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적 승리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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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5-16 | 조회수679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영적 승리의 삶 -보호자 성령과 함께 하는 삶-
참으로 믿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영적승리의 삶을 소망할 것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영적승리의 삶도 선택입니다. 잘 들여다 보면 선택의 은총입니다. 선택의 은총이요 선택의 행복입니다. 참으로 보호자 성령과 함께 살아갈 때 영적승리의 삶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예화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잠깨어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고 나가면 맨먼저 보는 밤하늘 하늘이요 다음엔 늘 거기 그 자리의 영원한 도반 불암산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살라고 눈들면 별들이요, 땅의 꽃처럼 살라고 내려다 보면 무수한 꽃들입니다. 요즘의 한국은 어디나 신록에 꽃들 만발한 천국같습니다. 아무리 나눠도 새롭고 좋은 다음 시입니다.
“어! 땅도 하늘이네 구원은 바로 앞에 있네
앞뜰마당 가득 떠오른 샛노란 별무리 애기똥풀꽃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 수 있겠네!”
땅에서도 하늘의 별처럼 살아가는 이들이야 말로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요 제 주변에는 이런 영적도반들이 많습니다.
어제 파코미오 원장 수사의 영명축일이 마치 내 영명축일인 듯 기쁘게 지낸 영적승리의 하루였습니다. 어제의 강론을 축일 선물로 드렸고, 다음 내용이 축일 선물로 보낸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성모님’을 ‘장모님’으로 보낸 오타 덕분이었으니 전화위복입니다.
“왜관 피정집 장모님께서도 기뻐 축일 축하드립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니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성모님이 장모님이라면 ‘성모님의 사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보다 더 큰 성모님의 사랑은 없을 것이라 속으로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유쾌하고 좋은 축일 선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위 강론을 축일 선물로 보낸 것이지요. 바로 이런 유우머의 덕담이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불가의 성철 대선사가 제자들에게 주었다는 다섯가지 수행지침이 생각납니다.
1.많이 먹지 마라. 2.많이 말하지 마라. 3.많이 자지 마라. 4.간식하지 마라. 5.많이 책보지 마라.
영적승리의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구체적 수행 지침들에 공감했습니다. 얼마전 의사분의 충고도 잊지 못합니다. “당뇨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간식하지 말고 체중을 줄이세요.” 이 또한 저에게는 명심해야할 수행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먹는 대로 됩니다(I am who I eat)”. 적게 먹어 병이 아니라 지나치게 먹어 병입니다.
어제 강론에도 인용했고 어느 자매와도 나눈 대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얼굴은 사람입니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 순수로 빛났던 젊음의 얼굴들이 욕망대로 무절제의 삶을 살다 보면 괴물같은 노년의 얼굴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한폭의 그림같습니다. 평생 그려가야 하는 인생 그림이듯 평생 꼴잡아가는 얼굴입니다.
웃으면 꽃같은 사람 얼굴인데 웃지 않을 때는 괴물같아 보일때도 많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바로 제가 말씀 처방전 약으로 가장 많이 써드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입니다. 이대로 살면 꽃같은 얼굴에 영적승리의 삶이 보장됩니다. 바로 보호자 성령께서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이 말씀에 꼭 찍어 드리는 “웃어요!”라는 스탬프입니다. 웃을 때 하늘의 별같은 얼굴이, 땅의 꽃같은 얼굴이 됩니다. 웃을 때 꽃처럼 피어나는 사람의 얼굴들입니다. 기쁨도 기도도 감사도 의식적, 의도적 선택이요 훈련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입니다. 수행자들의 영적승리의 삶을 위한 구체적 처방입니다. 오늘 복음이 영적승리의 삶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보호자 성령임을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십니다.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힐 것이다.”
보호자 성령과 함께 할 때 영적승리의 삶임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주님을 떠남이 죄요, 주님과 함께 함이 의로움이요 주님과 함께 할 때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바로 성령과 함께 할 때 영적승리에 구원의 삶임을 말해 줍니다. 성령과 함께 파스카 예수님과 일치되어 살 때 죄에서의 해방, 의로움의 성취, 심판에서 벗어납니다.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영적전쟁입니다. 바로 파스카 예수님의 영적승리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다음 복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ㄴㄷ).
바로 영적승리의 삶을 모범을 보여주는 제1독서의 바오로와 실라스 일행입니다. 온갖 고통과 시련중에도 오뚜기 같은 두제자입니다. 무지몽매한 군중의 승리인 듯 하나 바오로와 실라스의 승리요 주님의 승리, 성령의 승리입니다. 깊은 감방속, 발에 차꼬를 채웠지만 이들의 영혼은 자유로웠습니다. 자정 무렾에 이들은 하느님께 찬미가를 불렀고 다른 수인들을 귀기울여 듣습니다.
그러자 즉시 발생한 기적이 상황을 일변시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나자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감옥문들은 저절로 열리고 사슬도 풀렸습니다. 마침내 간수의 구원에 까지 이르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두제자의 영적승리의 삶을 보여줍니다.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두 제자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두 제자들은 이 가족으로부터 음식 대접에 환대를 받고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집안과 더불어 기뻐하니 참으로 통쾌한 영적승리의 기쁨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실 때 백전백승의 승리요, 전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 할 것 없다는 진리를 배웁니다. 절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요약한 영문 한구절이 저에겐 화두처럼 마음 깊이 와닿습니다.
“God can write straight with crooked lines(하느님은 구부러진 선으로 곧게 쓰실 수 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는 사막교부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구부러진 선으로 곧게 쓰시는 주님을 모시고 성령따라 살 때 언제 어디서나 곧은 삶, 영적승리의 삶에 하느님의 나라, 천국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바오로와 실라스가 그 모범입니다. 탓할 것은 주님과 함께 못하는 내 믿음 부족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영적승리의 삶을 상징하는, 위 잠언 말씀을 입증하는 제 “메꽃들”이란 시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늘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 하늘 사랑 꽃피어 내며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메꽃들!”-1997.8.21.
무려 26년전 제 정주의 꽃자리 여기 요셉 수도원에서 쓴 자작 애송시입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끊임없이 하늘 사랑 꽃피어 내듯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써온 강론에 제가 놀라고 감사한 마음 차고 넘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영적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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