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사랑안에 머물러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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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5-11 | 조회수42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내 사랑안에 머물러라” -지상천국의 삶, 사랑은 분별의 잣대-
일기쓰듯하는 요즘 제 강론입니다. 제가 이젠 많이 참 자유로워졌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기 때문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강론 제목도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똑같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행복도 선택이자 발견입니다. 선택의 은총, 발견의 은총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살기를 선택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천국입니다. 말그대로 지상천국의 삶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 때 주님을 만나고 바로 거기가 구원의 치유 자리가 됩니다. 사랑은 분별의 잣대이니 저절로 분별의 지혜도 선물로 받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라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에 있을 때입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이들이 진정 주님의 관상가. 주님의 신비가, 주님의 영성가입니다. 누구나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나라요,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도록 모두가 초대 받고 있습니다.
오늘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클뤼니 수도원의 성인 아빠스들의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200년동안 참으로 혜성같이 나타나 수도원은 물론 가톨릭 교회와 전 유럽을 개혁으로 이끌었던 클뤼니 수도원의 기라성 같은 성 오도, 성 마욜로, 성 오딜로, 성 후고 아빠스들에 이어 복자 베드로 베네라빌리스 아빠스입니다. 이 거룩한 아빠스들 역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았기에 수도원과 교회는 물론 유럽을 개혁하고 부흥시켰음을 봅니다.
기도와 필사에 치중하여 기도와 노동의 균형을 잃어 200년 후에 사라져 가고 대신 수많은 탁발수도회들과 시토회, 그리고 은수생활이 번성하니 이 또한 자연스런 하느님의 섭리임을 깨닫게 되니 역사를 통해 끊임없이 배우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짧지만 강력하고 어제처럼 멋지고 마음을 환히 밝힙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사랑의 이중계명을, 바로 하느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하고,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킬 때 비로소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때 충만한 기쁨의 삶이 펼쳐집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새삼 충만한 기쁨 역시 주님 사랑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계명을 지켜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를 때 저절로 선사되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어제는 정말 주님 사랑 안에 머물렀던 충만한 기쁨의 하루였습니다. 여러 일화를 나눕니다.
“지금은 휴가중”이란 수도형제의 방문앞에 표지를 보고 웃었습니다. 휴가 나온 휴가인생인데 새삼 무슨 휴가인가? 인생휴가 끝나면 아버지의 집에서 또 영원한 안식의 휴가인데.., 그리하여 휴가를 잊고 산지 수십년입니다. 청담동 성모치과에 갔다가 극단의 신문기사를 보며 정말 분별의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현 정부의 1년 평가가 1면 톱기사 제목으로 나왔는가 하면, “정상의 비정상화” 로 정반대의 평가가 뒤따르니, 똑같은 사실에도 어떻게 이렇게 평가가 다를까? 정말 국민들의 분별의 지혜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두루 뉴스들을 살펴 볼 때 올바른, 지혜로운 분별이겠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제1독서 예수살렘 사도회의의 결정이 이의 빛나는 모범입니다. 베드로에 이은 야고보 사도가 “분별의 대가”답습니다. 베드로의 다음 설교는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지요!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에 명쾌한 해법이니, 주님 사랑 안에 머물렀기에 이런 분별의 지혜입니다. 이래서 사랑은 분별의 잣대라 하는 것입니다. 온 회중이 공감하여 묵묵부답 잠잠해 있을 때 야고보가 등장하여, 베드로보다는 후퇴한 느낌이지만 적절한 중용의 지혜를 발휘하여 지켜야 할 사항을 최소화함으로 해결을 봅니다. 할례의식은 빠졌고 다만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 그리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는 것만 지키면 된다 합니다. 어제는 정말 주님 사랑 안에 머물렀던 하루였었고 이런 분을 만났고 이렇게 사는 분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시 한복판 청담동 오아시스를 다녀간 기분입니다. 기쁘고 경쾌하게, 신바람나게 일하시는 모습도, 달인의 경지에 도달한 솜씨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으시고 늘 행복하세요!”
주님 사랑 안에서 머물며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하는 치과의사 형제에게 치료후 메시지로 전한 덕담입니다.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는 다음 자매님의 고백도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잡은 손, 남편 잡은 손, 놓지 않고 무른 마음 단단히 먹고 하루하루 잘 버티겠습니다.”
강론쓰는 중에도 간병하는 자매님과 병고중인 형제님에게 주님 치유의 은총을 청합니다. 어제는 작심하고 많은 시간을 내어 수많은 분들에게 꽃길 사진도 선물하며 주님 사랑을 나눴습니다. 제 집무실옆 주님 친히 마련해 주신 “꽃길”입니다.
“내 집무실 꽃자리, 주님이 계시는 곳
천국에 이르는 꽃길
저절로 난 꽃길
샛노란 애기똥풀꽃들 사이 꽃길
주님 마련해 주신 사랑의 꽃길”
현재 수도공동체는 전부 18명입니다. 수도형제 12명, 손님 6명, 그러니 무려 손님이 1/3입니다. 수도원 환대의 품이 그대로 주님 사랑의 품을 닮았습니다. 주님의 집 수도원에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고 있는 수도형제들입니다. 불가의 스님들에게 삼소(三笑)가 유명합니다. 떡이 나올 때 웃고, 국수가 나올 때 웃고, 두부가 나올 때 웃는다 합니다. 셋 모두 흰 색깔입니다. 엊저녁 식사때 주님 사랑 안에서 국수를 맛있게 먹는 수도형제들을 보며 문득 떠오른 불승들의 삼소입니다.
교황님이 강조하는 하느님의 스타일입니다. 헝가리 방문중 예수회 회원들과의 격의없는 대화도 감동자체였습니다. 교황님의 충고가 너무 적절해 이해를 깊이하기 위해 괄호안에 영어를 넣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기에 이런 통찰의 지혜입니다.
“젊은이들은 ‘한결같은 모범(consistent example)’을, 삶의 증명(testimony)과 증언(witness)을 보고 싶어 합니다. 나에게는 분명한 것은 젊은이들은 진실치 못한 ‘중언부언(double-speak)’에는 관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이 공격적임을 뜻하지 않습니다.
분명함은 언제나 상냥함(amiability), 형제애(fraternity), 아버지다움(fatherhood)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열쇠말은 성실성(authenticity)입니다. 하느님 열쇠말 중의 하나가 부드러움입니다. 친밀함(closeness), 연민(compassion) 그리고 부드러움(tenderness)이 바로 ‘하느님의 스타일(God’s style)’입니다. 이대로 살면 결코 잘못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어른이나 지도자들이 명심해야할 말씀입니다. 매일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 사랑 안에 머물러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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