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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권-18.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차이 [천상의 책] / 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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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20 조회수289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천상의 책'(교회인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 자료를 원하시는 분은 책 2권 분량의 파일을 보내드립니다.


 12-18

 

예수님 생애의 중심점이었던 아버지의 뜻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차이


  1917814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는데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아주 잠깐 들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딸아, 내가 행한 일은 다만 아버지의 뜻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할 때면 아버지의 정신 안에서 생각하고, 말을 할 때면 아버지의 입 속에서 아버지의 혀로 말하고, 일을 할 때면 아버지의 손 안에서 그 손으로 일했다.


3. 숨을 쉴 때에도 그분 안에서 숨 쉬었으니 내가 행한 모든 것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정연하게 수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아버지 안에서 내 삶을 살아갔고 아버지를 전하는 사절(使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 안에 넣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이처럼 나의 중심점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었고, 모욕을 받는다고 해서 내 길을 중단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나의 중심을 향해 날아갔을 뿐이다. 매사에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을 때, 그때 비로소 내 자연적인 생명이 끝났던 것이다.


5. 딸아, 너도 마찬가지다. 네가 내 뜻에 너 자신을 온전히 맡긴다면 그 무엇에 대해서나 더는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6. 너를 그토록 괴롭히며 소진시키는 나의 부재 자체도 내 뜻 안에 흘러들기만 하면 네가 버팀목을, 나의 은밀한 입맞춤을, 너를 옷 입듯 입고 네 안에 있는 내 생명을 찾아낼 것이다. 바로 너의 심장 박동 안에서 내 심장의 뜨겁고도 고통스러운 박동을 느낄 것이다.


7. 그러니 너는 보지 못해도 나를 - 내 팔로 너를 꽉 껴안고 있는 나를 느낀다. 얼마나 자주 내 몸의 움직임을, 너의 열기를 식히는 내 상쾌한 숨결을 느끼곤 했느냐!


8. 과연 그렇다. 그래서 누가 꽉 껴안고 있는지, 누가 그런 숨결을 보내는지 보려고 네가 두리번거리면서도 나를 보지 못할 때, 그때 나는 네게 미소를 지으며 내 뜻의 입맞춤으로 입 맞춰 주고 네 안으로 더 깊이 숨어든다. 너를 또다시 놀래 주기 위해서, 너로 하여금 내 뜻 안으로 한 번 더 깊이 뛰어들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9. 그런즉, 네가 괴로워함으로써 나를 슬프게 하지 말고 내가 고민하게 하여라. 바라건대 내 의지의 비상(飛翔)이 결코 네 안에서 중단되게 하지 마라. 그러면 네가 네 안에 있는 나의 생명을 방해할 것이다. 반면에, 네가 내 의지 안에서 살면 나는 내게 방해되는 것이 없으므로 내 생명을 자라게 하여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10. 이제 순명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차이에 대하여 몇 자 적어 볼까 한다.

 

* * * * * * * * * *

 

* 첫째,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에 대하여.

 

11. 나의 변변찮은 소견에 의하면 이는 형편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무슨 일속에서건 자신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며, 머리카락 하나도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빠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며 안배하시는 하느님 뜻의 신적 질서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12. 내 생각에 그런 사람은 착한 아들과 같다. 아버지가 원하면 어디든지 가고 무슨 고통이든지 받는 아들이다. 그는 부유하건 가난하건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13. 어딘가에 가서 어떤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든지 아니면 지시해 달라고 청하든지, 다만 아버지가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 가다 보면 간단히 뭔가를 먹을 필요를 느끼고, 쉬기 위해서 걸음을 멈추며, 식사를 하거나 사람들을 대하기도 한다.


14. 그러므로 아버지가 원하기 때문에 가고 있지만, 그 자신의 뜻에서 오는 것이 많아지고, 여러 가지를 자기 혼자서 행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몇 날이고 몇 달이고 아버지의 뜻이 지시하는 명세 사항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홀로 모든 일을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5.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그 자신의 뜻을 섞어 넣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착한 아들이긴 하지만, 그 자신 안에 완전히 새겨진 아버지의 생각과 말과 생명을 모든 것 속에서 지닐 수 없다는 것이다.


16. 사실, 가고, 돌아오고, 사람들을 따르며 만나고 하다 보면, 사랑은 이미 깨어진다. 사랑은 지속적인 결합에 의해서만 성장하고, 그러면 결코 깨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아버지의 뜻이라는 전류와 아들의 뜻이라는 전류가 지속적인 소통 상태에 있지 않으니,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틈틈이 아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는 데에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17. 하지만 나는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사는 것이 성덕을 향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 둘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하여.


18.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손이 직접 써 주시면 좋겠다. , 오직 그분만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의 모든 아름다움과 좋음과 거룩함을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럴 능력이 없다. 머릿속에 개념은 많은데 표현해 낼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다. - 예수님, 저의 이 글에 부디 당신 자신을 쏟아 부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19.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산다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불가분적 관계를 맺고 아무것도 혼자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의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20. 그런 사람은 앞서의 아들과는 달리 자기 혼자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지시해 달라고 청하지 않을뿐더러 지시를 받지도 않는다. 그저 아버지께서 제가 이를 행하기를 원하신다면 함께 하십시다. 제가 가기를 원하신다면 아버지도 같이 가십시다.” 한다.


