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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44) 본향(本鄕)으로 가는 야곱 (창세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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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2 조회수336 추천수2 반대(0) 신고

 

 창세기(44) 23. 5. 12.

 

본향(本鄕)으로 가는 야곱

 

(창세31,1-21)

1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모조리 가로채고, 우리 아버지 것으로 그 모든 재산을 이루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2 야곱이 라반의 얼굴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3 그때 주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4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레아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고는, 5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네 아버지의 얼굴을 살펴보니 나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셔 주셨소. 6 내가 힘을 다하여 당신네 아버지의 일을 해 준 것을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7 그런데도 당신네 아버지는 나를 속이면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바꿔 쳤소.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셨소.

8 장인이 얼룩진 것들이 자네 품삯이네.’ 하면, 양들과 염소들이 모두 얼룩진 새끼들만 낳고, ‘줄쳐진 것들이 자네 품삯이네.’ 하면, 양들과 염소들이 모두 줄쳐진 새끼들만 낳았소. 9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당신네 아버지의 가축을 거두어 나에게 주셨소. 10 양들과 염소들이 끼리끼리 짝짓기 하는 시기에, 내가 꿈속에서 눈을 들어 보니, 암컷들과 교미하고 있는 수컷들이 줄쳐진 것, 얼룩진 것, 반점이 있는 것뿐이었소. 11 그 꿈속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야곱아!’ 하고 부르시기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12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눈을 들어 보아라. 암컷들과 교미하고 있는 수컷들이 모두 줄쳐진 것, 얼룩진 것, 반점이 있는 것뿐이다. 라반이 너에게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보았다. 13 나는 네가 기념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서원을 한 베텔의 하느님이다. 이제 일어나서 이 땅을 떠나 네 본고장으로 돌아가거라.’ 하셨소.”

14 그러자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가 얻을 몫과 유산이 또 있기나 합니까? 15 우리는 아버지에게 이방인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넘기시고, 우리에게 올 돈도 다 써 버리셨습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거두신 재물은 모두 우리와 우리 아들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께 분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17 그리하여 야곱은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나누어 태우고, 18 자기의 모든 가축과 그동안 모은 재산, 곧 파딴 아람에서 모아 자기 소유가 된 가축을 몰고, 가나안 땅에 있는 아버지 이사악에게 돌아가기로 하였다. 19 라반이 마침 양털을 깎으러 간 틈을 타서, 라헬은 아버지 집안의 수호신들을 훔쳐 냈다. 20 야곱은 아람 사람 라반을 속여, 달아날 낌새를 보이지 않고 있다가, 21 자기의 모든 재산을 거두어 도망쳤다. 그는 길을 떠나 강을 건너 길앗 산악 지방으로 향하였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집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동안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냈습니다.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 대해서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셔서 매우 번창(繁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3143절에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내 딸들이고 이 아이들은 내 손자들이며, 이 가축 떼도 내 가축 떼일세. 자네가 보고 있는 것들이 모두 내 것이네. 그렇지만 오늘에 와서 내가 여기 있는 내 딸들이나 그 애들이 낳은 아이들을 어찌하겠는가?”고 합니다. 이렇게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번창하게 되니까 라반의 아들들이 좋지 않게 말합니다.

 

(창세31,1-2) 1 야곱은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 것을 모조리 가로채고, 우리 아버지 것으로 그 모든 재산을 이루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2 야곱이 라반의 얼굴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소유를 다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라반이 야곱이 열심히 일을 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야곱의 소유가 많아지게 하셨습니다. 또 외삼촌 라반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 라반은 야곱에 대해서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딸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안색이 변하는 것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야곱은 외삼촌의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창세31,3) 3 그때 주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외삼촌의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한 야곱에게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이 있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제 야곱은 외삼촌의 집을 떠나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갈 분명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혼자가 아닙니다. 외삼촌의 딸인 두 아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4-13절에 보면 야곱이 두 아내들에게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4절에서 야곱은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부릅니다. 왜 야곱이 천막에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들로 두 아내를 부른 이유는 외삼촌 라반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떠나기 위함입니다.

