 1차 가지치기가 끝나더라도,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그분 뜻에 맞지 않는 부분들을 과감하게 잘라내는 성찰과 회개를 게을리하면, 결국 마지막 순간 ‘열매 맺지 못한 가지’가 되어 그전에 잘려나간 가지들처럼 ‘땔깜’으로 전락하는 슬픈 결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고 해서 내일부터는 나에게 ‘탄탄대로’가, ‘꽃길’이 보장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이번 한 번 그분 뜻인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열매를 맺었다고 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가 보장되거나 내 삶에 기쁘고 좋은 일만 생기는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주님 말씀 한 구절을 듣고 따랐다면 내일은 한 단락을 듣고 따르는 사람이 되도록, 지금 주님의 뜻을 한 번 실행에 옮겼다면 나중에는 두 번, 세 번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되도록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내 욕심과 집착을 잘라내시고, 내 교만과 고집을 깨끗이 손질하신다는 거였습니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열심히 따르는데 왜 주님을 따르지 않는 저 사람보다 내가 더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더 많이 겪어야 하느냐는 생각에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치기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엉뚱한 데로 빠져나가 구원이라는 결실을 얻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주님은 눈물을 머금고 우리에게 ‘사랑의 매’를 드시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단지 의식적으로 그분께 붙어있음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그분께서 나를 통해 열매를 맺으실 수 있도록 내 욕심과 집착을 비워드리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과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교만과 고집을 깔끔하게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의 사랑 안에 믿음과 순명으로 깊이 머무르는 참된 가지가 됩니다. 가지의 주된 역할은 꽃과 열매에 물과 양분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는 가지에 달리지만 가지 스스로가 그 열매를 만드는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가지의 소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충실히 실행해야 주님께서 맺어주시는 풍성한 열매의 은총을 그분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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