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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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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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4 조회수966 추천수11 반대(0)

어릴 때입니다. 라디오에서 전설 따라 삼천리라는 프로를 들었습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가르치는 이야기였습니다. 때로는 오싹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흥미진진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였고, 때로는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하였습니다. 구성진 성우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효녀와 효자의 이야기도 있었고, 충신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순례의 여정 중에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같이 성서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해 주던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자칫 딱딱할 것 같은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열왕기 하권 35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압 임금 메사의 이야기입니다. 모압 임금 메사는 이스라엘 왕 아합 왕이 죽자 매년 바치던 조공을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길러 이스라엘의 영토를 침범하였습니다. 그에 이스라엘은 에돔과 유다의 임금과 연합하여 모압을 공격하였습니다. 모압 왕은 겁을 먹고 성에 들어가 숨어 있었습니다. 모압 왕은 자신의 친 아들을 불에 살라 제물로 바치며 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을 막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연합군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각자 나라에도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모압 왕 메사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는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비석의 존재는 잊혀졌습니다. 모압 왕 메사가 유명한 왕도 아니었고, 이스라엘 역사에 중요한 존재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석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고고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한 독일의 군인이 요르단의 족장으로부터 오래된 비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인은 본국에서 돈을 가져올 테니 비석을 팔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족장은 그러자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프랑스 영사관의 직원이 그 비석의 존재를 알았고 비석을 팔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족장은 이미 독일 군인에게 팔기로 했다고 하였습니다. 프랑스 영사관의 직원은 그럼 탁본이라고 뜨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비석이 중요한 물건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독일 군인이 돈을 가져와서 비석을 팔라고 했더니 족장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독일 군인은 당시 오스만 튀르크 군인들과 함께 와서 비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족장은 이렇게 여러 사람이 비석을 팔라고 하자 비석에 금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석에 뜨거운 물을 부은 다음 불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비석은 불 위에서 깨져 버렸습니다. 독일 군인은 깨져버린 비석을 사지 않았습니다. 족장은 비석 안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깨진 비석을 치워버렸습니다. 나중에 프랑스 영사관 직원은 깨진 비석을 가지고 프랑스로 돌아와 탁본과 비교하면서 다시 맞추었습니다. 그 비석은 현대 고고학과 성서학에 큰 영향을 주는 비석이었다고 합니다. 그 비석의 존재로 성서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것임이 성서 이외의 곳에서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함무라비 법전을 적은 비석 뒤에 전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족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매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보면서 가난한 농부는 기뻤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농부는 거위의 배에는 많은 황금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거위의 배를 갈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황금알이 없었습니다. 농부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저는 욕심과 어리석음은 요르단의 어느 이름 없는 족장과 이야기 속의 농부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21세기의 우리들에게도 같은 모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이름으로 인류에게 깊은 영성과 깨달음을 주었던 신화와 종교의 배를 갈라버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믿음으로 생기는 자녀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행위로만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신화와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는 지난 20세기에 우리는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였습니다. 영성과 깨달음이 무시되는 21세기에 우리는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방황을 경험하였습니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듣던 대사가 생각납니다. “무엇이 중헌디!” 인공위성과 우주선이 지구를 떠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이라고 노래하던 우리들의 마음도 중요합니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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