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6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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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5-15 | 조회수69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요한 15,26─16,4ㄱ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이들이 박해를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나에게 안좋은 일이 닥쳐올 것을 미리 알게 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요. 미리 알면 그 상황을 잘 피하거나 그게 안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수난 예고'는 오히려 제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고통과 시련, 더 나아가 죽음까지 겪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시면서, 정작 그 상황을 피할 방도나 극복할 묘안을 알려주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러한 때가 오면 당신이 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라'고만 하십니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힘든데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기억하라'뿐이라니,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야속하게 보일 겁니다. 또한 자기들로부터 그 고통과 시련을 없애주시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분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로서 권능과 힘을 지니신 분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에는 분명한 이유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신앙의 길에서 '고통'과 '시련'은 부정적이고 쓸모 없어서 없애버려야 할 그 무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차분히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하느님의 자녀인 자신에게 있어 '구원'이란 무엇인지,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봄으로써, 자기 신앙을 깊고 단단하게 다지는 '성장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가장 배고플 때' 먹는 것입니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어 눈앞이 핑핑 돌 때, 무엇이든 먹게만 해준다면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절할 때 먹는 밥 한 숟갈은 그 어떤 진수성찬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지요. 그것은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가장 강하고 뜨겁게 느낄 수 있는 때는 내가 주님을 갈망할 때 입니다. 삶이 풍족하고 여유로워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을 때, 그래서 굳이 주님이라는 존재가 내 삶에 없어도 상관없다고 느껴질 땐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을 때, 내 힘으로는 견디기도 감당하기도 버거운 큰 고통과 시련이 닥쳤을 때, 그래서 주님 도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그 때가 그분의 사랑과 은총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때이며, 내 마음 속에서 가장 큰 감사와 찬미가 우러나올 수 있는 때인 겁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그런 극한에 다다를 때까지 그냥 방치해두신다면, 우리는 그 인고의 시간을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자기를 그런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뜨리신 하느님과 그분 사랑을 의심하며, '그런 하느님은 필요없다'고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보호자', 즉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당장 급한 우리 처지에서는 그런 주님의 처사를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이 굶어죽게 생겼으면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테니 몇 시간만 기다리라'고 할 게 아니라, 일단 빵 한조각이라도 먼저 먹여야 하는거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세속의 응급처치' 안에는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여지가 없습니다. 빵만 먹어서는 당장 죽지 않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제대로 살 수 없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느님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분 사랑의 섭리가 내 삶 안에서 이루어질 '여지'를 남겨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굳은 믿음으로 걱정과 두려움, 고통과 시련을 참고 견디며 하느님께 여지를 드리면, 그분께서 성령과 함께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어 우리를 참된 행복의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세상의 것으로 '끝장'을 보겠다고 조바심 내지 말고, 내 안에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스며들 '여지'를 항상 남겨두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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