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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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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8 조회수779 추천수7 반대(0)

고진감래(苦盡甘來)’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고생이 끝나면 즐거움이 온다는 뜻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곡식을 거둘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그러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체험하면서 자랐습니다. 6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저는 가난과 굶주림이 친구인 줄 알았습니다. 길에는 넝마를 줍는 사람들이 있었고, 동냥을 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달동네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누나와 형들은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였습니다. 그렇게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판자촌은 아파트로 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외국인을 보면 주눅 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당당하게 한국인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메리카 드림을 쫓아서 미국으로 이민 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으로 역이민을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 의료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고, 한국 사회가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미국 뉴욕에서 4년째 살고 있지만 한국에서의 생활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처럼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에는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정했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은 모두에게 같습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일주일은 7일입니다. 우리가 정한 물리적인 시간 속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프고, 늙고, 죽어갑니다. 이 물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저 역시도 60년을 살아오면서 물리적인 시간의 흔적을 몸과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슬픔과 기쁨, 고독과 희망의 시간입니다. 헤어짐의 아픔은 의미의 시간입니다. 사랑의 기쁨은 의미의 시간입니다. 희망과 기쁨의 시간에서는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풍요로움과 여유가 있습니다. 고독과 절망의 시간에서는 바늘 하나를 넣을 수 없을 만큼 작고, 좁습니다. 불평의 시간을 가지면 남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감사의 시간을 가지면 남의 손을 이끌게 됩니다. 의미의 시간은 주어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는 가치의 시간입니다. 아기의 출산은 분명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박해와 순교는 고통의 시간이며, 절망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곧 행복의 시간이 됩니다.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물리적인 시간을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의미의 시간을 이야기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치의 시간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헤어짐의 슬픔은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가난함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아픈 것도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은총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단절과 허무입니다. 세상에서 이룬 모든 것들과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가치의 시간에서는 죽음도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러기에 죽음은 두렵고 떨리는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며,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와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걸어서 먼 길을 갔으며, 때로는 매를 맞기도 하고, 멸시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주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읽다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치의 시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가치의 시간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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