21.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가 행하는 모든 것을 행한다. 아버지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의 생각을 자기 생각으로 삼을 뿐 거기에다 하나의 생각도 보태지 않는다.


22. 아버지가 보고, 말하고, 일하고, 걷고, 고난을 받으며 사랑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보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말을 되풀이하고, 아버지의 손으로 일하고, 아버지의 발로 걷고, 아버지의 고난과 같은 고난을 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23. 그는 아버지의 밖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반영이며 아버지의 완전한 판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다만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점이다.


24. 아버지의 뜻 안에서 살고 있는 아들의 경우, 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는 아들을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있지 않는 아버지를 볼 수도 없다. 이 아들은 외적으로만이 아니고 내적으로도 아버지와 함께 있다. 그의 내면 전체가 마치 아버지의 내면과 섞여 짜인 것처럼 되기에, 아버지 안에, 곧 하느님 안에 완전히 녹아 든 상태가 되는 것이다.


25. , 하느님의 뜻 안을 날아다니는 아들의 날래고도 고상한 비상이여! 하느님의 뜻은 무한하여 순간마다 모든 사람 내부를 순환하며 만물에 질서와 생명을 부여하신다. 영혼도 그 무한성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에게로 날아가 도움과 사랑을 주는데, 예수님께서 친히 모든 사람을 도우며 사랑하시는 것과 같은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다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26.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단독적인 행위란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비록 사소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무엇이 섞인 일에 대해서는 역겨움마저 느낀다.


27.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모든 행위가, 극히 사소한 행위까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 고상함과 광채와 신적 거룩함 및 신적 능력과 아름다움을 입고, 무수히 불어나며,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28. 그러나 모든 일을 다 하고 난 뒤 영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나의 만족은 다만, 하잘것없는 이 인간에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있는 영광을 주시어 당신께서 행하신 바를 하게 하신 데에 있을 뿐입니다.


29. 따라서 일을 잘했건 서툴게 했건, 또는 많이 했건 적게 했건, 원수가 그를 괴롭힐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 하셨고,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더할 수 없이 평화로운 사람이다. 아무런 불안도 겪지 않는다. 아무도 애착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신적인 사랑으로 사랑한다.


30. 그런 이는 예수님의 삶을 재현하는 사람이요, 그분 음성의 발성기관이며, 그분 심장의 고동이고, 그분 은총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31. 나는 오직 여기에만 진정한 성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것은 성덕의 환영(幻影), 망령 내지 유령일 것이다.


32. 하느님의 뜻 안에서는 덕행들이 신적 질서 속에 자리를 잡는다. 반면에 그것이 이 뜻을 벗어나 인간적 질서 속에 있게 되면 자만과 허영과 격정의 지배를 받게 된다.


33. , 얼마나 많은 선행이, 잦은 성사 참여들이 하느님 대전에 개탄할 만한 보속거리가 되는지! 그것은 그런 행위들에 하느님의 의지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는 것이다.


34. 하늘의 뜻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성덕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되면, ,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질 정도가 될 것이다!


35.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성덕의 길을 걷고 있다. 경건한 신심 실천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너무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36. 만일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과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변화되지 않는다면 - 이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야말로 끊임없는 기도이기에 그들의 성덕은 그 모든 독실한 실천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이다. 이는 그런 영혼들이 그렇게 경건한 신심 행위를 하다가도 얼마나 쉽사리 결점이나 오락에 빠지고 불일치의 씨앗을 뿌리는 등의 짓거리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이런 부류의 성덕은, 그러니 얼마나 수치스러운 성덕인가!


37. 또 어떤 이들은 성당에 가는 것, 모든 전례에 참여하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의 의지는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영혼들이 스스로의 본분에 얼마나 등한한지를 보면 알 수 있는 점이다. 가는 걸음을 막는 무엇이 있으면 벌컥 화를 내고, 그들의 성덕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 듯 울부짖으니, 그 불평과 불순종으로 가족들의 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이 얼마나 맹랑한 성덕인가!


38. 또 다른 이들은 자주 고해성사를 받고 꼼꼼하게 영적 지도를 받으며 모든 것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에 성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가 예수님의 의지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을 반박하는 사람들이 되레 불행하다(고 여길 따름이다)! 이런 영혼들은 부푼 풍선과 같아서 작은 구멍만 있어도 바람이 빠진다. , 그들의 성덕이란 것이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오르다가 땅에 떨어진다.


39. 이 가련한 풍선들은 언제나 할 말이 있고 너무나 쉽사리 슬픔에 잠기며 줄곧 의혹 속에서 산다. 그러니 아주 작은 일에서도 지도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평화와 위로를 줄 사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도 더 심란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 얼마나 딱한 가짜 성덕인가!