 

(창세31,5-7) 5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네 아버지의 얼굴을 살펴보니 나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셔 주셨소. 6 내가 힘을 다하여 당신네 아버지의 일을 해 준 것을 당신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7 그런데도 당신네 아버지는 나를 속이면서 내 품값을 열 번이나 바꿔 쳤소.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셨소.

 

이것은 실재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열 번 속인 것도 있지만 이것보다 여러 번 야곱을 속여서 정당하게 줄 품삯을 변경하였던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그러나라는 말입니다. 외삼촌은 나를 속여 헤치려 했지만 하느님께서 막아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창세기 30장에 보면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무늬가 있는 양떼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무늬가 있는 양떼를 주지 않기 위해서 무늬가 있는 양 떼를 사흘 길을 떼어놓았습니다. 그래서 도무지 야곱이 기르는 양떼 가운데서 자연적으로는 무늬가 있는 양떼가 태어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양떼가 태어날 때 나무 가지를 데니까 신기하게도 무늬가 있는 양떼가 태어났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 나뭇가지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는가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무늬가 있는 양떼가 태어나게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창세31,8-13) 8 장인이 얼룩진 것들이 자네 품삯이네.’ 하면, 양들과 염소들이 모두 얼룩진 새끼들만 낳고, ‘줄쳐진 것들이 자네 품삯이네.’ 하면, 양들과 염소들이 모두 줄쳐진 새끼들만 낳았소. 9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당신네 아버지의 가축을 거두어 나에게 주셨소. 10 양들과 염소들이 끼리끼리 짝짓기 하는 시기에, 내가 꿈속에서 눈을 들어 보니, 암컷들과 교미하고 있는 수컷들이 줄쳐진 것, 얼룩진 것, 반점이 있는 것뿐이었소. 11 그 꿈속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야곱아!’ 하고 부르시기에,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더니, 12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눈을 들어 보아라. 암컷들과 교미하고 있는 수컷들이 모두 줄쳐진 것, 얼룩진 것, 반점이 있는 것뿐이다. 라반이 너에게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보았다. 13 나는 네가 기념 기둥에 기름을 붓고 나에게 서원을 한 베텔의 하느님이다. 이제 일어나서 이 땅을 떠나 네 본고장으로 돌아가거라.’ 하셨소.”

 

그러니까 그동안 자녀 문제로 서로 싸웠던 라헬과 레아가 서로 하나가 되어서 말합니다. 16절에 하느님께서 우리 아버지에게서 거두신 재물은 모두 우리와 우리 아들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께 분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하란을 떠나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가는 것은 이 세상이 우리의 진정한 본향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느님나라가 진정한 우리의 본향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아브라함은 처음 가나안땅으로 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합니다(히브11,8).

분명 하느님께서는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갈 곳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까? 그 이유는 처음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한 것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나안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가 갈 가나안땅은 저 영원한 하느님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땅을 살 때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히브11,13). 아브라함이 이 땅을 살 때 나그네로 살았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11,16)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세상은 우리의 진정한 본향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한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진정한 본향인 저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이 세상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라반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이 세상 사람의 모습은 야곱을 10번씩이나 속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일한 것에 대해서 정당한 품삯을 지불하지 아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이고 또 속입니다. 또 이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2절에서 라반의 어제의 얼굴과 오늘의 얼굴이 달랐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 나에게 좋은 얼굴로 대했던 사람이 오늘 나에 대한 얼굴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 본문에 나오는 라반은 끊임없이 야곱을 헤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 라반이 야곱을 속여서 헤치려고 했지만 하느님께서 막아서 헤치지 못하게 하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23절에 외삼촌라반이 7일 길을 쫓아와서 야곱을 헤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15절에 라반의 딸들조차도 “15.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넘기시고, 우리에게 올 돈도 다 써 버리셨습니다.”

 

(이사2,22.3,1) 22 너희는 더 이상 인간에게 의지하지 마라. 코에 숨이 붙어 있을 뿐 무슨 가치가 있느냐? 1 자 보라,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다에서 너희가 의지할 모든 것을, 저장된 모든 빵과 저장된 모든 물을 없애 버리시리라.