40. 나는 저 가짜 성덕들을 두고 예수님과 함께 울기 위해서 그분의 눈물이 되고 싶다. 진짜 성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 사는 데에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41. 이 성덕은 워낙 깊은 데에 뿌리를 박고 있어서 뒤흔들릴 위험이 없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며 도처에 버팀목이 있는 성덕이기 때문이다.


42. 이런 영혼은 확고부동하기에 변덕을 부리거나 고의적인 결함에 떨어지지 않는다. 자기 본분에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고(Attentive), 지극히 헌신적이며,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영적 지도란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뿌리가 깊기 때문에 아주 높이 자라나서 꽃과 열매가 하늘에 만발할 정도이다.


43. 그리고 하느님 안에 깊이 숨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이 영혼을 거의 혹은 전혀 보지 못한다. 하느님의 뜻이 자신 내부에 그를 흡수하고 계시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이 부러운 피조물의 주인이요 생명이며 성덕의 형상이 되실 뿐이다.


44. 그는 아무것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예수님과 공유한다. 그의 정열은 곧 하느님의 뜻이다. 그의 특성도 예수님의 뜻이니, ‘피앗이 필생의 지속적인 모토이다.


45. 반면에, 저 하잘것없는 고무풍선과도 같은 가짜 성덕은 끊임없이 변화를 한다. 그 풍선들이 부풀대로 부풀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까지도 사뭇 탄복할 정도로 상당히 높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듯하지만, 머지않아 이 사람들은 환멸을 느끼게 된다.


46. 하나의 수모, 자기 아닌 다른 이에 대한 영적 지도자의 한 호의만으로도 이 풍선들의 바람이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도둑맞은 무엇으로 보기 때문이니, 그만큼 스스로를 그지없이 궁핍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47. 그러니 그토록 어리석은 것을 두고 찜찜해하다 보면 결국 불순종에 떨어지게 된다. 질투가 이 풍선들을 갉아먹는 좀이다. 이것이 그들이 행하는 선을 태워 없애면서 계속 공기를 소모하기에 풍선이 쭈그러들어 땅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더러운 흙투성이가 된다.


48. 이때 이 풍선들의 성덕이란 것이 정체를 드러낸다. 그 안에서 무엇을 볼 수 있겠는가? 선의 외관 아래 숨은 자애심과 원한과 격정이다. 그러니 그들은 악마의 노리개가 된 자들이라고 일컬어질 근거를 주는 셈이다. 그들의 성덕이라는 것 중에서 외관상 덕행으로 포장된 순한 결점들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49. 하지만 이에 대해서 누가 다 말할 수 있겠는가? 홀로 예수님만이 이 거짓 성덕의 더없이 나쁜 폐단을 알고 계시고, 거짓 신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건전한 기초가 없어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른바 독실한 삶이란 것의 악폐도 알고 계신다. 이 가짜 성덕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 불모의 영적 포도나무들이어서 사랑하올 예수님으로 하여금 얼마나 자주 눈물을 흘리시게 하는지 모른다!


50. 그런 이들은 사회의 반감을 사고, 지도자와 가족의 골칫거리가 된다. 모든 사람에게 해로운, 유독한 공기를 가져오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51. 그러니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영혼들의 성덕과는 얼마나 다른지! 이 영혼들은 예수님의 환한 미소이다. 모든 이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심지어 지도자들에게서도 떨어져 있는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님만이 전부이기에 아무도 그들 때문에 속을 태우지 않는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공기는 누구에게나 은혜로운 방향(芳香)을 풍기고, 그들이 곧 모든 이의 질서와 조화가 된다.


 52. 이 영혼들을 세심하게 지켜 주시는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행하는 모든 것의 행위자요, 목격자이시다. 그들에게는 그분의 조정과 지배를 받지 않는 심장 박동이나 호흡, 또는 생각이란 단 한 가지도 없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 안에 어찌나 깊이 빨아들이시는지 자기가 아직 이 유배의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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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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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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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장한상요셉과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저의 죽은 형제들, 곽판수와 박일조 마리아, 한재권, 곽무순, 양길영, 양호영,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미카엘의 믿음의 배필, 후손들과 장 이냐시오를 비롯한 형제자매들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자비와 은총과 축복과 용서를 베푸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8월 15일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뜻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 축일'이 예수님이 루이사에게 말씀하신 것이 하루빨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간청하며 애원합니다. 이루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암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봉헌하며,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전쟁에서 죽거나 고통당한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이들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구원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예수님의 뜻 안에서 안토니오 비오가 봉헌하는 미사와 기도와 바램에 축복과 구원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예수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 온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찬미 흠숭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 십자가 동산/길이 생겨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게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 저는 예수님 뜻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2023년에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이 온 세상에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피앗 볼룬타스 투아!


2023.03.24. 성령 안수


2023.03.26. 번역할 영어책 받음. 송 요아킴 & 문 그레고리오


2023.04.25. garabandaltv 


2023.05.18. ~ 05.21. 장 미카엘 일본 후쿠오카 방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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