 

그런데 여기서 인간들 속에 나 자신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7장에서 “15 내가 모든 형제를, 곧 에프라임 후손을 모두 쫓아낸 것처럼 너희를 내 앞에서 쫓아내겠다.” 고 말씀하십니다.

왜 천국을 가는 우리들에게 사람을 믿지 말라 너 자신도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레미야 179절을 보면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이란 절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란 끊임없이 우리가 사랑만 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 땅을 살아갈 때 사람도, 나 자신도 믿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 믿길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그러할지라도 그러나 하느님만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5절에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7절을 보면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고 합니다. 베텔의 하느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창세28,15)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29장에서 야곱이 길을 갔는데, 왜 정확하게 하란의 목자들을 만나게 된 것, 하란의 목자들이 라반을 알 수 있었던 것도, 라반의 딸인 라헬을 만날 수 있었음도 하느님께서 베텔에서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께서 왜 라반의 손에서 야곱을 지켜주셨습니까? 하느님께서 베텔에서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음도 하느님께서 베텔에서 반드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라반처럼 우리를 속입니다. 또 변합니다. 그러나 베텔의 하느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절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베텔에서 보여준 사다리는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 시켜주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텔에서 하느님은 십자가의 붉은 피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하겠다. 누가 너를 헤치려 해도 내가 반드시 너를 지켜주겠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본향인 천국까지 가게 하겠다. 내가 이 약속을 이룰 때까지 절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 도무지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바라봅시다. 그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고 믿읍시다.

하느님은 절대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은 반드시 함께 하십니다. 지켜주십니다. 그래서 천국 가는 그날까지 하느님은 절대 한 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룰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창세31,3) 3 그때 주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5절에도 5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네 아버지의 얼굴을 살펴보니 나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소. 그러나 내 아버지의 하느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셔 주셨소.”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본문 아래 42절을 보면 “ 42 제 아버지의 하느님,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두려우신 분께서 제 편이 되어 주지 않으셨다면, 장인 어른께서는 저를 틀림없이 빈손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저의 고통과 제 손의 고생을 보시고, 어젯밤에 시비를 가려 주신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 베텔의 하느님은 신약시대에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보혜사(保惠師) 성령 하느님입니다.

 

(요한14,1-3) 1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2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 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3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호자 성령 하느님을 보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보호자 성령 하느님으로 다시 와서 저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갈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베텔에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베텔에서도 본향으로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라고, 그리고 본향으로 갈 때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베텔의 하느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保惠師)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요한14,16)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보호자(보혜사)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이토스란 말로서 곁에서 우리를 도와 주기 위해서 불리우심을 입은 자란 말입니다. 그래서 보혜사(保惠師)성령 하느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병들 때, 약할 때, 어려울 때, 억울하고 답답할 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면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억울함과 답답함을 돌봐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힘으로 그 어떤 말씀에 순종할 힘이 없습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실 때 우리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더 쉽게 만들어주십니다.

또 보혜사 성령 하느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보혜사 성령하느님은 결코 우리의 약함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약할 때 우리가 있는 그래도 이해를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에게 말씀하셨듯이 그래 나도 너를 책망하지 않겠다 다시 그런 죄를 짓지 마, 다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라고 날마다 보혜사 성령 하느님은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또 보혜사(保惠師)란 변호사(辯護士)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대해서 끊임없는 비난의 말을 합니다. 또 낙심하게 하는 말을 합니다. 이렇게 사탄이 우리를 비난하고 낙심케 하는 말을 할 때 옆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 변호해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보혜사이신 성령하느님이십니다. 무엇보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느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변호해주십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케 하는 말을 합니다. “과연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실까 나와 함께 하실까 하느님께 내 삶을 책임져주실까 정말 예수님이 정말 살아계실까?” 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성령하느님은 예수님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에 대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변호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느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하느님은 지금도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향인 저 영원한 하느님나라에 갈 때까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 하느님을 굳게 붙들고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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